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희망회로를 돌리게 된다

이것은 전망인가 희망인가

by 다비드

입찰 공고가 올라오고 나서 바로 고객사 구매부와 기술부에 상황 파악을 지시했다. 윤경리가 조사해 본 결과, 구매부가 기술부와 협의 없이 단독으로 입찰 공고를 낸 것으로 확인됐다. 기술부에서도 당황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객사의 전방위적인 원가 절감 방침으로 우리 고무제품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외주 계약에 입찰이 진행되었고, 그 뒤에는 총경리의 강력한 의지가 있었다. 이미 공고가 난 입찰을 되돌릴 수는 없는 상황. 결국 입찰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 준비했던 10% 단가 인하로 제출할지, 중국업체의 단가를 고려하여 추가 단가 인하를 할 것인지 고민이 깊었다. 10% 단가 인하는 영업이익이 0에 가까운 수준으로, 중국 지사 운영을 위한 최소한 수준으로 설정했으므로 추가 인하는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럼 손실을 감수하면서 이 사업을 유지시킬 이유가 있을까? 중국 지사의 미래와 현재의 고무 사업에 대해 생각해 보니,

저부가가치 제품

본사의 본업인 토목자재 사업과 시너지 없음

대기업 고객사에 종속된 사업

이런 사업을 출혈을 감수하며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방침을 정했다. 10% 인하 원안으로 입찰 서류를 제출하기로 결론지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어차피 이 사업을 중단하더라도 나와 윤경리의 인건비는 들어가고 신규 사업을 추진할 시간과 자금도 필요한데 손해를 보더라도 시간을 버는 것도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오히려 사업을 접을 각오를 했다는 게 지금은 신기하게 느껴진다. 몰라서 그랬지 싶다.

'어차피 이 사업으로는 장기적인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워. 입찰에 떨어지면 새로운 길을 찾아보자.'

Gemini_Generated_Image_r3xy40r3xy40r3xy.png 나쁜 선택지와 더 나쁜 선택지뿐(...)

입찰 서류 제출 후 지속적으로 정보를 파악했다. 중국업체 4개가 입찰에 참여했으며, 그중 1개 업체가 2015년에 테스트 및 납품 실적이 있어 유력한 경쟁자였다. 가격은 우리가 제출한 입찰가 대비 15% 낮은 걸로 파악됐다.

"15%나 낮다고요?"

"네, 그렇게 들었어요. 그리고 구매부는 우리와 중국업체 1개 회사가 물량을 절반씩 나눠가지는 안을 검토한다는 소식도 있어요."

그리고 며칠 후, 구매부에서 실무자를 통해 비공식적으로 제안이 왔다. 중국업체와 물량을 반씩 나눠서 계약하자는 것. 우리는 절반 물량으로는 손해가 막심하기에 못한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실제로 이렇게 입찰 결론이 날 수도 있으므로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했다. 약 3개월 동안 경쟁업체 품질 문제를 이슈화하여 계약 철회를 유도하고, 진행 중인 신규 거래처 발굴도 속도를 내보고, 고무 사업 지속 여부를 판단하기로 방침을 수립했다.

구매부에서 1월 말까지 입찰 결과를 발표하기로 했지만 지연됐다. 구매부와 기술부가 갈등이 있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우리에게 나쁘지 않은 상황으로 느껴졌다.

"아무래도 기술부 반대가 심하니 고민 중인 거 같아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중국업체는 품질 문제가 있으니까요."

"우리한테 유리하게 돌아가는 건 아닐까요?"

희망적인 추측을 하며 기다렸다. 매일 아침 출근하면서 '오늘은 좋은 소식이 올까?' 하는 마음으로 지냈다.

465891825_9651191471562490_4056704217615150606_n.jpg 아미타불 부디 우리 회사를 굽어살피시어(...)

2월이 되고 설날 연휴도 지난 2월 18일, 구매부장이 우리 공장에 방문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입찰 결과에 대한 통보겠구나.'

그동안 전화나 메일로 소통하던 구매부장이 직접 방문한다는 것은 중요한 얘기가 있다는 뜻이었다. 좋은 소식일까, 나쁜 소식일까?

구매부장이 도착해서 자리에 앉더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입찰 결과를 알려드리러 왔습니다. 전체 물량 중국업체로 결정됐습니다."

그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예상은 했지만 막상 들으니 충격이었다.

"언제부터 적용되나요?"

"3월 1일부터입니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구매부장은 담담하게 말했지만, 우리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중국 지사의 유일한 수입원이 끊어지는 순간이었다.

구매부장이 떠나고 나서 윤경리와 나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본사에 보고부터 해야겠습니다."

중국 지사의 운명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이제 정말 새로운 길을 찾아야 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2. 총경리님의 능력을 보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