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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말구 Jun 19. 2020

[서평] 그럼 결국 희망을 찾지 못했다는 말이니?

안도현, 『연어』

   ‘연탄재 시인’이라는 단어를 듣고 떠오르는 사람이 있으신지요. 우리에게 울림을 주는 시들이 참 많이 있지만, 언제나 제게 이 시는 따뜻함을 선사해주면서도 동시에 무서울 만큼의 마음의 경종을 불러일으킵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너에게 묻는다」 전문


  이 짧은 글을 읽고 나면 절로 한숨이 나오는 기분이 듭니다. 내가 타인에게 수없이 상처를 주었던 일. 부지불식간에 약자에게, 볼품없이 보이는 이에게 함부로 대했던 일. 무엇보다 내가 누군가에게 따뜻함을 내어주는 희생을 결코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오릅니다. 그러면서도 연탄재의 남아있는 따뜻한 불씨가 나의 마음 안에 남아있길 바라는 희망을 갖게 됩니다. 일말의 따뜻함이 나의 마음속에도 남아있길 바래보는 것이지요.

  위의 시 「너에게 묻는다」의 작가는 안도현 시인입니다. 「너에게 묻는다」뿐만 아니라 「연탄 한 장」이라는 시를 통해 자신이 한 장의 연탄이 되지 못했음을 안타까워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그는 ‘연탄재 시인’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고요. 『서울로 가는 전봉준』, 『외롭고 높고 쓸쓸한』, 『북항』과 같은 많은 시집을 통해 안도현 시인은 많은 사람들에게 이름을 알리기도 했습니다.

  그는 1981년 대구 매일신문 신춘문예에서 「낙동강」이라는 시로 등단합니다. 이후 중학교 국어교사로 재직하기도 했는데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일원이었다는 이유로 해직이라는 부당한 처우를 받게 됩니다. 이후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복직하여 교편을 잡기도 했지만 이내 그만 두고 전업 작가로서의 삶을 살았습니다. 현재는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임 하며 후학을 양성하며 시를 발표하고 있습니다.

  저는 안도현 시인하면, 그의 시와 더불어 2013년에 ‘절필선언’이 기억납니다. 불의한 정권 아래서, 자유로운 창작을 저해하는 정권 아래서는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겠다는 ‘절필선언’을 한 것입니다. “불의가 횡행하는 참담한 시절에는 쓰지 않는 행위도 현실에 참여하는 행위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시인을 보며, 자신이 가장 뛰어난 역량을 펼칠 수 있는 시 쓰기를 그만둔다는 사실이 안타까웠고, 침묵이 오히려 강한 외침이 될 수도 있다는 역설적인 힘을 느끼기도 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현재는 다시 시인이 발표하는 시들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서정적이고 따뜻하면서도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게끔 하는 시들이 발표되고 있습니다. 한 번쯤 마음을 따뜻이 녹이고 싶을 때, 내가 지금 걷고 있는 길이 올바른 길인지 되돌아보고 싶을 때, 시인의 시는 많은 이들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안도현 시인은 시 뿐만 아니라 동화나 우화로서 사람들의 마음에 울림을 주기도 했습니다. 이번에 함께 나눠보고픈 책이 그 중 하나인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입니다.

  알을 낳기 위해 강의 상류로 돌아가는 연어 떼가 있습니다. 주인공 연어인 ‘은빛연어’는 상류로 되돌아가면서 성장하고, 연어로서의 삶의 의미를 찾습니다. 은빛연어는 다른 연어들에 비해 조금 독특합니다. 그는 다른 연어들의 등과는 달리 ‘은빛’ 등을 가지고 태어나지요. 다른 생김새로 인해 연어 집단에서 따돌림을 받습니다. 은빛연어는 생김새뿐만 아니라 사고하는 것마저도 다른 연어들과는 달라 더욱 그랬습니다.

