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입시계의 신생아에용.

입시 신생아가 받은 세 가지 레슨-용어 정리, 유튜브 정리, 마음 정리

by 김가오리

#1. 첫 번째 레슨


이면지를 꺼내 크게 '대입'이라고 적는다.

그 밑에 특별 전형, 일반 전형이라고 적고, 또 그 밑에는 수시 전형, 정시 전형이라고 쓴다.

수시 전형 밑에는 학종, 교과, 논술, 실기라고 적고, +a에는 카이스트, 포항공대... 상향, 적정, 안정.

정시 전형 밑에는 수능, 2합 3, 3합 5, 3합 7, 가군, 나군, 다군이라고 적는다.


두 번째 이면지를 꺼내 '고1 생활'이라고 적는다.

그 밑에 내신, 모의고사, 생기부라고 적고

내신 밑에 지필, 수행평가, 생기부 밑에 자동봉진, 교과세특, 개인세특이라고 쓴다.


입시계라는 낯선 곳을 안전하게 여행해 보려고 지도를 펼쳤는데, 풀어야 할 암호만 가득이다.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 건동홍숙 국숭세단은 또 뭐지?

조선 시대 시조인가? 4음보 3음절? 아니면 일본 정형시 하이쿠인가?

정말 억지 조합인 것 같은데 이상하게 잘 외워진다. 유행에는 다 이유가 있다.

왠지 이 암호들을 잘 외우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을 것 같이 느껴진다.

대학교 정문 앞에서 문지기에게 "3합 5!!!"라고 암호를 대고 통과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2. 두 번째 레슨


10년 전, 대안학교 입학을 위해 우리 부부는 마주 앉았었다. 학교에서 안내한 교육철학서와 미디어 자료를 꼼꼼하게 읽고 최선을 다 해 원서를 썼다. 그로부터 10년 후, 첫째의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우리는 다시 마주 앉았다. 이번엔 입시 관련 유튜브 채널을 들고 만났다는 게 다른 점이랄까.


입시 정보를 얻으려고 유튜브 바다를 헤엄쳐보니 넓어도 너무 넓다. 어느 구간에서 시작해야 할까? 어느 영법으로 수영해야 효율적일까? 튜브에 바람은 잘 넣었나? 챙길 게 많다. 몇 개의 채널을 살펴보다 조회수가 높고 콘텐츠 업로드 시기가 규칙적인 채널부터 집중했다. 그런데 정보가 쌓임과 동시에 유튜브 콘텐츠 제목들이 점점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사례 1)

"00 교과, 성실하게만 공부하면 고등학교 가서 망해요."

- 부제목은 "1타 00 강사가 알려주는 국어 제대로 공부하는 법"

"초5부터 고1까지 자녀공부, 이것만은 놓치면 안 됩니다."

- 부제목은 "망하지 않는 공부 계획, 타이밍 다 짜드림"


썸네일만으로 불특정 다수의 클릭을 유도해야 하니 제목이 자극적인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실제 콘텐츠 내용은 제목만큼 자극적이지 않은 경우도 많다. 하지만 입시도 교육의 하위 영역이라면 넘지 말아야 하는 선도 있는 것이다. 교육, 양육, 보육.. 과 같은 '기름(育)'의 영역은 결과가 가시적이지 않다. 효율성, 효용성이란 단어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영역이기도 하다. 일반화시키기도 어려워서 A에게 찰떡같았던 방법이 B에게는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하기도 한다. 지인들의 사례나 시행착오 또는 전문가들의 조언이 담긴 책이나 영상 자료로부터 위로나 영감은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방식 그대로를 적용하기에 '기르다'의 대상인 아이들은 각기 다른 존재다. 덧붙여 '기르다'를 행하는 나와 아이의 관계와 상호 작용 역시 너무나 고유한 영역이라 일반적 방법이 다 통하지 않는다.(참고로 나는 오은영 박사님의 방법을 둘째 초1 때 적용했다가 큰코다친 적 있음) 시쳇말로 케바케, 사바사, 애바애다.


불편함 목록에서 '망해요'를 체크해 본다. 아무리 쿨하게 말하더라도 '망해요'라는 표현은 삼가고 싶다. 학생들이 입시를 통과해 가게 될 어른의 세계에서는 요즘 한창 <<실패를 통과하는 법>>,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과 같은 책이 샤라웃 되고 있는데. 실패는 기본값이고 실패는 빠를수록 좋다고 실패가 독려되는 세상인데. '기름'의 세계를 너무 얕게 본 것일까? 시험 성적이 인생 성적인 것처럼, 시험 성적이 아이의 모든 것인 것처럼, 과정 따위는 하찮은 것처럼 여긴다. 이쯤 되면 위험 신호다. 입시는 이제 더 이상 교육의 영역이 아닌 것만 같다.


