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짠이의 첫 번째 양가 방문
5단계 여행 계획의 1단계 "차로 2시간 거리 국내 여행"은 성공적으로(?) 완료했다. 이제 다음 2단계 "양가(차로 4시간 거리) 방문"을 실행할 차례. 짠짠이의 친가는 전남 광양, 외가는 경남 창원, 멀지 않은 거리라 한 번에 순회방문하기로. 내가 광양에 있는 회사 본사에 일주일 출장을 가기로 하고 일월화수는 본가에, 목금토일은 처가에 머무는 일정을 잡았다. 처가에서 매일 광양으로 출퇴근은 어려우니 수요일 밤에 처가에 처자식을 데려다 두고 목금은 나만 광양에서 출근, 금요일 밤에 처가로 와서 지내다가 안양으로 복귀. 결론적으로 아주 좋은 코스! 이 일정을 명절 직후에 잡아서 복잡한 명절 방문을 패스한 것은 덤. 이후로도 본사 출장을 잘 활용해서 양가 방문을 했다.
손주가 내려온다고 하니 양가 부모님은 싱글벙글 두근두근. 집마다 손주가 오면 뭘 할지 즐겁게 고민하셨는데, 처가에서는 딸이랑 사위한테 뭘 먹일까 무슨 음식을 할까 했다면 본가에서는(정확히는 우리 아버지는) 손주를 데리고 어디를 갈까 이리저리 알아보셨다. 이런 순간마다 아들로서 한 적이 없는 효도를 내 아들 덕에 하는 기분이다. 짠짠아 땡큐!
2단계 여행답게, 더 먼 거리를 이동하고 긴 기간을 머무른다. 처음 시도하는 4시간 차량 이동과 1주일 체류. 다행히 짠짠이는 차 타는 걸 거부하는 편은 아니었고 지난 춘천 여행도 나름 순조롭게 이동했지만 4시간도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의 선택은 차에서 밤잠을 재우며 이동하기! 짐을 차에 다 챙겨둔 뒤에 저녁 먹고 씻기고 잠옷 입혀 차에 태워서 밤잠을 재우고 논스톱으로 달리는 것. 잠, 수유, 기저귀 등등 모든 변수를 날려버리는 방법이라 생각했는데 성공적! 두근두근하며 짠짠이를 카시트에 태우고 백색소음 틀고 출발했는데 30분쯤 지나니 짠짠이는 잠이 들었고 광양에 도착하는 3시간 반 동안 쭉 잤다. 좋았어 이거다! 장거리도 두렵지 않다! 하지만 본가에 도착해서 다시 재우는 데 약간 고생한 건 안 비밀(...).
이미 봤던 손주인데 본인 집에 있으니 그건 또 새롭고 신기하신가 보다. 아버지 엄마 얼굴이 활짝 피셨네. 나도 신기하다. 본가에 아들이랑 같이 있다니. 아내랑 결혼하고 왔을 때는 이렇게까지 신기하진 않았는데. 안 그래도 1년 전 형이 결혼하고 나서는 두 분만 사시는 집에 손주가 들어오니 두런두런 시끌벅적. 집안이 꽉 찼다는 옛말 그대로다. 엄마, 아내, 아들을 집에 두고 출근하는 것도 색다른 기분. 현실적인 측면으로는 집안일을 거의 안 해도 되는 게 최고(...). 나도 아내도 엄마가 해주는 밥 먹고 청소 빨래 설거지에서 벗어나니 좋았다. 애가 생기니 왜 옛날에 대가족으로 살았는지 알겠다.