  은빛연어는 삶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만 골몰하는 보통 연어들과는 달랐습니다. 그는 한 무리에 귀속되는 게 아니라 자유를 원했고,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동료를 원했습니다. 또한 삶의 의미가 알을 낳는 것이 아니라 뭔가 더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은빛연어에겐 강의 상류를 향해가는 여정이 자신의 내면을 성장시키는 여정이었습니다.

  저는 이 은빛연어의 모습에서 문득, 『갈매기의 꿈』의 주인공 조나단 리빙스턴이 떠올랐습니다. 갈매기 무리는 먹이를 잡는 데에만 골몰하지만 조나단은 신체한계를 넘어선 고속비행을 추구하고 그것에 성공합니다. 이처럼 집단과는 다른 행동과 사고를 하는 은빛연어와 조나단 리빙스턴에겐 비슷한 구석이 있습니다. 다른 점이라면 은빛연어에겐 자신을 사랑해주고, 자신의 희망을 이해해주는 연어가 있다는 점입니다. 은빛연어에겐 자신을 사랑해주는 ‘그의 누나’와 연인이 된 ‘눈맑은연어’가 있습니다. 이 둘은 은빛연어를 위해 희생하기도 했고, 그의 마음을 이해해주기도 합니다. 은빛연어는 홀로 있지 않았고 사랑과 신뢰라는 든든한 지원을 받고 있었습니다.

  연어 떼는 고통과 시련을 견디면 마침내 강 상류에 이르렀습니다. 그러자 폭포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알을 낳기 위한 자리로 가기 위해서는 폭포를 뛰어 넘어야합니다. 물론 그것은 어려워 보입니다. 연어 떼의 우두머리와 대부분의 연어는 편한 길을 택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은빛연어 만이 힘들더라도 폭포를 뛰어 넘자고 합니다. 그것이 연어의 길이자, 연어의 삶이며, 미래 연어들에게도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전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은빛연어는 강의 상류로 가기 위한 처음 단계부터 다른 이들과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다른 연어들처럼 무조건적으로 연어 떼의 규칙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습니다.(그 규칙은 연어 떼의 우두머리인 ‘턱큰연어’의 규칙이기도 합니다.) 물론 연어 떼의 규칙엔 나름 이유가 있습니다. 자기 멋대로만 한다면 바다 위 물수리의 먹잇감이 되거나, 사람이 쳐놓은 그물에 쉽게 걸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은빛연어는 동무들 사이에 빽빽하게 둘러싸여 헤엄치는 것보다 자유를 원했습니다.


  “나는 보호받으면서 따돌림 당하는 것보다는, 보호받지 않고 자유로워지고 싶거든.”

  “자유?”

  누나는 자유, 라는 말을 듣고 눈이 휘둥그레진다.

  자유, 라는 말은 연어들이 사용해서는 안 되는 말 중의 하나다. … 이 단어들을 쓰면 고향으로 돌아가 알을 낳을 수 있는 연어는 한 마리도 남지 않을 거라고 턱큰연어는 경고하곤 했다.

  “나도 자유롭게 헤엄을 치고 싶어. 바닷속을 마음껏 구경하고 싶다구. 나는 이 바다의 모든 것을 내 눈 속에 담고 싶거든.” 25p


  은빛연어는 자신이 자유롭고 싶은 이유가 바다의 모든 것을 자신의 눈 속에 담고 싶기 때문이라고 항변합니다. 우리도 사회에서 살아가는데 규칙과 규범은 필수불가결한 것이지요. 하지만 규칙에 매어 본질을 잃는 경우가 있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모든 것을 그저 주어진 상황에 안주하기만 할 뿐, 주위에서 일어나는 경이로운 것들에 대해 눈을 감아버리고 말았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하늘에서 해가 비추고, 땅이 힘을 얻어 꽃을 틔우게 하는 경이로움, 또는 옆에 있는 이에게 아주 작은 희생을 베풀면서 마음에 차오르는 기쁨과 같이 경이로운 일들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일어나곤 한다는 것을 기억해봅니다.  

