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에 중국 갑니다
드디어 정식 입사일인 2015년 7월 1일. 중국 출장을 다녀온 지 며칠 안 된 상황에서 이제 정말로 이 회사의 직원이 되는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정장을 입고 거울을 보니 묘한 기분이었다. 3년간 다녔던 대기업에서의 마지막 날과는 전혀 다른 긴장감. '이제 정말 시작이구나. 직원분들이 선입견 안 가지도록 잘해야 할 텐데.'
본사와 공장이 고향인 전남 광양에 있어 첫날 오전은 고속버스로 이동. 버스 안에서 나름의 긴장도 좀 풀어보고 이런저런 생각도 하다 보니 어느새 광양터미널 도착.
아버지, 기획실장님과 같이 점심을 먹고 회사에 들어가서 일반적인 입사 절차를 거쳤다. 근로계약서 서명, 회사 계정 및 메일 생성, 사내 제도 안내, 명함 신청 같은 것들. 직급은 가장 낮은 임원인 이사. 전 직장에서는 막내 대리였는데 갑자기 임원이라니 어색하고 부담스러웠다. 실은 입사 전에 별생각 없이 대리나 과장 직급이면 되지 않겠냐고 했었는데 중국 법인장이고 가업승계를 받을 계획인데 무조건 임원으로 와야 한다고 하셨다.
기본적인 입사 절차를 마치고 나니 일정이 안내됐다. 8일(첫 주 5일 + 다음 주 3일) 간 교육을 받은 후 중국 지사로 부임한다는 것. 입사 전에 예고했던 일정 그대로. 입사 절차를 처리하고 직원분들과 인사를 나누다 보니 긴장, 어색함, 설렘이 뒤섞인 오후가 금세 지나갔다.
2일 차부터는 본격적인 교육이 시작되었다. 먼저 공장에서 생산 교육부터 시작. 우리 공장은 예전에도 가본 적이 있어서 특별한 감흥은 없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 따라 가끔 갔던 곳이니까. 전에 있던 대기업과 비교하면 확실히 소박하고 투박한 느낌. 샌드위치 패널로 만들어진 평범하고 오래된 공장 사무실과 기름 냄새나는 생산 공장.
생산 공정을 돌아보며 우리가 만드는 제품에 대해 자세히 배웠다. 철강으로 제조한 토목자재. 재료공학을 전공했지만 실제 제조 현장에서 써먹을 부분은 딱히 없었다. 원자재 철강의 물성인 항복강도, 인장강도, 연신율 같은 용어를 이해하는 정도. 원료가 들어와서 가공되고 완제품이 나가는 과정을 보니 '아, 이런 걸 만드는 회사구나' 하는 실감이 났다.
교육을 담당한 분들은 생산팀장님과 공장장님. 특히 공장장님은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냈던 분이라 그런지 내게 아주 호의적이었다.
"명문대 나오고 대기업 다니던 인재가 왔으니 회사가 더 잘 되겠구만!"
"열심히 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속마음) 으아악 부담스러워(...)
이런 식의 덕담을 주고받았는데 어찌나 부담스럽던지. 나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은 거 아닌가, 실망시키면 어쩌나, 직원분들에게 어떻게 인정받아야 하나 이런 생각이 가득했다.
3일 동안 공장에서 생산 교육을 받고 마지막 5일 차에는 중국 지사와 중국 사업에 대한 교육 및 미팅이 이어졌다. 중국 지사는 중국에 진출한 대기업 공장의 협력업체이고, 몇 년 전 중국 시장 진출의 교두보로 삼고자 인수한 거라고. 제품도 본사와는 달라 독립적으로 운영하며 실적만 보고하는 정도라 본사와 협업하는 부분이 거의 없다고 했다. 이제 원래의 본업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본사의 해외사업팀과 협업해서 중국 시장 영업을 추진하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해외사업팀과 상견례를 하고 영업 계획을 논의하는 시간이 있었다. 팀장님이 중국 시장 현황과 우리의 진출 전략에 대해 설명해 주셨는데, 배경 지식이 부족한 탓인지 전략이 아직 구체적이지 않아서인지 별로 와닿지 않았다. 2014년에 어떤 회사들이 우리 회사에 방문했고 어느 회사들이 우리와의 협업에 관심이 있다 정도만 정리가 되어 있었고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여전히 모호했다.
그래서 누구한테 뭘 어떻게 팔아야 하지?
이 질문의 답을 찾는 삽질과 노가다를 2년 동안 중국에서, 그리고 이후에도 계속하게 된다.
둘째 주 전반부는 경기 안양의 수도권 사무소에서 설계와 시공 기술에 대한 교육이었다. 여기서는 우리 제품이 실제 건설 현장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 설계는 어떻게 하는지를 배웠다. 도면과 복잡한 자료들을 보면서 이런저런 설명을 들었지만, 별로 감이 오지 않았다. 아, 토목공학을 전공할 걸 그랬나(...). 이때 교육받은 게 이거였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건 꽤 나중의 이야기. 이렇게 짧은 기간 동안 압축 교육을 받으면서 순식간에 8일이 지나갔다.
교육 기간 동안 특별히 직원들과 교류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나는 사장님 아들이고 곧 중국 갈 사람이라서 다들 특별히 신경 쓰지 않는 느낌이었다. 어차피 당장 사무실에 오래 있을 사람도 아니고. 직원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느껴볼 겨를도 없었다. 회사 전반에 대해 배우긴 했지만 여전히 피상적인 느낌이었다. '진짜 공부는 중국에 가서 하게 되겠구나' 생각했다.
교육이 끝나고 중국으로 출국할 날이 다가왔다. 신혼 6개월을 채우지도 못하고 떠나는 것이 좀 아쉬웠지만, 어차피 정한 일정이니까. 아내는 "자주 연락하고, 너무 무리하지 말고, 술 적당히 마셔"라고 당부했다. 벌써 내가 중국에서 술 많이 마실 거라는 걸 알고 계신 최대주주님(...). 짐을 싸면서 '정말 새로운 시작이구나' 싶었다. 짧은 교육으로는 여전히 뭘 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모르겠지만, 일단 가서 부딪혀보자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나의 중국 생활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