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우리만 나가는 게 아니네
2022년 12월, 드디어 분당 프로젝트가 종료되었다. 1년 반 동안 계속된 새벽 5시 10분 출근, 저녁 7시 30분 귀가의 일정이 끝나고, 8시 출근, 5시 퇴근의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출근이 이른 편이긴 했지만, 아들이 일찍 깨면 다 같이 아침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아내와 아들이 잠든 새벽에 혼자 나가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아빠! 일어나!"
"응, 아들도 일어났네. 같이 아침 먹자!"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신기하고 소중한지. 아침에 같이 침대에서 뒹굴다가 일어나서 아침을 챙겨 먹을 수 있다니. 하지만 가장 큰 변화는 저녁을 매일 같이 먹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아내도 혼자 아들 저녁을 챙기지 않고, 내가 같이 저녁 준비를 하고 아들이랑 놀기도 하니 좋아했다. 아들이 만 4세에 가까워지니 어른 메뉴를 같이 먹을 수 있어서 같이 먹는 즐거움이 더 커졌다.
"오늘 뭐 먹을까?"
"아들아, 뭐 먹고 싶어?"
"탕수육!"
매일 볶음밥과 탕수육을 외치는 아들이지만, 이런 대화 자체가 행복했다.
저녁을 같이 먹게 되니 가끔 셋이서 동네 식당들로 외식을 다니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한식 주점 같은 식당에 가서 아들이 먹을 메뉴와 우리가 좋아하는 안주를 같이 주문하고, 아내와 맥주나 막걸리를 즐겼다. 아파트 단지 인근에 있는 식당들이라 그런지 아이를 데려오는 손님들이 흔해서 맘 편히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잘 먹고 나가는 길에 아들이 "잘 먹었습니다!" 하고 인사를 하면 식당 직원 분들이 다들 좋아했다. 이런 게 소소한 일상의 재미.
2023년 새해에 우리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현재 다니고 있는 아내 직장 어린이집을 그대로 다닐지, 아니면 다른 어린이집으로 옮길지에 대한 고민. 직장 어린이집이 아내 출퇴근과 등하원에는 최적화되어 있고 2년간 잘 다녔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직장 어린이집의 아쉬운 점들:
아내가 등하원을 다 맡아야 하는 것
도심지 오피스 빌딩에 있어 야외활동이 거의 없는 것
연령이 올라가며 원아 수가 줄어드는 것
특히 마지막 문제가 크게 다가왔다. 직장 어린이집 특성상 1-3세가 입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4-7세가 중간에 입소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유아기에 입소해서 이직, 이사, 유치원 전원 등으로 빠져나가는 경우가 많아서 5-7세 반은 숫자가 적었다. 특히 우리 아들 기수에 남자아이들이 매우 적어서 아쉬웠다.
"아들반에 남자아이가 몇 명이나 있어?"
"3명밖에 없어. 여자아이들이 훨씬 많고."
알아보니 아들 어린이집 동기 부모들도 비슷한 고민 중이라고. 그래서 우리도 집 근처에 걸어갈 수 있는 큰 규모의 어린이집으로 옮기는 것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어린이집의 장점들:
반마다 적절한 성비에 인원도 많음
집에서 가까워 내가 등하원에 참여할 수 있음
어린이집 앞에 마을 공원이 있어 아이들이 하원 후 뛰놀기 좋음
야외활동 프로그램도 풍부함
조건만 보면 확실히 더 좋아 보였다.
그런데 잘 적응해서 다니고 있는 직장 어린이집에서 나오는 게 맞나? 괜히 옮겨서 다시 적응한다고 아들 고생시키는 거 아닌가 하는 고민이 되었다. 맹모삼천지교를 할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아들 교육 환경을 극성맞게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닐까?"
"그런가? 하지만 더 좋은 환경이 있다면..."
고작 3세인 아들 보육 환경에 대해 이렇게 고민을 하게 되다니, 나중에 학교를 가게 되면 교육으로 얼마나 고민거리가 많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겼다.
결론은 더 좋은 환경을 기대하며 새로운 어린이집으로 옮기기로 했다. 그리고 내가 하원을 맡기로. 보통 하원하면서 그날의 피드백을 선생님에게 듣는데, 잘 못 지냈다던가 말썽을 부렸다는 이야기를 듣는 게 아내의 큰 스트레스였다.
"수업 시간에 소리 지르고 울었어요."
"친구랑 싸웠어요."
듣고 그냥 그런 날도 있지 하고 넘기면 마음이 편할 텐데, 아내는 그렇게 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하원하면서 피드백 듣는 역할을 내가 하기로 했다.
그렇게 2023년 3월부터 동네 어린이집 생활이 시작되었다. 다행히 아들은 잘 적응했다. 새로운 친구들, 새로운 선생님, 새로운 환경에 금세 익숙해졌다.
"아들아, 새 어린이집 어때?"
"좋아! 친구들이 많아!"
아내도 하원 부담을 덜어서 만족스러워했다. 나도 아들 하원하면서 어린이집 앞 공원에서 노는 걸 보는 게 힐링이었다. 하원하면서 선생님으로부터 아들이 잘 못 지냈다는 피드백을 듣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나는 정말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하면 안 되는 행동에 대해서 집에서 지도는 하는 거지만 어린이집 생활을 완전히 통제할 방법은 없으니 그냥 두었다. 그건 이전 어린이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아들의 생활은 크게 달라진 게 없는데 직접 피드백을 듣지 않는 것만으로도 아내의 스트레스가 확 줄었다.
고민이 많았지만 새로운 변화를 선택하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은 생각보다 적응력이 좋았고, 새로운 환경에서 더 많은 자극을 받으며 성장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가족 모두가 만족하는 결과였다. 앞으로의 육아도 변화를 너무 두려워하지는 않기로 했다. 물론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지만, 더 좋은 선택지가 있다면 과감하게 도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정도.
분당 프로젝트가 끝나고, 어린이집도 바뀌고, 이제 정말로 평범한 일상이 시작된 것 같았다. 아침에 아들과 함께 일어나고, 저녁에 가족이 함께 식사하고, 주말에는 온전히 가족 시간을 보내고. 그렇게 2023년 봄, 우리 가족의 새로운 일상이 시작되었고 이어서 코로나도 종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