  은빛연어는 무엇보다 자유를 원합니다. 여기서 자유는 은빛연어가 꿈꾸는 대로 ‘자신의 눈 속에’ 주위를 마음껏 담으려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은빛연어는 이 ‘자유’가 결코 방종이 아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자기 멋대로 행동하고, 모든 것을 마음껏 취하는 ‘자유’가 아니었습니다.


  “새우 특유의 고소한 맛은 언제나 입안에 군침을 감돌게 하는 매력이 있다. 하지만 과식은 하지 않는다. 자기 욕망의 크기만큼 먹을 줄 아는 물고기가 현명한 물고기라고, 그는 생각한다. 연어는 연어의 욕망의 크기가 있고, 고래는 고래의 욕망의 크기가 있는 법이다. 연어가 고래의 욕망의 크기를 가지고 있다면 그는 이미 연어가 아닌 것이다.” 30p


  은빛연어는 자신의 욕망을 거부하지 않습니다. ‘새우 특유의 고소한 맛’을 즐길 줄도 알았고, 먹이를 맛있게 먹는 욕망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식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것인 줄도 알고 있습니다. 끝없는 자유와 욕망으로 오히려 스스로 파괴의 늪에 빠지는 어리석은 (저를 비롯한) 인간들이 떠오릅니다. 남들이 명품을 걸친다고 해서 따라 입어야 하고, 남들이 많이 소비한다고 해서 자신도 똑같이 소비해야 비로소 마음이 편해지는 작은 마음을 어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욕망은 또다시 주림을 느껴 큰 입을 벌립니다. 주어진 것에 감사하기 보단, 소비와 욕망으로 내달리는 우리의 모습이 안쓰럽습니다.  


 어느 날에는 은빛연어가 곰에 공격을 받습니다. 그 순간 눈맑은연어가 자신이 상처를 입으면서까지 은빛연어를 구해줍니다. 은빛연어는 눈맑은연어가 다쳐가면서까지 자신을 구해준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 은빛연어에게 눈맑은연어는 이렇게 말해줍니다.


  “네가 아프지 않으면 나도 아프지 않은 거야.” 34p


  이 문장만큼 ‘사랑’이라는 단어를 잘 설명할 수 있을까요. 육체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희생 없이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없을 것입니다. 나를 내어주는 데서 비로소 사랑이 시작하고, 또 완성된다고 생각합니다. 내어줌 없는 사랑은 위선이나 이기심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타인을 위해 상처를 입고 ‘네가 아프지 않기에 내가 아프지 않다’는 눈맑은연어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 안에서 잠자고 있는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일깨워줍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목숨을 걸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생소했던 은빛연어에게 눈맑은연어는 “의미 없는 물이 출렁이던 속을 말끔히 비워내고 이제 비로소 신선하고 푸른 바람을 가득 채운 항아리”(47p)가 된 기분이 들게 할 정도로 소중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은빛연어에겐 의문점들이 많았습니다. ‘왜 강을 거슬러 올라야하는지’, ‘왜 알을 낳아야만 하는지’, ‘자신의 희망은 무엇인지’와 같은 알 수 없는 것들 투성입니다. 은빛연어는 숱한 어려움을 거치고, 목숨을 걸면서까지 상류로 헤엄쳐가는 이유가 오로지 알을 낳기 위해서라는 사실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은빛연어가 눈맑은연어에게 말합니다.


  “우리가 강을 거슬러 오르는 이유가 오직 알을 낳기 위해서일까? 알을 낳기 위해 사랑을 하는 것, 그게 우리의 삶의 전부라고 너는 생각하니? 아닐 거야. 연어에게는 연어만의 독특한 삶의 이유가 있을 거야. 우리가 아직 그것을 찾지 못했을 뿐이지. 그 이유를 찾지 못하면 우리 삶이란 아무 의미가 없는 게 아닐까?” 52p


  은빛연어는 보다 고결한, 혹은 이상적인 희망을 찾고 싶어 합니다. 먹고 사는 것 이외에 삶의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세상에서는 이런 사람을 두고, 이상주의자, 공상가라고 이야기하지요. 사실 저는 이상을 추구하는 은빛연어보단 그에게 대답해주는 눈맑은연어의 말에 더욱 눈길을 갑니다.  


