形과 質
1825년에 젤터(Zelter)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노년의 괴테는 임박한 유럽의 쇠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무도 더는 자신을 알지 못하며, 아무도 그가 그 속에서 움직이고 일하는 요소를, 그가 다루는 주제를 이해하지 못한다. 순전한 단순함이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우리는 단순한 사람들을 너무 많이 보아왔다. 젊은이들은 너무 쉽게 흥분하여 그 시대의 소용돌이에 휩쓸려간다. 세계가 찬양하는 것은 부와 신속함이고, 모든 사람이 이것을 이루려고 노력한다. 철도, 빠른 우편, 증기선, 가능한 모든 종류의 신속한 커뮤니케이션은 교육계가 기획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계는 과잉 교육하고 있으며, 평범한 상태가 지속된다. ... 지금은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세기이며, 빨리 지각하는 실용적인 인간을 위한 세기이다. 비록 그들이 높은 수준의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아닐지라도 영리함을 지녔으며, 무리에 대해 우월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 우리, 그리고 아마도 소수의 다른 사람들은 곧 되돌아오지 않을 세기의 마지막 인간이 될 것이다.
<하이데거, 제자들 그리고 나치>, 유럽의 니힐리즘 中
200년 전 노년의 괴테는 정확히 진단(診斷)했다. 괴테가 정의하는 평화와 현대의 우리가 정의하는 평화는 다를 수 있다. 통계적으로 세계는 더 평화로워졌다고 하는 의견이 있고 나는 그 의견에 동조하는 편이기 때문에 괴테의 진단이 정확하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가 온전히 부정적인가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다만 한 가지 조심해야 할 것은, 온전히 부정적이라고 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혹은 절대적으로 현재가 괴테의 시대보다 더 옳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가치가 괴테 시대의 가치보다 우월하다고 비교해낼 수 없다는 점이다. 그 시대에 귀하게 여겼던 가치는 그 시대의 맥락 안에서 옳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의 맥락에서는 옳지 못하더라도 그 시대에서는 최선이었을 수 있다. 현대의 가치도 그렇지 않은가. 현대의 가치는 가장 높이 쳐준다 해도 현대의 맥락에서 '최선'일 뿐이다. 성급히 내가 가진 것을 우월하게 여기고 과거의 가치를 매도하는 것은 무지막지한 오판이다. 결과는 폭력일 뿐.
영화 <오펜하이머>를 보고 나와서 드는 생각. 아이히만도 시스템 안에서 다수의 죽음에 기여하였고, 오펜하이머도 시스템 안에서 다수의 죽음에 기여하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런 동일한 구조에서는 동일한 평가를 내리는 경향이 있었으나, 지금은 구조만 가지고는 동일하다고 평가할 수 없음을 이해한다. 구조 못지 않게 質, 色, 맥락이 중요한 차이를 만든다. 어렵지만 어쩔 수 없다. 어렵다고 그것을 무시하면 무지막지하고 폭력적인 오판을 하게 될 것이므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