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있으세요? 기도하세요.

나의 기도는 감사와 다정과 인정입니다.

by 김가오리

무더운 여름날, 아이 입시에 대한 걱정이 한가득이었을 때, 신간 한 권을 읽게 되었다. <국영수는 핑계고 인생을 가르칩니다, 조이엘>. ‘공부가 인생에 태클이 되지 않는 삶을 위한 안내서‘라는 부제가 애매했다. 태클이 되지 않도록 성적 향상의 비결을 알려준다는 것일까? 아니면 공부를 인생의 유일하고 절대적인 태클로 확신하지 않도록 도와준다는 것일까? 알라딘 책 소개에는 다음처럼 소개되어 있었다. “상위 1% 아이부터 꼴찌, 수포자, 격렬한 사춘기를 겪고 있는 아이 등 다양한 사례와 함께 국영수 중심 교육의 빈틈을 채워주는 진짜 공부법이 담겨 있다. 교육의 최전선에서 수많은 아이들을 만나왔던 작가는 성적 중심이 아닌 아이의 근본적인 문제를 밝혀내 자존감과 집중력, 자기 관리 능력을 향상하는 방법과 아이 맞춤형 공부 전략 등도 풀어낸다. 지금의 교육 현실에 한계를 느끼고 있다면, 아이들을 위해 어른들이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펼쳐보자.”


처음 내가 꽂힌 부분은 ‘자기 관리 능력 향상‘, ‘아이 맞춤형 공부 전략‘이었다. 실제로 책 속에는 작가가 가르친 학생들의 다양한 사례가 담겨 있었다. 전인적으로 학생을 파악하고 학생마다의 개별 코칭과 열과 성을 다 하는 관계 형성이 기본이어서, 읽다 보면 작가님과 내 아이만 연결시켜 주면 아이가 알아서 성적 향상도 이루고 인성도 더 훌륭해지지 않을까? 하는 착각을 하게 되었다. 신간 이벤트로 작가와의 만남을 신청받고 있길래 동아줄 잡는 심정으로 신청서를 써서 제출했다. 뭐라도 돌파구를 찾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다행히 신청이 채택되고 작가와의 만남이 진행되었다. 부모로서 갖는 불안, 고민을 나누었고, 작가님이 일을 하면서 느꼈던 진짜 필요한 교육(인문학)에 대한 의견도 전해 주셨다.


마지막 순서에 참가자 자녀의 개별적 교육 문제에 관한 질문이 이어졌는데, 나는 첫째가 실제로 궁금해하던 고민을 질문했다. 명확한 솔루션을 주시겠지 하는 기대를 가지고. “내신은 얼마고, 목표는 어딘데, 책 속 동규 학생의 사례처럼 한계를 깨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싶어 한다. 하지만 속도가 느린 편이고, 개념 이해나 문제 풀이 과정에서 어느 부분이 걸리면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머물러 있곤 하며, 강박도 있으며, 완벽하지 않으면 시작하지 않으려는 성향도 있다.” 다른 참가자들의 질문에는 꽤 명확한 답변이 나왔던 것 같은데, 내 질문에 작가님은 대뜸 말씀하셨다. “흠… 종교 있으세요?“ ”네? 종교.. 없습니다.“ ”답이 명확하지 않아 죄송합니다. 아이 스스로 고민하는 부분은 타고난 성향 같아서.. 그런 경우는…“ 그런 경우는??? ”…그런 경우는… 기도하세요. 더 할 게 없습니다. 기다리시면서 힘드실 거예요. 그래서 기도하시라고 말씀드려 봅니다. 제가 가르친 어느 학생 어머니는 고등학교 3년 내내 붓글씨를 쓰셨어요. 그래야 아이보다 앞서서 부모가 달려가지 않을 수 있거든요.“


기도하라는 예상치 못한 답변에 나도 참가자들도 하하하하 웃었다. 친구 한 명이 나중에 묻더라. “고민에 대한 만족할만한 답을 얻었어?” 나는 대답했다. “응, 기도할래!” 사실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들었다. 내 노력과 아이의 성적이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적다는 것에서 오는 답답함(인생의 대부분을 성실하게 노력해 온 스타일이라)과 성적과 입시가 당장 눈앞이라 조급해지긴 하지만 아이 삶에서 언젠가는 맞닥뜨려야 하는 문제임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긴 호흡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겠다는 물러섬이 같이 왔다. 무엇보다 붓글씨까지 쓰면서 아이보다 앞서 욕심내지 않으려 애쓰며 아이의 속도를 존중했던 어머니의 현명함에 저절로 설득되었다. 실제로 그 아이는 자기 속도와 방식으로 성인으로의 삶을 잘 살아가고 있다는 작가님의 첨언도(작가님에게 그 학생은 수제자라고! 자기 주도로 잘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당장의 성적에만 몰입되어 있던 좁은 시야를 넓히게 해 주었다.


