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Gate Bridge National Recreation area, California
바람이 세차게 불어왔다. 나의 길지도 짧지도 않은 머리카락은 바람에 따라 극적으로 춤을 추었다. 매초마다 열정적인 내 머리 스타일 덕분에 사진을 어떻게 찍어도 코미디였다. 사실 이건 상관없었다. 나에게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예를 들면, 2천 미터 해협이 얼마나 광활하면서 대담한 지, 햇살처럼 쨍한 주황색의 다리가 파란색의 하늘과 바다 사이에서 얼마나 잘 어울리는 지와 같은.
이쯤 되면 이 다리를 설계했다는 조셉 스트라우스(Joseph Strauss)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격렬하게 반대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10여 년을 보냈고, 4년 만에 골든게이트교(금문교)를 완공했으니까. 그것도 1937년 당시에 세계에서 가장 길고 가장 높은 현수교를. 강하게 소용돌이치는 조수와 해류, 깊은 수로, 거센 바람, 짙은 안개, 천문학적인 건설비용, 선박 충돌 우려 등 반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을 다 이겨내고서.
그때 불가능을 이야기했던 사람들은 이 다리가 훗날 세계적으로 유명해질 거라고 꿈에나 상상해 보았을까. 만약에 그들이 끝까지 반대해서 프로젝트가 실행되지 못했다면, 골드게이트교가 없는 샌프란시스코는 과연 오늘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었을까.
변화의 시작은
단순하다.
필요한 건
오직
단 한 사람.
주류(대세)라는 것이 항상 옳지 않았다는 것을 역사가 오래도록 증명해 왔다. 그럼에도 구태여 다수여야 할까. 어째서 소수는 힘에 겨워야 할까. 애초에 굳이 둘로 나눠야 할까. 어떻게 하면 작은 목소리, 소외된 생각들까지 함께 할 수 있을까. 너, 나 구분 없이, 차별 없이.
나는 어떠했는가. 돌이켜보면 나는 인생에서 엄청나게 번쩍거리며 대단한 순간이 언젠가는 올 줄 알았다. 하지만 대학교를 들어가도, 직업을 가져도, 결혼을 해도, 불꽃 터지는 화려한 파티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 인생에 반짝이는 순간이 있었다면, 그건 커다랗고 요란한 사건이 아니었다. 오히려 땅을 뚫는 시도 끝에 무심히 드러나는 작은 새싹 같은, 성장이었다. 뜻하지 않은 순간 은근히 나를 흔든 무언가에게 진심으로 마음을 내어줄 때 찾아오는 것이었다. 잔잔한 호수에 던져진 돌멩이가 그리는 동그란 물결 같은 파장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미세하게 다가왔던 작지만 수많은 가능성들을 그동안 얼마나 많이 무시했던가.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조그맣게 들려오는
조셉의 목소리를
외면했던
숱한 날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크고 우렁찬 반대의 목소리들. ‘힘들어. 못할 거야. 시간도 없잖아. 지난번에도 잘 안 됐어. 해봤자 헛수고야. 뭐가 달라지겠어. 그냥 살던 대로 살아.’ 어쩌고 저쩌고 끊임없이 핑계를 댔던 순간들이 미련한 얼룩으로 남아있었다.
나는 어쩌면 삐딱한 얼굴에 팔짱을 끼고서 다수 편에 서있었는지도 모른다. 크고 힘이 센 것 같고, 가만히 있어도 뭘 한 것 같은 착각 뒤에 숨어서. 미약하게 올라왔다 사라지는 성장의 가능성들이 사실은 오랜 시간 끊임없이 밀려오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섬으로 끝도 없이 부딪혀 다가오는 파도처럼.
강렬한 오렌지빛 다리에게 대담함을 배웠다. 설계자 조셉에게 용감한 끈기를 보았다. 그건 힘세고 강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단호하면서도 섬세하게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작은 울림이 다시금 나를 찾아온다면, 나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찬찬히 시간을 들여서 귀 기울일 수 있을까. 조셉의 목소리가 만든 기적의 다리를 떠올리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