갑자기 일반학교 학부모가 되었다.

속물 엄마가 받은 따끔하고 따뜻한 응원

by 김가오리

2023년, 나는 갑자기 일반학교 학부모가 되었다.

8년 전인 2015년에 아이가 갑자기 대안학교 학생이 된 것처럼.


#1.

대안학교를 잘 다니던 아이가 일반학교로의 전학을 고민할 때, 나는 나대로 ‘일반학교 학부모 노릇’에 대한 고민을 추가로 하고 있었다. 뭐든 잘하고 싶어 하는 병에 걸렸던 나는 일반학교 학부모 노릇도 잘하고 싶어 할 텐데, 왠지 잘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시작도 하기 전에 진 느낌이었다. 해보지 않았고, 잘 모르는 영역이고, 계속 몰랐으면 했던 분야였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그 세계로 가고 싶지 않았다.


내 마음에 커다란 기준선이 하나 있었나 보다. 대안학교를 선택해 가족 구성원이 함께 교육철학을 공유하고 지켜가는 것이 ‘옳다, 선이다’ 하는 기준선. 아이를 낳아 키우며 15년간 나는 그 선으로 빙 두른 울타리 안에서만 살았다. 그러다 보니 내가 속한 교육공동체에서는 좋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던 모습들을 타인에게 발견하면 ‘우리는 저러지 않지’하는 우쭐한 마음을 가졌었다.


스마트폰을 쥐어주지 않는, 유아차/자전거/킥보드를 되도록 태우지 않는,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는, 사교육을 시키지 않는, 비싼 옷을 입히지 않는, 여행 때 좋고 화려한 숙소에 굳이 묵지 않는, 심지어 ‘나물을 잘 먹는’ 것까지 괜한 자랑거리였다. 우리 가정과 공동체를 흡족해하고 자랑스러워했던 내 마음에서 대안학교와 일반학교의 급은 자연스럽게 나뉘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가 일반학교로 전학을 가면 지금까지 공동체 덕에 누리던 양질의 기준들을 잃을까 두려웠다. 공동체에 의지하지 않고 우리의 힘으로만 좋은 것들을 지켜야 해서 부담스러웠고, 사교육, 스마트폰, PC방, 게임 등 지금까지 공동체의 이름으로 봉인됐던 것들을 전학 가면서부터는 가정 나름의 기준으로 서서히 열 수밖에 없다는 현실도 고민이 됐다. 무엇보다 내 기준에서 낮은 급으로 구분된 일반학교가 앞으로 우리를 설명하는 이름이 된다는 것이 속상했다.


아들의 전학 이슈로 마주한 날 것의 나는 우아한 척하는 속물 엄마였다. 변화의 시작부터 스스로에게 실체가 까발려진 셈이다. 어떻게 하나?

늦깎이 일반학교 엄마로서의 나는 쓸모가 있는 사람일까? 또, 나의 지향과는 다른 아이의 일반학교 생활을 진심으로 지지하고 응원할 수 있는 아량은 있나?


#2.

걱정은 나만 한 게 아니었는지, 같은 학교 학부모였던 지인 G가 공책 2권을 선물로 주었다. 아이에게 1권, 우리 부부에게 1권. 고3 담임을 했던 고등학교 교사로서, 오랫동안 곁에 있었던 이웃으로서 건네준 공책에는 글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마치 옛이야기 속 먼 길 떠나는 주인공에게 호호백발 할머니가 건네주는 호리병 같았다. 위급한 상황에 짠하고 꺼내어 쓸 수 있는 마법 물약이 담긴. 이것은 우리에게 선물이기도, 무기이기도, 여비이기도 했다. 낯설고 긴장되는 세계로의 진입은 앞으로도 살아가면서 여러 번 겪을 터. 쫄지 않고 심호흡 한 번 하고 첫 발을 내딛을 수 있게 하는 것은 이처럼 나에게 유의미한 사람들이 보내준 애정 어린 염려였다. 그 뒤로 G의 공책 속 ‘함께‘와 ‘화이팅’을 부적처럼 단디 지니고 다녔다. 용기가 필요할 때마다, 정신 차리고 원인을 살펴야 할 때마다 들여다보았다.

