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그래서 나는 어떤 생존 전략을 찾았냐 묻는다면
이것으로 반성문 13개가 쌓였다.
첫 글, 프롤로그에서 나는 '하마터면 내 아이에게 진상 부모가 될 뻔했던' 나를 반성할 결심을 했다.
헨젤과 그레텔이 자기가 뿌려 놓은 것들을 되짚어가며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처럼
길을 가다 멈춰 웅크리고 앉아 내가 흘린 것들이 무엇인지 살피다 보면 훌륭한 엄마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아서.
그런데 막상 글을 쓰면서는 종종 길을 잃었다. 한참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정신 차려보면 같은 곳을 빙빙 돌고 있기도 했다. 그러다 알아차렸다. 헨젤과 그레텔도 과자와 빵 부스러기를 뿌려두었을 때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는 것을. 예상치 못하고 의도하지 않은 모험을 통과하며 세상을 헤쳐나갈 힘이 생겼다는 것을.
애초에 정답은 없고, 있었어도 한 가지 길도 아니었다. 모든 면에 완벽하거나 훌륭한 엄마일 필요는 더더욱 없었다. 심지어 내가 엄마로서 갖는 욕망과 불안은 오로지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 고속 성장 시대, 노력하면 대가가 주어지던 시대의 산물이기도 하다는 걸 이해했다.
그럼, 이제 무리한 욕망이나 과도한 불안은 사라졌냐고?
그럴 리가.
오히려 욕망과 불안이 나의 기본값임을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석가모니가 그러셨다. 인생은 원래가 고통이라고. 신이라면 통제하고 예측하는 절대 영역을 세우겠지만 나는 신이 아니니까. 대신 사람인 나는 고통을 어떻게 통과하고, 고통 중의 기쁨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며, 고통을 누구와 함께 할 것인지를 선택할 수는 있다. 그 과정에서 절실히 욕망하고 불안으로 조급해할 내가 벌써 두렵지만(저는 쫄보입니다), 안전함에 갇혀 진짜 세상을 만나지 못하는 <트루먼 쇼>의 주인공처럼이고 싶지는 않다. 이번 생에 내게 주어진 자유라는 티켓에 불안이 1+1으로 붙어 있는 옵션이라면 겸허히 받기로 한다(바들바들 떨면서요).
이어 '아이와 손 잡고 극단적인 입시판에서 살아 나갈 방법'으로 분리될 결심을 해본다. 나를 벗어나면 아이는 얼마나 자유로울지 상상한다. 내가 붙들지 않을 때 아이는 분명 내가 모르는 세계에 도착할 것이다. 아이가 아이만의 세계로 훨훨 날아갈 때 나와 남편을 걱정하지 않도록 우리 삶을 단속해야 한다. 세상이 결과를 더 기억한다면 나는 과정을 더 기억하고 기록하는 사람이 되려 한다. 과정의 목격자가 되고 싶다.
그러고 나서는?
사랑해야지.
책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에서 저자 사샤 세이건은 부모님인 칼 세이건과 앤드류 얀의 삶에 대한 태도를 다음과 같이 들려준다. "그렇지만 우리 집은, 종교는 없어도 결코 냉소적이지는 않았다. 부모님은 내가 살아 있음을 너무나 아름답고, 아찔할 정도로 신비롭고, 우연히 일어난 신선한 기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부모님은 우주는 막대하고 우리 인간은 궁벽한 곳에 있는 작은 행성에서 눈 한 번 깜박할 순간 동안을 살아가는 아주 작은 존재라고 했다. 또 두 분의 책에도 나오지만 “우리처럼 작은 존재가 이 광대함을 견디는 방법은 오직 사랑뿐이다.”라는 말도 나에게 들려주었다." 사샤의 부모 칼 세이건과 앤 드루얀의 삶에 대한 태도는 ‘광활한 우주의 보잘것없는 우리가 우리로 만날 엄청난 확률에 감사하고 그러니 더더욱 사랑하자’는 것으로 해석된다.
반면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에서 딸 조이는 영화 내내 주장한다. 자기를 포함한 인간의 존재와 삶이 얼마나 작은 것인지를... 심지어 어느 장면에서 돌로 변한 조이는 '어떤 것도 될 수 없고, 어디에도 갈 수 없는 자기'를 견딜 수 없어 절벽 아래로 떨어져 버린다. 하지만 엄마 에블린은 그래서 더 “너와 여기 있고 싶다."라고 답한다. 영화에서 초능력을 갖게 된 자신은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디로든 갈 수 있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완전하고 미미한 존재들끼리 함께 있자고. 함께 할 시간이 한 줌의 시간이라면 그것마저 소중히 하겠다고. 가능했을 다른 세계에서의 나도 지금 세계의 나의 어떤 면을 부러워할 수 있으니 그저 현재를 함께 살자고 말한다. 그리고 돌 상태의 조이가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졌을 때, 역시 돌 상태였던 에블린은 안간힘을 다 해 함께 굴러버린다.
에블린의 이 대사는 나에게 칼 세이건이 딸이 태어났을 때 아이를 안아 올리며 한 말인 “지구에 온 걸 환영해.”와 동급이다. 환영한다는 말은 안부 인사에 그치는 게 아니니까. 환영할 만한 곳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책임의 약속이라서. 그러니, 환영해! 책임질게! 의젓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