사례 2)

"공부하라는 말 없이도 자녀 의대 보낸 엄마의 방법'

- 부제목은 "겨울방학 때 해보세요. 무조건 효과 봅니다."

"의대 합격의 비결"

- 부제목은 "엄마의 이 역할이 결정적이었어요."


의치한약수가 대세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제목들. 하지만 여기서 진짜 키워드는 '엄마'다.


입시 제도는 복잡하고, 입시 정보는 과하게 많다. 학생이 지필평가, 수행평가, 생기부를 두루두루 챙기면서 교사에게도 예의 바르고 친구들과도 잘 지내며 자기 진로를 야무지게 찾아가기에는 시간도 에너지도 모자라다. 시간도 에너지도 넘치던 나의 학창 시절에도 진로 잘 찾지 못했고 점수 맞춰 대학에 갔다. 심지어 요즘은 같은 전형이라도 대학마다 전형 이름이 다르고 전형 세부 내용은 또 다르다.


그래서 나 포함 많은 부모들이 입시를 공부한다. 부모가 준비하지 않으면 내 소중한 아이가 눈앞에서 좋은 기회를 홀랑 날릴 것 같은 불안을 심는 시스템 아래에서 나라고 별 수 없다. 그런데 공부할수록 왜 더 불안한 걸까. 초등학교 때부터 챙겨주라는데 이미 내 아이는 고등학생이라서? 전두엽을 잠시 꺼둔 채로 자아를 형성 중인 청소년들은 부모 잔소리를 유독 자발적으로 못 듣는다는데, 정제된 정보를 전달해도 아이 귀에 들어갔다 바로 튕겨져 나와서? 입시 성공이라는 성과를 내기 위해 다른 변수(사랑, 휴식, 여행, 질문, 방황...)들은 다 통제해야 할 것 같아서? 내가 계획한 시기에 내가 계획한 점수를 아이가 받아오지 못해서?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면 갑자기 인류애가 뻗쳐 '가정에서 챙겨주지 못하는 환경의 학생은 어떻게 입시를 준비하는 걸까?'까지 궁금해진다.


부모를 공부하게 하는 입시제도가 위험한 이유는 자녀가 자기 인생에서 주인공 자리를 뺏기기 때문이다. 입시의 주체는 부모로 바뀐다. 가장 친밀한 타인에게 입시와 인생이 함께 외주화되는 셈이다. 입시 정보는 부모가 알아보고 요약해서 중요한 것만 자녀에게 전달되는 경우가 많다. 이미 부모 기준에서 걸러진 정보인만큼 자녀가 직접 고민하고, 선택하고, 돌아가고, 후회하고, 다시 마음먹어볼 기회는 적다. 부모가 준 정보를 받아 실행하는 자녀들은 그야말로 AI 같은 삶을 강요받는 건 아닌지...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부모는 아이의 시험 점수와 입시 결과를 자기 성적표로 여기며 자녀 삶의 영역을 서서히 침범한다.



#3. 세 번째 레슨


나 역시 아이의 입시에 열심히 기여한다는 명분에 빠져 자녀의 삶과 내 삶을 동일시 또는 동기화했다. 그러다 그런 내가 불편해진 어느 날 문득 질문 하나가 올라왔다. "이 짓을 언제까지 하게 될까?" 아이가 대학을 가면, 군대를 가면, 취직을 하면, 결혼을 하면, 다른 나라에 가서 살게 되면, 그때 나는 아이의 삶에서 건강하게 분리되려고 할까? 확신할 수 없었다. 고백하자면, 시험 성적의 잣대가 없었던 아이의 어린 시절에도 다른 잣대로 아이와 나의 삶을 비교선상에 올려놓고 평가하곤 했기 때문에. 키나 몸무게 같은 성장 발육이라던가, 아토피 같은 피부염이라던가, 친구들과 잘 지내는 사회성이라던가, 학교에서의 다양한 활동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문제라던가... 돌아보니 끊임이 없었다. 그래서 적당한 시기에 적절한 방법으로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내일 질 지도 모르는 그 마음을 오늘 다시 먹는다. '매일 새롭게 다짐하겠다는 마음'도 같이 품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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