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곳이 아닌 아이 옆에 있기
일반학교로의 전학 첫 해, 공부를 잘하고 싶었던 아이는 “나 학원 어떻게 하지? 다녀야 하지 않나?”라며 사교육을 받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아이에게 전학 이후의 성적은 낯선 친구들에게 보이고 싶은 자존감이나 스스로에게 증명하고 싶은 전학의 타당성 같은 거였을 텐데, 16살 인생 중 제법 큰 변화를 앞둔 아이에게 그때의 나는 꽤 단호했다. “혼자 힘으로 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그때 가서 고민해 보자. 처음부터 사교육 도움부터 받을 생각 하지 마.”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나는 이미 아이의 일반학교 생활과 성적에 대한 기준을 정해놓고 있었던 것 같다. ‘사교육은 받지 않거나 최소화할 것, 그럼에도 성적은 좋을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기준. 아이에게는 자기 주도적 학습의 중요성과 실패해도 다시 일어나 보려는 의지를 경험해야 한다며 인생의 큰 깨달음을 얻은 사람처럼 말했다. 하지만 의논하자고 온 아이에게 내 이야기는 거절, 통보, 강요로 들렸을 것이다. 혼자 해보려는 노력도 않는 나약한 모습이라는 비난도 같이 줬을 것이고.
고민도 됐고 불안하기도 했던 아이의 욕구는 무시당하고 엄마의 기준만 인정되던 어느 날, 아이 학교 담임선생님과 대면 상담을 진행했다. 학교 생활, 친구 관계 같은 무난하고 정형화된 이야기로 시작해(평소 아이의 표정이나 전해주는 이야기로 교우 관계에는 크게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었음) 아이의 진학, 진로, 성적, 수업 태도 같은 구체적 근거가 뒷받침되는 이야기로 넘어갔다. 당시 아이는 영어 과외는 받고 있었고, 나머지 과목은 사교육 없이 혼자 하고 있었는데 대안학교 다닐 때 수학을 잘하고 좋아한다는 평가를 받았던 아이의 수학 점수는 70점 근처에 머물고 있었다. 학구열이 높지 않은 동네의 중학교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곧 닥칠 고등학교 성적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어 선생님께 이런저런 조언을 구했다. 내 이야기를 경청하던 선생님께서는 상담을 마칠 때쯤 진중한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당부하셨다.
“어머니! 대안학교 학부모 마인드는 이제 버리셔야 해요!”
‘네? 뭐라고요?‘
선생님 앞에서는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내가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았을까? 현실과 맞지 않는 이상주의적인 모습이 대책 없어 보였을까? 아니면, 순진한 척, 모르는 척하며 사교육 없이 좋은 성적까지 내기를 바라는 나의 숨은 욕구를 알아보신 걸까? 뇌는 멈춰 있다가도 질문에 따라 생각이 이동하는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예상치 못한 조언에 나의 뇌는 연이은 질문에 답하느라 폭주하기 시작했고, 생각은 이동하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기준과 비난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라는 최종 질문에서 멈췄다. 되짚어보니 멀리 갈 것도 없었다. 대안학교 학부모여서가 아니었다. 나에게서 시작된 것이었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어린 시절 내가 받은 사교육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초등 저학년 웅변학원 1달, 6학년 피아노 학원 1년, 중3 여름방학 수학 단과 1달, 대학교 4학년 노량진 임용고사 모의고사반 1달. 그럼에도 소위 말하는 좋은 대학을 나오고 안정적 직장을 다니고 있으니, ‘사교육 안 받아도 다 할 수 있어’라는 우쭐하는 마음으로 오랫동안 자수성가의 신화를 혼자 쓰고 있었다. 이루고 싶은 것이 많아 다 배우고 싶었으면서 실제로는 가질 수 없으니 이솝우화의 ‘여우와 신포도’의 마음으로 사교육에 ’안 좋은 것, 없이도 해내야 하는 것’과 같은 이름표도 붙였다. 또 자수성가 신화는 스스로는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아닌 척 하지만, 남들은 알아줬으면 하는 것이 국룰이라 평소에는 잘 숨겼다. 그런데 주머니 속 송곳처럼 내게 가장 소중한 존재이면서 늘 동기화되어 있는 아이의 일에서는 숨겨지지 않았다. 내 삶에서의 노력을 나의 아이가 증명해 주기를 바라는 삐뚤어진 욕심이 기어코 옷감을 뚫고 나왔다.
그림책 작가인 클로디 퐁티는 책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을 만나다>>에서 부모의 삶을 기준으로 자녀의 삶을 재단할 때 생기는 섬뜩한 진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이를 질투하는 부모가 되지 않기 위해 경계했습니다. 많은 부모들이 감히 발설하진 못하지만 아이가 자신보다 뛰어나길 바라지 않아요. 아이에게는 "너는 이겨낼 수 있다. 도전해 보렴" 말하지만 속으로는 '아마 안 될 거야' 단정 짓습니다. 자기가 겪은 삶이 최고로 가치 있다고 믿고 아이에게 강요하는 것 역시 질투의 한 모습이죠. 저희 어머니는 본인이 선생님이었다는 사실에 자긍심을 갖고 있어서 손자손녀 가운데 선생님이 된 아이들만 좋아합니다. (웃음) '나는 내 자리에 만족한다. 너도 나처럼 살아라. 너는 나를 추월할 수 없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중산층 부모가 꽤 많습니다.“(p.123) 내가 사교육에 보이는 강박적 태도는 질투에 다름 아님을 그제야 겨우 투명하게 들여다보고 솔직하게 인정할 수 있었다. 인정하고 나니 선생님과의 상담에서는 답 없던 이상주의적이고 순진한 태도가 강점으로 작용했다. ‘아이가 나의 좁은 세계에서 뛰쳐나가 작더라도 자기 보금자리를 마련하면 참 좋겠다, 그럴 수 있게 내가 할 것은 무엇인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를 고민했다.
”아이구 힘들어. 안 하려던 걸 하니, 잘 못 하는 걸 하려니까 힘들어“하며 이런 고민을 털어놓으니 지인 B가 말했다. “아이가 있으려 하는 곳 옆에 있어주자.”
그래, 아이 옆에 있자. 눈을 맞추고, 흔들리는 아이의 눈동자에서 불안을 꺼내 이야기하고, 변덕스러운 작은 의지들을 타박하지 말고, 지금까지 보호의 이름으로 통제되던 몇몇 선택들도 아이가 결정하는 것을 순도 100프로로 믿고, 기다리자.
마음을 먹었으니 이제 전화를 할 차례. 지인들에게 추천받아 두었던 수학 학원 2곳(00수학, 수학의 00)의 번호가 있었다. 아무도 없는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까먹을까 봐 메모지에 필요한 질문을 적은 뒤, 음음.. 하고 두 번 목을 가다듬었다. ‘예의 바르면서도 호구로 보이면 안 돼.‘라고 마음먹었지만, 전화기 너머 학원 선생님의 “네~ 00 학원입니다.”라는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준비했던 멘트는 생각이 안 나고 버벅거렸다.
예전엔 안 해본 것들. 이후, 아이 덕분에 견고했던 내 좁은 이분법적 세상의 경계가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좋고 나쁨, 성공과 실패만 있던 세계에 균열이 생겼다.
아이 옆에 있는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