역시 아무리 고민해도 문제가 잘 안 풀릴 때는 본질로 돌아가 묻는 것이 장땡이다. 기도라는 솔루션 덕분에 아이의 성적 향상이나 입시 성공에 대한 욕구 중 많은 부분이 그냥 내 욕심인 경우라서, 돕고 애쓰더라도 관계가 틀어지거나 아이 세계를 폭력적으로 침범하지 않는 곳까지만 가야 함을 명확히 했다. 최선을 다 하되 내 몫이 어디까지일 수 있는지 계속 예민하게 점검할 것. 그리고 내가 부모로서 본질적으로 해야 하는 역할은 아이가 어른이 되게 하는 것임을 잊지 않기로 했다. 분명히 많은 순간 입이 간질간질할 것이 예상되었다. 이거 챙겼냐, 일어났냐, 그거 부족하지 않냐, 이 방법이 더 낫지 않냐, 이렇게 해 봐라 등등의 잔소리 종합세트가 항상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대한 잘 참아보기로. 그래야 성적과 입시로 점철된 고등학교 3년의 과정과 결과가 숫자만이 아닐 수 있을 것 같았다. 성적과 입시는 차가운 세계이나, 그걸 얻으려 가는 과정을 무엇으로 어떻게 채울 것인지는 아이가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생기부를 채우려는 과정도 입시에 도움이 되는 것만 골라 담는 과정이 아니라, 3년간 나의 스토리를 담는 과정이라고 인식을 바꾼다면, 과정도 결과도 유의미하게 남을 수 있겠다고 생각의 방향이 진심에서 바뀌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평생 달리기를 하면서 ‘3미터 앞의 길만 본다’는 단순한 진리를 전했다. 3미터 앞까지 가는 것이 목표라면 42.195km를 어떻게 달리지? 에 압도되지 않고 바로 앞 1미터 1미터씩 발을 내딛는 것에 집중하게 된다. 그 1미터씩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내 삶에서 나온 질문과 경험으로 생기부와 고등학교 생활을 쌓아가는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끼게 되면 정말 좋겠다. 그러다 보면 삶은 해석의 영역임도 느낄 수 있을 테니.


이렇게까지만 쓰면 뭐가 되게 잘 정리되고 실천되었을 것 같지만, 여전히 좌충우돌 상태임을 먼저 밝혀둔다. 사람 변하는 거 쉽지 않고 아이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러함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기도하라고 했나 보다. 문제는 기도는 어떻게 하는 거지?라는 질문이 생긴 것. 무언가를 간절히 소망하는 것인가? 더군다나 나는 무교다. 우리 집 12시 방향에 교회가, 우리 집 12시 방향, 7시 방향에 각각 작은 도시형 사원 하나씩이, 우리 집 5시 방향에 성당이 있는 나름 종교 트라이앵글 존에 살고 있으나 무교다. 하지만 유신론자여서 일상에서 경험하는 소박하지만 신비로운 것들(대개 자연)에 경탄할 때 위안을 얻고 신적인 존재가 있겠다고 생각하는 프리한 사고 수준이다.


아이와 건강하게 분리되고, 어른으로 자라게 돕고, 관계를 해치지 않으면서 학업에서는 성취감을 경험하도록 하는 지금의 바람을 어떻게 기도로 풀어낼 수 있을까가 남은 숙제가 되었다. 처음에는 ‘시험 잘 보게 해 달라’고 기도하려다가 이런 개인적인(어찌 보면 이기적인, 나쁜 의미로 말고) 내용을 부탁해도 되나? 싶었다. 나한테 기도는 신성한 것이었나 보다. 생명과 질병에 관한 기도는 가능한 영역이나, 개인의 성취와 관련된 것은 기도의 영역이 아닐 거라고 생각해 왔음을 알게 되었다. 그 와중에 지인 D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는 개신교 신자다. D의 아이가 크게 다쳤을 때 ‘우리 아이 제발 살려주세요’라는 기도를 하려다가 하나님께 떼를 쓰는 건 아닌가 싶어 주저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은 D의 자매님이 D에게 말했다. “어릴 때 부모님한테 조르거나 떼부려본 적 별로 없지요?“하고. 아, 기도는 단순한 부탁이 아니었다. 내 삶에 깊게 연결되어 기도로 드러나는 것이었다. 나는 기도할 자격이 되는지, 기도해도 되는 주제인지 자꾸 검열하면서 시간이 갔다.


