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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레MARE May 17. 2023

죽는다면, 아무것도 남기고 싶지 않았는데.

기억이라는 특별한 권력

“오늘이 두 번째 오시는 거죠? 지난번에는 5번 테이블에 앉으셨는데.” 한 달도 더 전의 나를, 오늘의 식당 직원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은 어떤 차림새에 어떤 표정이었더라. 머릿속으로 달력을 휙휙 넘겨보며 그날의 나를 상상해 보지만, 딱히 특별할 것 없는 보통의 나였을 텐데. 직원의 눈에는 어딘가 기억에 남을 만한 구석이 있었나 보다.

 진부한 멘트로 같잖은 로맨스를 시도해 볼 수도, 오늘도 제가 보이시나요-라는 질문으로 스릴러를 꾀할 수도 있지만, “기억력이 좋으시네요.” 하고 적당히 대화를 흐트러뜨린다. 그리고 음식이 나오기를 가만히 기다리며 오늘의 주제를 “기억”으로 정했다.

 

  벚꽃이 피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학창 시절, 봄날의 벚꽃처럼 서둘러 곁을 떠난 친구. 꼭 해야 할 말이 있었는데, 미처 전하지 못한 채였다. 늦은 나에 대한 용서를 구할 수도 없었다. 너를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다짐으로 사과를 대신하겠다고, 어디 묻혀 있는지도 모를 친구에게 약속을 보냈었다. 어떤 죽음 뒤에는 “잊지 않겠다”는 말이 따라온다. 잊지 않겠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기억에 남는다는 것은, 그가 부존재 할 때에도 나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억은 생각을, 생각은 행동을 지배한다. 누군가의 기억에 남는다는 것, 그건 아주 특별한 형태의 권력이다.


 어떤 날에는, 함께 걸었던 길을 혼자 걸으며 친구의 호방함과 농담들이 나를 얼마나 웃게 했는지 생각한다. 동창들을 만나면 먼저 떠난 친구와 함께 책상에 마주 앉아 머리 싸맸던 시절이, 그날의 대화가 얼마나 소중했는지 반추한다. 그리고 살아낸다. 우리가 함께 머리 끄덕였던 소소한 가치관들과 결정들을 믿으며 살아낸다. 친구는 세상에 없지만, 여전히 나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다. 기억에 남는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죽는다면 정말 아무것도 남기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곤 했다. 흔적을 남기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인생은 별로였다. 그냥 흙으로 돌아가겠다고 결심하곤 했다. 한창 사춘기 때에는, 내 인생에 자식은 결코 두지 않으리라 다짐하기도 하고, 순장을 해서라도 사람들이 나를 기억하지 못하게 하면 어떨까,라는 극단적인 상상도 했었다. 나에게 명예나 권력 같은 것은 죽음보다 작았고, 죽음 자체보다는 죽음 뒤에 찾아올 변형된 내가 더 두려웠으니까. 혹자는 본인이 죽은 뒤라면, 그 어떤 것도 의미가 없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나를 변호할 수 없는 상황에서, 타인들이 내 가치를 왜곡하는 것이 끔찍했다.


  그런데 요즘은 다른 생각이 든다. 뭔가를 남겨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아니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전의 나는 그냥 겁이 많았던 것 같다. 죽은 후에도 회자되고픈 명예욕은 없지만, 사후에 내 뒷말을 하는 것이 걱정이었으니까. 자신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급히 떠난 내 친구처럼, 누군가를 살아내게 할 자신은 없었던 거다. 좋은 사람으로 기억될, 긍정적인 힘을 가질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힘을 가져보고 싶다. 단 한 사람, 단 한마디, 단 한 줄, 찰나라도 좋을 것이다. 벚꽃 같은 내 친구처럼 좋은 것들만 남기지는 못하더라도, 어느 날 누군가에게 문득 기억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그 기억이, 그가 살아내는 데에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 당신의 기억에 남는, 조금은 특별한 권력을 갖고픈 M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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