그중, 자녀가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거나, 또는 이미 고등학생인 가정에게 도움 될 구절이 있어 공유한다. 태도와 본질에 관한 글이다. 많이 왜곡된 입시판 이긴 하지만, 그 안에서도 내가 어떤 필터로 그 세계를 바라볼 것인가에 따라, 입시만 하기에는 아까운 학생으로서의 시간을 주도적으로 통과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글.


*G가 아들에게 쓴 편지 일부 발췌

“이제 OO이는 열심히 친구 사귀고, 수업 듣고, 활동한 결과로 무엇을 얻어야 할까? 좋은 성적을 얻어야지. 그렇지만 이것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 모든 과정을 통해 OO이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할 때 기쁜지 알아차리는 것! 자기가 원하는 멋진 나에 가까워지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계속 생각하는 것! 열심히 공부한 결과, ‘음.. 나는 화학과 역사와 음악을 좋아하는군.’하고 생각해도 좋아. 그런데 ‘음.. 나는 친구를 돕는 것, 화내지 않고 기다려주는 것, 색이 변하는 순간,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슬픈데 웃는 사람을 좋아하는군..’을 모으는 것도 가능해. 떠오를 때마다 작은 종이에 적어뒀다가 저금통 같은 곳에 모아봐. 나중에 필요한 순간이 올 거야. … 공부는 OO이가 알아차린 새로운 OO이를 차곡차곡 모으는 과정이야. 시험 점수만 있고 OO이가 없으면 3학년 때 원서 쓸 때 힘들어. 학년이 올라갈수록 막막하고 불안해져. 이 공부를 왜 계속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거야. 그러니까 영어, 수학, 지리, 기술가정 속에서 계속 OO이를 발견했으면 좋겠어.OO아, 고등학교는 바다 같은 곳이야. 첨벙! 뛰어들어서 신나게 놀았으면 좋겠어.


**G가 우리 부부에게 쓴 편지 일부 발췌

“엄마 아빠가 같이 공부하는 거야. 아이의 공부 친구가 되도록. … 힘든데 또 아이 덕분에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되는 거니까, 셋이 손잡고 걸음마 연습하듯이. 단! OO이가 부담스럽게 느끼지 않도록! 이게 어렵드라. 셋이 같이 즐겨야 하는데. … 원 없이 사랑하는 과정이라 생각해. 아이가 내 곁을 떠나 독립하려 할 때 후련하게 보내줄 수 있도록. 꼭 제대로 사랑하지 않은 엄마가 며느리 나타나면 그때부터 아들을 사랑하드라. 잘 헤어지기 위해 원 없이 사랑하는 3년이 되길. … 내 아이 성적과 내 아이를 동일시하지 말 것! 늘 경계하고 조심해야 해. 점수가 아이로 보이면, 계속 사랑할 수 없어. 좋은 점수든, 나쁜 점수든, 점수는 점수고, 나는 아이를 사랑하는 거야. … 화이팅! 노트가 남았네. 이거 좋은 노트야. 이 노트를 어떻게 채울 거야? “


지인의 당부를 잠시 잊고 점수로 아이를 평가한 적도 있고, 극성을 부린 적도 있다. 근데 그렇게 해서 뭔가 나아지지 않더라. 그렇다면 그 방법은 잘못된 것이 아닐까 의심해야지. 다행히도, 다시 본질이 무엇이었는지 되짚어가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될 때마다 꺼내볼 호리병이 나에게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입결만 남는 게 아니라고, 3년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어떤 태도로 누구와 걸어갔었는지도 경험으로 남게 될 것이므로 절대 소홀히 하지 말라는 따끔하고 따뜻한 호리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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