  “글쎄, 네 생각이 틀렸다고 말하지는 않겠어. 어쨌든... 나는... 알을 낳아야 해. 그 누구도 아닌, 너와 나의 알을 말이야.” 52p


  눈맑은연어는 은빛연어를 다그치지 않습니다. 그의 생각을 존중해줍니다. 그러면서 삶이 그 자체로서 소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내비칩니다. 어느 날엔가는 물 밖 무지개를 보고 그것에 빠져 오로지 무지개만 찾아다니려는 은빛연어에게 눈맑은연어는 이렇게 말해줍니다.


  “아름다운 것은 멀리 있지 않아. 아주 큰 것도 아니야. 그리고 그것은 금방 사라지지도 않지.” 82p  


  자신의 삶과 자신이 있는 자리를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도무지 채워도, 채워도 만족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이유가 단순히 무한의 욕망이라기보단, 현실의 기쁨을 도무지 찾지 못하는 데서 오는 공허함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 종일 미래를 생각하지만 현실은 불만 가득입니다. 가까이의 기쁨을 찾지 못하기에 막연한 먼 미래만을 바라보며 자신을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으로 위로합니다. 내 실제적인 삶의 기쁨을 찾아내지 못하면서 미래의 기쁨을 찾는다면, 우리의 마음은 계속해서 공허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저는 이 책을 읽고서 세 부류의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 희망이란 가치를 아예 포기해버려 당장 눈앞에 이득만을 바라보는 사람.

  - 희망만을 좇으며 두발 딛고 서 있는 세상을 경시해버리는 사람.

  - 희망을 가지면서도 세상과 자신의 주위의 기쁨을 충분히 누리는 사람.


  내가 어떤 부류에 들어가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어쩌면 이 세 유형을 오고가며 사는 사람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 셋 부류 중에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해야 만하는 답이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연어』를 읽고 나서는 무언가를 희망하면서도, 지금 내 주위에 펼쳐진 기쁨들을 쉽게 놓쳐버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희망이 다소 막연할 수도, 주위의 기쁨이 잘 눈에 띄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그렇지만 작은 것에서 기쁨을 찾으면서 그것을 이어나갈 때 점차 희망들이 눈앞에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하는 희망을 갖게 됩니다.

  이 책 『연어』는 삶의 의미나 희망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삶에서 여전히 희미하게 느껴지는 분들이 읽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희망 없이 오늘만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오직 희망만을 바라보며 오늘을 소홀히 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이 책은 희망과 기쁨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어렴풋하게나마 우리에게 선사해줄 것입니다. 무언가 더 나음을 희망하면서도 지금의 기쁨을 잃지 않은 건강한 마음을 바라도록 말입니다.

  마침내 은빛연어와 눈맑은연어는 그들 사이에 생긴 알을 낳을 준비를 합니다. 알을 낳기 직전 그 둘은 대화를 나눕니다. 이 대화로 글을 마무리 하며 삶의 의미와 희망의 의미를 함께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은빛연어야”

  그녀의 그 맑던 눈에도 지나간 시간의 흔적이 역력하다. 그것은 세월이라는 긴 터널을 통과한 연어의 초상이었다.

  “너는 삶의 이유를 찾아냈니?”

  …

  “삶의 특별한 의미는 결코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뿐이야.”

  …

  “그럼 결국 희망을 찾지 못했다는 말이니?”

  “그래. 나는 희망을 찾지 못했어.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을 거야. 한 오라기의 희망도 마음속에 품지 않고 사는 연어들에 비하면 나는 행복한 연어였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지금도 이 세상 어딘가에 희망이 있을 거라고 믿어. 우리가 그것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말이야.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연어들이 많았으면 좋겠어.” 12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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