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한 과학주의에서 과학적으로 벗어나기
한의학의 진단과 치료방법론에 있어 '기계적으로 적용 가능한, 명료한 법칙'을 만들기 위해 한 사람의 현 상태(생리적, 병리적 상태)에 대한 일종의 '맥락'을 판단하는 개념을 포함하는 것이 필수불가결한 듯 하다.
진단과 치료의 '명료함'은 세부사항들이 결정한다.
어떤 사람의 현재 병적인 혹은 생리적인 상태가 어떤 유적적 혹은 체질적 바탕에 어떤 장단기적 변수들이 작용하여 형성된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그 사람의 주 호소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등을 판단하는 것이 진단과 치료결정을 좀 더 명료하게 해 줄 수 있다.
한의(韓醫)가 이 세부사항들을 평가하여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방식을 살펴보면, 오장육부의 생리 병리적 관계에 대한 독특한 인식에서 뿐 아니라 현상과 징후를 다루는 방법에서 양의(洋醫)와 차이가 난다. 한의는 인체와는 구분되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질환의 어떤 외적인 원인을 찾는 것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내외적 요소들 간 관계의 변화'를 '포착'하는 것을 진단(혹은 판단)의 주 목적으로 하고 그 '관계의 변화'를 정상화시키는 것을 치료의 주 목적으로 하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어 아토피성피부염이 있는 환자가 내원했을 때 한의에서는 '아토피성피부염'이라는 (양방적) 진단명이 치료방법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원 단계의 증후와 현상들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이 그것을 결정한다. 치료시일이 지나 그 증후와 현상들이 변화하면, 그것이 치유(최종목표)를 향해 진행되는 과정인지 여부를 다시 판단하고, 증후에 맞추어 변증을 재차 달리하여 동일한 '아토피성피부염'이라는 병명 안에서도, 동일한 사람 안에서도, 치료방법을 달리하게 된다.
현 시점, 환자의 현 상태에서 어떤 요소들을 '강조점(가장 주요한 사항)'으로 삼을 것인가가 한의사들의 변증을 결정한다. 그 결정된 변증이 정당했는지는 치유 혹은 호전되었는지 여부가 최종적으로 결정할 것이다.
이 '강조점'은 변증을 다르게 결정하게 할 수 있기에 중요한 변수이다. 이 '강조점'은 환자의 현 상태를 어떤 '맥락'에 있는지를 판단하게 한다. 바로 이 능력(정확한 맥락, 정확한 강조점을 찾아 변증할 줄 아는 능력)이 경험 많은 임상한의들과 기타의 한의 및 양의들을 다르게 만드는 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