그렇다면 큰 주제의 기도를 해야 하나? 고민 중에 <슬램덩크> 산왕고 에이스 정우성의 기도가 떠올랐다. 고교 농구선수 중 단연 원탑인 정우성은 하위권이었던 강백호의 북산고와의 시합 전에 ”저한테 필요한 경험을 주세요.“라고 기도한다. 경기 결과는 정우성이 속한 산왕고의 역전패! 산왕고 감독은 선수들에게 “다들 기운 내, 오늘의 패배는 뼈아프지만, 새로운 도약을 위한 큰 경험이 될 거다.”라고 위로했고, 정우성은 그제야 자기 기도가 성립되었음을 깨닫는다. 패배 경험이 적은 정우성에게 필요한 경험이 하위권 북산고와의 시합에서 지는 거였음을 비로소 인정한다. 그런 패배가 얼마나 아픈 것인지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조금은 알고 있다. 만화를 보면서야 ’인생의 진리를 저렇게 잘 표현하다니, 정우성은 더 멋져지겠군 ‘ 평할 수 있지만, 그게 내 인생의 한 순간이라면, 그리고 내가 통과해야 하는 거라면 말처럼 쉽지 않다. 더군다나 내가 찾아본 신앙인들이 기도에 대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는 내 기도에 신이 어떤 방식으로 응답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고통 없이 성장하기 어렵다는 걸 사례로, 경험으로 알고 있지만 고통을 통과하는 게 힘들어서 차라리 성장도 안 받고 고통도 물리는 것으로 인생 계약서를 쓰고 싶을 때도 있으니까.


그나마 지금까지 내가 몸과 마음, 머리로 받아들인 기도는 절대적 존재와의 대화라는 것, 그리고 절대자는 내 예상보다 더 큰 존재라는 것이다. 또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기도 내용이어야 된다는 것. 글과 말에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기에 무척 조심스럽다. 기도라고 해서 갑자기 대담해지는 것은 아닌가 보다. 나는 우선 ‘아이의 성취를 나의 것으로 여기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다. 자기 인생은 본인이 제일 신경 쓸 것이니, 내가 그 신경을 방해하지 않는 엄마일 수 있는 데에 최선의 기도였다. 마음이 괴로울 때면, 몇몇 신앙인들이 기도에 관해 남긴 콘텐츠의 도움을 받아 ‘저는 부족해요. 도와주세요. 저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세요?’라며 절대자에게 부탁했다. 절대자의 모습은 내가 살면서 습득한 이미지로만 변환될 수 있기에, 때로는 부처님, 때로는 예수님, 때로는 시바신, 때로는 그냥 아득하고 캄캄한 우주나 깊은 심해였다.(+알라나 무함마드의 얼굴을 떠올리지 않은 것은 역사교사라서 알고 있는 이슬람교의 원칙 때문이다. 신과 예언자의 얼굴 묘사를 금지하는 원칙. 대신 양 어깨 위에 있는 천사님의 모습이나 신의 얼굴 대신 완전함을 상징하는 아라베스크 무늬를 떠올린다.)


그리고 아직 어색한 기도가 어려울때면 일상에서 자주 감사해했다. 내 능력, 성취인 줄 알았던 것이 사실은 부모가 타고나게 해 주신 것이거나 타인의 도움으로 얻은 것임을 잊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다정을 회복했다. 그것은 의외로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었는데, 나의 마음을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전하는 방식의 실천이었기 때문이었다. 내 마음을 하찮은 것으로 여기면 다정은 실천하기가 어려워 없는 용기를 종종 끌어다 썼다. 마지막으로 나의 취약함을 인정해보고 있다. 극복의 대상이 아니고 그냥 두어 남의 것인 양 바라본다. 그랬더니 때론 취약함이 나의 여백이 되어 누군가가 예상치 않게 귀한 이야기와 물질로 채워주기도 하더라. 결국 기도는 절대자를 인식하는 실제 행위였다. 비대해진 자아를 줄이고 줄여 겸손한 존재로 사는 것임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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