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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레MARE Aug 17. 2023

검은 밤에는 무엇이든 욕망해 볼 수 있다.

원하는 것과 가질 수 없는 것

 객석에서는 무대의 가수가 아주 작게 보였다. 주변에 앉은 관객들이 들리지도 않는 가수의 말에 기계적으로 호응을 해댔다. 여기저기 이유 없는 환호성으로 부산스럽다. 무대 위의 그가 하는 말이 들리다 말다 하다가, 마지막 한마디가 귓가에 꽂힌다.

“— 여러분도 원하는 것과 가질 수 없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김필이라는 가수는 노래보다는 말로 사람을 감동시키는 재주가 더 뛰어났다.


 욕망이라는 단어는 교양이 없어 보인다. 왠지 작은 동물의 가죽을 벗겨 만든 외투를 걸치고, 목과 손가락에 가당치 않게 두꺼운 반지와 금줄을 걸친 존재인 것만 같다. 편견이다. 21세기의 파우스트 마냥, 이성과 금욕에 강박을 가진 나의 젊음이 구석에서 울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늘그막에서야 악마에게 영혼을 걸고 계약한 파우스트에 비하면, 나는 아직 늦지 않았다. 다만, 나에게는 메피스토(악마) 같은 존재가 없으니.


 종종 꿈속에서나마 욕망의 대상을 가져 본다. 욕심 내서는 안되지만 갖고 싶은 것들, 가질 수 없는 것들. 내 것이 아닌 것을 탐하는 경우가 주로 그렇다. 타인만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을 내가 결정하고, 원하는 대로 조종하고 싶어 진다. 그래서 그런 꿈을 꾸나보다. 밤이 문제다. 하얀 종잇장에 무엇이든 그려볼 수 있다면, 검은 밤에는 무엇이든 욕망해 볼 수 있다. 밤에는 아무리 도망쳐도 떠오르는 사념과 망상이, 베갯잇 밑으로 숨어들어 나를 괴롭힌다. 수많은 “만약”들이 부풀어 오른다.


 관성에 이끌려 모든 것을 결정했던 때가 있었다. 좋아하던 것을 계속 좋아하고, 하던 것과 비슷한 것을 계속해나가고. 내가 호불호가 명확한 사람인 탓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떠올려보면 다른 삶의 양식이 떠오르지 않았던 것뿐인 듯하다. 새로운 것은 내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가까이하지 않았다. 이미 가진 것들만 끌어안고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그래서 원하지만 가져서는 안 되는, 가질 수 없는 것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질 수 없는 것들을 손에 넣는 꿈을 꾸게 되었다.


 한때는 무언가 있었던 자리에 대한 꿈을 꾸기도 한다. 논리 없는 끌림은 폐허가 되어 남아있다. 고흐의 그림들이 가장 좋았다. 하지만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의 그림을 단 한 점 밖에 팔지 못했다.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화가를 멘토로 삼기는 어려웠다. 순수 학문이 좋아 전공을 선택했지만,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일반론이 팽배했고, 실제로 학문도 취업도 쉽지 않았다. 명확한 이유 없이 왠지 끌렸던 사람들과의 관계는 단숨에 깊어졌지만, 빠른 바늘에 찔린 것처럼 마지막엔 피를 보고야 말았다. 하지만 그래도 그 논리 없는 끌림을 끝까지 무시할 수는 없다. 그래서 너무도 원하지만, 가지지 않기로 한 것, 아니면 가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꿈을 꾼다.


 원하는 것과 가질 수 없는 것 사이에서 균형. 아무래도 나는 꿈이라는 매개체로 그 균형을 맞춰보려 애쓰는 중인 것 같다. 다들 어떻게 균형을 맞추고 사는 걸까 궁금하다. 나는 포기 못하겠으니까, 거짓으로라도 가져보겠다는 마음으로, 오늘도 꿈속으로 뛰어들어본다.


- 원하는 것과 가질 수 없는 것 사이에서 비틀거리는 M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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