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엄마는 없다-1

뜬금없는 엄마가 있었을 뿐

by 김가오리

예전에 지인 S가 물었다. 나중에 아이들이 컸을 때 어떤 엄마로 기억했으면 좋겠냐고. 나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사랑이 많은’ 엄마로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고. 그때 나는 옅은 미소도 곁들였던 것 같은데, 그것이 지금은 좀 부끄럽다. 내가 나를 속인 것 같아서, 내가 나한테 속아 넘어간 것 같아서. 어떤 상황에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는 속 깊고 현명하며 지혜롭고 사랑 많은 엄마라는 가면을 쓰고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적인 정답만 말하고 다녔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걸 검열하고 싶어서 내 마음은 자꾸 과거로 간다.


그 당시 아이들은 큰 문제없이 지내고 있었나 보다. 고민거리를 안겨주지도 않고 무탈한 날들을 나에게 선사하고 있었나 보다. 그래서 내가 조건 없는 사랑으로 키워 아이들 삶이 평온하다는 착각을 할 수 있었나 보다. 맞다. 나는 늘 우아한 엄마가 되고 싶어 애를 썼다. 나에게 우아함이란 때로 나와 가족의 현실적인 욕구나 감정보다 다니던 대안학교의 교육 철학과 권위 있는 책, 사람이 부여한 기준에 맞춰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건강하게 균형을 잡을 수도 있었을 텐데, ‘이상‘은 선이고 옳은 것, ‘현실‘은 부족하니 극복해야 하는 것으로 여겼다. 이상으로 가기 위해 현실을 자꾸 무시했다.


S가 다시 물어봐준다면, 지금은 솔직한 엄마로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할 것이다. 솔직하다 못해 서로 오해할 일이 생겨서, 오해가 이해로 전환될 상황이 생기면 좋겠다. 일방적인 정답만 있고 연결과 진심이 없는 관계보다 오해를 품은 이해와 오지랖의 관계가 더 나은 것 같다. 참으면 좋았을 한 마디를 굳이 더 해서 사달이 나곤 하겠지만, 당장은 부끄럽기도 하고 시간을 되감기 해서 없던 일로 만들고 싶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했을 때 그동안 안 맞던 가족 간 관계의 아귀가 묘하게 맞아떨어질 때가 있다는 것을 요즘 경험하고 있다. 충돌하지 않았다면 계속 외면했을 진실이 눈앞에 촤라락 내보여지니 되려 시원하다. 이렇게 오해와 충돌을 통과해 이해의 지점까지 갔을 때마다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나의 맥락 없는 야단에 첫째가 ‘뜬금없다‘고 말하는 순간, 둘째가 ’엄마가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아‘라고 말하는 순간들이었다는 공통점.


지난여름, 남편은 갤럭시 s25로 핸드폰을 바꾸었고, 아이폰 13 미니 중고폰을 쓰고 있는 둘째가 열렬한 관심을 보였다. AI 기능을 다양하게 탑재한 s25는 전화 통화만으로 통역이 가능하다는 남편의 설명에 최신폰에 관심 없는 나도 솔깃했다. 그때 닫혀있던 방문이 빼꼼히 열리더니 갤럭시 s20을 쓰고 있는 첫째가 얼굴만 내밀고 방글거리며 말했다. “아빠 핸드폰 샀어? 내 핸드폰 요즘 자꾸 먹통이고 이상한데 나도 핸드폰 바꿀까? 나는 아이폰으로 바꿔보고 싶다.” 새 핸드폰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르다는 기대 때문이었을까, 아이의 눈빛은 유난히 반짝거렸는데, 나는 핸드폰 이야기에 아이가 반짝거리고 생기 있는 눈빛이 되는 게 갑자기 참을 수가 없어졌다.


얼굴만 문밖으로 나와 있는 아이를 향해 나는 무서운 얼굴로 “지금 핸드폰 바꿀 생각을 하는 게 말이 되냐? 공부에 집중하겠다고 인터넷 차단한다고 말한 지가 언제야?“라며 소리를 질렀다. 생기 있던 아이의 표정은 금방 싸늘해졌고,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핸드폰 바꾸는 거랑 공부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화를 내? 내가 엄마한테 혼날 만큼 지금 잘못한 거 없는 것 같은데.” 나의 꾸짖음에 잘못을 인정하고 공부에 더 열중하겠다고 반성할 줄 알았는데, 아이는 분한 마음보다 급발진한 엄마를 체념하는 마음으로 한 마디 했다. “엄마, 뜬금없어.” 이어 둘째가 덧붙였다. “지금 상황에 그 이야기를 왜 하는 거야? 이해가 안 돼.”


가족들은 내가 첫째에게 화내는 맥락을 납득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나에게만 당연했던 나의 생각 회로는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일주일 전 대화 중 첫째가 ’인터넷 안 되는 폰으로 바꾸고 공부에 전념해 봐야겠다’고 말한 것에서 시작된 것 같다. 아이의 열심히 하고 싶은 기분을 엄마의 욕심에 일본 순사에게 끌려 가 발설하지 않는 독립운동가의 의지급으로 생각했다. ’공부하겠다는 의지와 선언->바로 실천->성적 향상->원하는 대학->성공한 인생+엄마의 자부심’의 경로를 설정해 버리고 조금이라도 이탈했을 때 바로 응징해 버린 셈이다.


맙소사, 아이 입장에선 정말 뜬금없었겠다. ‘뜬금없다’의 ‘뜬금’은 조선시대 곡물 시장 그날그날의 기준 시세다. 담당자가 ‘뜬금’을 정하지 않으면 거래가 성립되지 않기에 ‘뜬금없다‘는 이치에 맞지 않고, 일을 어그러뜨리고, 갑작스러워서 사람을 당황하게 만드는 상황이다. 안타깝지만 그 후로도 몇 번 더 비슷한 일들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아이들은 내가 급발진하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이 말을 뱉었다. “뜬금없어!”, “이해가 안 돼!” 아이들에게는 부당하게 혼나는 상황에 대해 항의하는 수단이었을 이 말들이 나에게는 제정신을 차리고 초라하지만 솔직한 엄마로 돌아오게 해주는 마법의 주문으로 작용했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사랑받고 싶으므로. 괜찮은 어른이고 싶으므로. 아이 인생을 불성립시키는 뜬금없는 관리자이고 싶지는 않으므로.


키티 크라우더, <<개를 원합니다>> 한 장면

+ <<개를 원합니다>>의 주인공 밀리는 많은 개 중에 특별하다고 생각한 개 한 마리를 데려 와 키운다. 특별하니까 이름도 특별하게 ‘프린스‘라고 지어준다. 하지만 친구들이 프린스를 특별하다고 여기지 않게 되자, 밀리도 프린스를 미워하며 더 이상 키우지 않기로 한다. 잘못을 깨달은 밀리는 빗속에서 프린스를 찾아 헤매고 마침내 프린스를 찾았을 때, 담아두었던 말을 전한다. “정말 미안해.” 나 역시 아이에게, 가족에게, 그리고 솔직하지 못했던 나에게 말해 본다. “정말 미안해. 우아하거나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리고 이어지는 밀리의 말, “집에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