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중국에서 다시 미성년자가 되었다

혼자서 할 줄 아는 게 없다

by 다비드

중국 지사 부임 초기, 매일 출근하면 업무에 대해 적응하고 퇴근하면 중국 생활에 대해 적응하는 기간이었다. 다행히 대학 입학 후 10년 넘도록 자취를 했기 때문에 혼자 살면서 자취 살림 하는 것에는 익숙했고 요리, 청소, 빨래 같은 기본적인 생활은 문제없었다. 하지만 중국어를 통해 해야 하는 공적 서비스는 온전히 직원들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경제활동이 가능한 1인이 되려면 여러 가지 행정 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중 첫 번째로 한국과 마찬가지로 금융 관련 신분 증명을 핸드폰 번호로 하기 때문에 핸드폰 개통이 필수. 여권 챙겨서 윤경리와 통신사에 가서 적당한 삼성 핸드폰을 구입하고 개통까지 완료. 생각보다 간단했다. 외국인이라 복잡할 줄 알았는데 요금제니 할부원금이니 복잡한 한국보다 오히려 간편한 느낌.

중국 핸드폰 번호가 생기고 나서는 한국 핸드폰, 중국 핸드폰 두 개를 들고 다니면서 사용했다. 중국에서는 주로 중국 핸드폰 위주로 사용했는데, 여기서 처음으로 병음 자판 입력을 배웠다. 병음 입력은 같은 음이 나는 한자들 중에서 선택하는 방식이라 글 쓰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한글이나 영어에 비해 상당히 불편했다. 예를 들어 'ni hao'라고 치면 '你好', '尼好', '泥好' 등 여러 선택지가 나오는데, 그중에서 맞는 한자를 골라야 했다. 물론 자동완성으로 빈도가 높은 글자부터 나오긴 했지만 글자를 일일이 고르는 단계가 필요하니 영 불편. 그래서 중국인들이 메신저로 문자보다 음성 메시지를 많이 사용한다는 게 이해가 갔다. 나도 중국어를 배우면서 글로 쓰는 것보다 말로 하는 게 더 편했다. 중국은 아직 문맹률이 높아 말은 해도 글은 못 쓰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는데 내가 딱 그 문맹이 된 느낌.

465970507_9640489659299338_5440265970163961246_n.jpg 뭔 소린지 모르겠어요 (3)

핸드폰을 개통하면 비로소 은행 계좌 개설이 가능. 거주 지역에 한국 우리은행 지점이 있어서 계좌를 개설하고 중국은행 계좌도 개설했다. 우리은행 계좌는 한국으로 송금하는 용도 정도로만 사용하고 중국은행 계좌를 주로 사용. 체크카드도 발급해서 사용했는데, 한국이랑 크게 다르지 않아서 큰 어려움은 없었다. 나중에는 영어로 된 중국은행 인터넷뱅킹도 스스로 공부해서 사용했다. 휴대폰 인증만으로 모든 절차가 가능해서 오히려 한국보다 편리한 느낌. 외국인이 이렇게 간편해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외국인 직원의 중국 근무에 필수적인 것은 거류증. 거류증은 여권에 인쇄되어 1년 체류 비자 기능을 한다. 거류증을 받고 나면 번거로운 중국 비자 받는 절차를 패스할 수 있는 게 큰 장점. 이것도 우리 직원이 내 여권과 서류를 관계 당국에 제출하고 며칠 지나니 완료.

거류증이 나오면 운전면허 취득이 가능했다. 면허가 없어서 매일 윤경리가 출퇴근을 시켜줘야 했는데, 이게 영 마음이 불편하고 미안했다. 아무리 총경리라지만 직원에게 운전기사 역할을 시키는 거는 몸 둘 바 모르겠는 그런 기분. 한국 운전면허가 있으면 필기시험만으로 취득 가능하다고 해서 서둘러 준비했다.

필기시험이 좀 웃긴 게 통역을 데려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명목은 통역인데 실상은 대리시험. 2015년 기준, 우리 돈 16만원 정도를 내고 중개인을 찾으면 행정 수속, 대리 시험을 전부 해주었다. 시험은 CBT 방식이라 컴퓨터에서 나오는 문제에 답을 클릭하는 방식. 총 100문제, OX 40문제, 4지선다 60문제, 각 1점, 90점 이상 합격. 문제 난이도는 많이 어렵지 않다고 하지만 커트라인이 90점이니 나름 쫄깃한 느낌. 통역을 가장한 대리시험자와 같이 들어가서 자리에 앉으면 그 사람이 옆에 앉아서 마우스를 잡고 문제를 다 풀어줬다. 답을 찍으면 바로 정답 여부가 나오고 틀리면 정답이 팝업으로 떴다. 문제를 패스하고 나중에 푸는 것도 가능. 그래서 다 풀면 점수와 합격 여부가 바로 나왔다. 옆에서 통역이 푸는 걸 보는 게 나름 흥미진진. 10문제당 1개 이하로 틀려야 하는데 이 선을 왔다 갔다 할 때 두근두근. 30문제까지 3개 틀렸을 때까지는 나름 긴장하면서 봤는데 뒤에 가니까 마음이 편해지더라. 최종 점수는 94점. 또 재미있는 게, 이 통역이 나만 하는 게 아니고 같은 시험장의 다른 사람 두 명을 더 해서 세 사람의 통역(을 가장한 대리시험)을 했다. 시험시간이 45분이고 한 사람 당 10분 정도씩 쓴 듯한데, 나를 제일 먼저 해주지 않았으면 좀 당황할 뻔. 이렇게 해도 되나 싶은 절차를 거쳐 중국 운전면허증 획득.

20150629_110620.jpg 야생의 중국 도로로 나가자

핸드폰 개통, 계좌 개설, 거류증 신청, 운전면허 취득 등 모든 절차를 윤경리와 총무 직원이 진행해 줬다. 당연히 중국 지사 업무의 일부이긴 하지만, 이런 개인 신변 관련 일을 직원들을 통해 하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마음이 불편했다. 성인이 되어 대학에 입학하고 혼자 자취하면서 모든 걸 스스로 해왔는데 다시 미성년자가 된 느낌. 그 외에도 중국 생활과 관련된 것들을 윤경리 도움을 많이 받고 있어서 얼른 스스로 할 수 있게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언제쯤 혼자서도 모든 걸 처리할 수 있을까?

중국어도 배워야 하고, 중국의 행정 시스템도 익혀야 하고, 중국 지사 업무도 파악해야 하고, 할 일이 산더미라 마음이 조급했다. 하지만 당장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어려운 것들이다 보니 특별한 뭔가를 할 의지나 아이디어는 마땅치 않은, 마음은 조급하지만 몸은 굼뜬 그런 이율배반적인 상태가 이어졌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09. 한국 출장을 가면 눈치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