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편리

by 유다름

"참으로 편리한 세상이야."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세상이다. 오늘만 해도 내가 누린 편리가 이렇게나 많다.


1. 내 집 16층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사이, 스마트폰을 열어 지하에 주차된 차량의 공조 시스템을 켠다. 주차장에 도착해 자동차 문을 여니, 운전석이 시원해졌다. 참으로 편리한 세상이다.


2. 내가 참으로 시원하게 이용한 이 차량은 산 지 한달이 채 되지 않은 신차다. 차량 인수 전 새로 가입한 보험의 특약을 깜빡 잊고 있었다. 블랙박스 사진을 찍어 #문자를 보내면 보험료 일부를 환급해준다는 내용이었다. 새차 계약시 무상 서비스로 제공받은 블랙박스를 스마트폰 사진에 담아 그 자리에서 문자를 보냈다. 수분 후 보험사로부터 간단한 신원 정보를 확인하는 전화를 받았다. "보험료 3만*천원을 돌려주겠다"고 한다. 참으로 편리한 세상이다.


3. 회사 업무의 대부분이 MS앱, 메신저 등 오피스 협업 툴로 이뤄지는 건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얘기처럼 들릴 지경이니, 패스. 아무튼 참으로 편리한 세상이다.


4. 퇴근 후 삶도 편리의 연속이다. 로봇 청소기가 방을 치워주고, 식기세척기는 설거지를 대신 해준다. 가만 생각해보니 건조기가 없어 빨래를 직접 널어야 하는 불편이 있다. 조만간 건조기를 사서 더욱 편리한 세상에서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이렇게나 잦은 편리를 누릴 때면, 난 늘 궁금해진다. 이 편리는 왜 날 편안함에 이르게 하지 못하는가. 왜 우리의 불안함은 더 커져가는 것일까. 이 의문이 나한테만 해당하는 건 아닐 것이, 지그문트 바우만은 '액체 근대'(Liquid Modernity)란 개념으로, 울리히 벡과 한병철은 각각 '위험사회', '피로사회'라는 개념으로 불안 증세를 근대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병리 현상으로 간주한다. 이렇게 어려운 인문학적, 철학적 이론 없이도 우린 너무 잘 안다. 도처에 불안이 넘실댄다는 것을.


편리와 편안은 동의어가 아니다. 현상만 놓고 본다면 편리는 오히려 불안과 더 비슷한 말처럼 보일 지경이다. 기계문명의 속도전에서 우리는 편리를 얻는 대신 편안을 내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새 세탁기가 내 대신 빨래를 해주었다. 건조기가 없어 빨래를 직접 널어야 하는 신세다. 역시나 좀 더 편리한 세상에서 살자면 건조기를 사야 할 판이다. 불편을 편리로 바꾸려는 이 욕망 어딘가에서 불안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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