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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말구 Dec 20. 2021

[서평]누구도 스스로를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교황 프란치스코, 『어떻게 삶을 이어갈 것인가』

  2020년 3월 27일. 텅 빈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 비가 추적추적 내립니다. 언제나 순례자들과 관광객들로 북적이던 공간에 사람이 아무도 없고, 비까지 내리고 있어 더욱 쓸쓸한 감상을 전합니다. 그 텅 빈 곳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홀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다음의 말씀을 전합니다.


  “두터운 어둠이 우리의 광장, 거리, 도시로 모여들었습니다. 어둠은 우리의 삶을 앗아갔습니다. 그리고 귀가 먹먹해지는 침묵과 괴로운 공허함이 모든 것을 채웠습니다. 이 어둠이 스쳐 지나가면 모든 것이 멈춰버리는 것 같습니다.” 9p

https://www.youtube.com/watch?v=uJDrI5QlZpY


  코로나19의 확산세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을 때,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 세계를 향해 당신의 말씀과 축복을 전합니다. 이 의식을 가톨릭교회에선 ‘우르비 엣 오르비’(Urbi et Orbi)라고 합니다. 이는 로마를 비롯한 전 세계에 전하는 교황의 말씀과 축복인데, 부활과 성탄, 그리고 새 교황이 즉위할 때 발표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코로나19라는 전 세계가 맞이한 전례 없는 위기 속에서 ‘우르비 엣 오르비’를 발표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 위기에 맞서 싸우는 모든 이들을 위로하기 위한 교황의 축복인 것입니다.  


  이번에 함께 나눌 책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어떻게 삶을 이어갈 것인가』(原題: Life after the pandemic)입니다. 이 책은 교황께서 코로나19와 우리의 신앙을 주제로 한 문헌 8개를 담고 있습니다. 두 편의 ‘우르비 엣 오르비’와 여섯 편의 강론 및 서한입니다. 저는 이 메시지들을 관통하는 주제로 “우리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 “많은 이들과의 연대야말로 우리의 희망이라는 것”을 꼽고 싶습니다. 교황께서는 구체적인 사람들을 열거하시며 다음과 같이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의심의 여지없이 평범한 사람들이 지금 우리 역사의 결정적인 사건들을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의사들, 간호사들, 식료품점 점원들, 청소부들, 돌봄 노동자들, 운송업자들, 치안을 유지하는 사람들, 자원봉사자들, 사제들, 수도자들, 그리고 혼자서 구원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많은 이들입니다.”(17~18p)


  또한 다른 메시지에선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들을 돕고 있는 사람들을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 모든 시간 동안 우리가 무언가 배울 수 있었다면, 그 누구도 스스로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82p)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은 격리, 집합 금지, 거리두기와 같은 단어를 떠오르게 합니다. 각자 떨어져서 지내는 것이 바이러스의 확산세를 막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기도 하고요. 이럴 때엔 타인과의 연대나 결속이 떠오르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당신의 눈길을 방 안에만 두지 않았습니다. 돌아갈 곳이 없는 홈리스, 난민, 코로나로 인해 직장을 잃은 이들, 또 그런 이들을 위해 바이러스 감염이라는 위협을 무릅쓰고 헌신하는 이들에게 눈길을 두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리가 자신만을 생각하는 것, 내가 좋다면 모두 괜찮은 것이라는 이기심을 버려둘 것을 우리에게 촉구합니다. 교황은 2020년 부활 제2주일 강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이제 질병의 대유행에서 우리가 천천히 그리고 힘들게 회복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뒤에 남겨진 이들을 잊어버리는 위험도 있습니다. 바이러스보다도 더 나쁜, 이기적인 무관심이 공격해오는 위험입니다.”(94p)


  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이들이 고통받고 있음을 목격하고 또 체험합니다. 수많은 자영업자, 일용직 노동자, 또 바이러스 감염에 취약한 상황에 놓인 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 편에선 코로나19에도 타격을 받지 않고 더 큰 부를 쌓기도 합니다. 이를 ‘펜데믹 시대의 양극화’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나 돌봄 없이는 양극화가 더욱 심화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입니다. 이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 인류의 연대를 촉구합니다.


  “우리는 저마다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복잡한 문제야. 가난을 돌보는 것은 나의 일이 아니야. 다른 사람이 해야 할 일이지!’ … (하지만) 우리의 이익만을, 우리에게 속할 이해관계만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미래, 그 누구도 버려지는 일이 없는 모두의 미래를 준비해보는 기회로서의 시험, 지금 이 시간을 환대하며 맞이합시다. 모두를 끌어안는 비전 없이는 그 누구에게도 미래라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95, 99p)


  프란치스코 교황의 글을 읽으며 모두가 어려운 판데믹 시대에서 연대와 결속, 이웃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마음에 새기게 됩니다. 나부터가 현재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기에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려울 상황일수록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심을 주고받는 데에서 희망이 싹틀 수 있다는 믿음이야말로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판데믹 시대에 신앙생활과 전례 참여가 어렵기에 신앙에 목말라있습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은 우리를 좀 더 넓은 신앙의 차원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들에 대한 관심, 각자 어려운 상황에서도 고통을 함께 겪고 이겨내려는 연대야말로 우리가 부활에 참여하는 것이자, 구원받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당신의 여러 메시지를 통해서 누구도 스스로 구원할  없다는 사실”(17p, 60p, 82p) 강조합니다. 모두가 어려운  판데믹 시대에서 실천할  있는 신앙의 자세를 우리에게 일러줍니다. 풍랑을 만난 제자들이 두려움에 휩싸였어도(7~29p), 예수님께서 돌아가셔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좌절하는 마리아 막달레나 앞에서도(71~90p), 부활을 믿지 못하는 토마스 앞에서도(95~101p)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희망을 주신 분이라는 믿음이 판데믹 시대에서 신앙생활의 단초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기억하며 신앙 안에서 희망을 갖고, 내가 이웃과 나눌 것은 무엇이 있을지,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들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 인지 되돌아보고 실천할  있는 것은 무엇일지 성찰해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구원될  있다는 희망의 표지가 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메시지들을 기억하며,  어려운 시기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진정한 신앙의 의미를 마음에 새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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