첫 양가 방문의 중요한 이슈 중 하나는 공동 육아에 있어 부모님과의 합을 맞춰보는 것. 장인어른, 장모님은 우리 집에 올라와 며칠 머무시면서 육아의 합을 맞춰봤지만 우리 아버지, 엄마는 이번이 처음이다. 나는 처제만 없으면 처가에서 팬티 바람으로도 다니는 뻔뻔한 멘탈의 소유자지만(사위도 자식인데 뭐!) 우리 최대주주님은 시댁이 어려운 평범한 며느리인지라 나름의 걱정을 안고 시댁 육아에 임했다. 결론적으로, 아버지는 출근하셔서 큰 영향은 없었고 엄마는 아내와 합이 괜찮았다. 다행. 장가도 못 가고 홀아비로 살 줄 알았던 본인 아들을 거둬다가 연애하고 결혼하고 손주까지 낳은 며느리에 대한 절대적인 지지가 그 배경이었으리라. 10년 넘게 매번 아내에게 고맙고 또 고맙다는 울 엄마. 무슨 일이든 본인 아들보다는 며느리가 옳다고 하는 울 엄마. 다행스러우면서도 왠지 서러워지는 건 뭘까(...). 어린 시절의 긴 불효는 장래 배우자에게 큰 자유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걸 노리고 최대주주님을 만나기 전까지 꾸준히 불효했읍니다. 20년이 넘는 큰 그림.
광양 본가 방문을 잘 마치고 창원 처가로 이동. 짠짠이는 바깥구경을 하다가 지루해질 때는 동요를 열심히 불러주면 크게 떼쓰지 않고 1시간 정도는 잘 있었다. 무사히 처가에 도착! 처가가 본가보다 육아환경이 나았는데 장인어른께서 몇 년 전에 은퇴를 하셔서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전하신 덕분. 그리고 손주 이뻐하기로는 네 어르신 중 제일이라 짠짠이는 외가에서 바닥에 닿을 일이 없이 계속 할아버지 품에 안겨 있었다. 아내, 처제, 처남은 이걸 보고 "우리 어릴 때는 안 저러더니!" 하고 살짝 서운해했다는(...). 장인어른은 머쓱해하시면서 "그땐 일한다고 바쁘고 힘들어서 여유가 없었다. 미안타. 애기 보는 게 이리 힘든 줄 몰랐네. 너네 엄마가 고생 많았다."라고 말하셨다. 대부분의 우리 부모님 세대 아버지들이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본인 자식 어릴 때 미처 모르고 지나간 시간을 손주를 통해 늦게나마 가져본다는 건 참 좋은 거지 싶다. 아내도 자기 아빠가 자기 아들을 끔찍이 여기는 게 내심 신기하고 좋은 기색이다. 손주가 이뻐서도 그렇지만 본인 딸 덜 고생하라고 이것저것 도와주시는 게 보기 좋았다.
본가와 처가 모두 아기를 위한 인프라가 없었고 처음이라 짐을 아주 많이 챙겨갔다. 짠짠이 수건, 기저귀 등등 소모품도 싹 챙기고 옷 챙기고 필수 물품들 좀 챙기고 우리 짐 적당히 챙겼더니 대형 캐리어 2개가 꽉 차더라는(...). 심지어 아내가 완모 중이라 수유 물품은 전혀 없었는데도 그랬다.
1. 수면: 배게, 백색소음 세트, 쪽쪽이, 방수패드
2. 옷: 여름 내복 4, 가을 내복 3, 외출복 4, 양말 10, 모자 1
3. 목욕: 타월, 접이식 욕조, 로션, 손수건 다수, 대변 손수건, 세탁 세제
4. 돌봄: 사운드북, 기저귀 한통, 물티슈, 건티슈, 상비약 세트, 담요, 책, 장난감, 비타민, 유산균, 손톱깎이
돌이켜보면 소모품들은 현지 조달하거나 적당히 어른 것을 써도 될 텐데 처음이라 그런지 최대한 쟁여가게 되더라. 막상 아들은 본가와 처가에서 신나게 잘 지냈다. 낯도 안 가리고 잘 웃고 잘 안겨있는 우리 아들은 모든 가족들에게 잔뜩 이쁨을 받았다.
나와 아내는 가족들 덕에 힐링을 많이 했다. 4개월간 쉼 없이 반복된 육아노동에서도 조금 벗어나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잠도 자고, 아무것도 안 하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짠짠이랑 가족들이 다 같이 시간 보낸 게 아주 좋았다. 여태까지도 화목한 가족들이었지만 더 다채롭고 화사해졌달까. 아들 덕분에 부모님께도 효도하고 가족들과도 좋은 시간 보내고 우리도 힐링하는 일주일을 보내고 안양으로 돌아왔다. 돌아올 때도 4시간 내내 숙면해준 짠짠이 땡큐! 이제 3단계 여행을 추진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