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Sands National Park, New Maxico
더운 여름을 잠재울 기세로 오전 내내 내리던 비가 막 그쳤다. 공기는 개운했다. 잘 자고 일어나 기지개를 켤 때의 내 몸처럼. 시곗바늘을 돌려 다시 아침이 찾아온 것 같은 상쾌함이 내 피부에 와닿았다. 비가 오는 동안 굳게 닫혔던 화이트 샌즈 국립공원 입구가 활짝 열렸다. 문이 열리기 전까지 두 시간 동안 우리의 애타게 출렁이던 마음은 어느새 증발해 버렸다. 축축한 조바심이 날아간 자리에는 설렘, 기대, 흥분이 뒤섞여 만들어진 결정체가 반짝거렸다.
현실을 벗어난 곳이었다. 하얀 모래 언덕에 가까워질수록 내 마음은 사정없이 쿵쾅거렸다. 난 다른 우주에 온 것 같은 착각을 할 참이었다. 자그만 화장실 건물, 네모난 자동차, 알록달록 사람들을 등지고 서서 내 눈앞에 열린 새하얀 백지의 세계를 보면서. 아득히 펼쳐진 하늘과 광활한 모래 언덕이 지평선 저 멀리 끝에서 만날 듯했다. 나도 그들과 함께 닿고 싶었다. 그 부드러운 선 위에 하나의 점이 되고 싶었다. 그 선을 따라 음표같이 오르락내리락하며 넘실대고 싶었다. 파도처럼 출렁이듯 그 흐름에 내 몸을 내맡기고 싶었다.
빗물을 잔뜩 머금은 모래는 단단해져 있었다. 바람과 빗물의 결 따라 움직이다가 어느 순간 정지해 버렸다. 빗방울 자국도 뽕뽕뽕 그대로. 시간이 멈춰 있었다. 비 그친 하늘은 아주 낮게 깔린 구름을 가득 끌어안고 있었다.
약 12,000년 전 호수였다. 시간이 지나 호수 물이 증발하고 셀레나이트(selenite, 투명석고) 결정체가 생겼다. 강한 바람이 그들을 잘게 부서 버렸다. 지금도 석고(gypsum) 모래가 계속해서 만들어진다고 했다. 다른 모래와 달리 여기 아래에는 물이 있어서 건기에도 야생동물이 살아갈 수 있다고 국립공원 리플릿에 적혀 있었다. 내 눈으로 볼 수 있는 것 너머에 내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이 언제나 존재한다.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친절 같은 물 덕분에, 다양한 초록 식물들이 모래 위에 자라고 있었다.
기념품 가게에서 남편과 나는 꽤 진지했다. 썰매의 색깔과 크기와 미끄럽게 내려가도록 도와준다는 왁스를 고르는 일을 할 때였다. 신이 난 딸아이는 스카이콩콩을 탄 듯 수시로 통통 뛰어올랐다. 보름달 같이 동그란 빨간 썰매와 조그만 지우개 크기의 왁스 한 조각을 손에 쥐고 가게를 나오면서.
비로 다져진 모래 위에 썰매를 타던 커플이 있었다. 그들은 같은 곳을 여러 번 내려가며 미끄럼틀 같은 길을 야무지게 만들어놨었다. 사이좋게 2줄을 나란히. 우리의 부러워하는 눈길을 알아챈 건지, 그들은 하얀 썰매길을 우리에게 기꺼이 양보해 주었다. 이제 막 가려던 참이라며. 그때부터 3시간, 우리만의 썰매장이 성황리에 오픈했다.
나의 딸은 왁스를 정성스럽게 바른 썰매 위에 자리 잡고 하얀 길 위를 전문적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얼음 위에 스케이트 날처럼. 부드럽고 매끄럽게.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교한 날렵함으로. 그녀의 웃음소리가 하얀 공간을 가득 메웠다. 7살 아이의 체력은 시간이 지나도 방전되지 않았다. 전염성이 지독히 강한 그 기쁨과 행복의 바이러스는 화이트 샌즈 국립공원 전체에 퍼져나갔다.
눈부신 웃음의 썰매길을 딸아이가 국가대표 선수처럼 진지하게 타는 동안, 남편은 혼자 모래언덕 여기저기를 걸어 다녔다. ‘저 언덕을 넘으면 풍경이 더 멋있을 거야’ 하며 계속 가보았고, 막상 가보니 예상했던 것과 달라서 실망했다고 했다. 멀리서 더 굉장해 보이는 다른 언덕을 가봐도 결과는 똑같았다고 했다. 더 대단한 무언가를 보겠다는 열망이 생겨 그렇게 걷다 보니 결국 처음 자리에서 본 경치가 제일 좋았다고 했다. 기대와 실망을 반복했고 그래서 허무했다고. 고독한 은둔자처럼 그의 뒷모습에 왠지 모를 쓸쓸함이 묻어 나왔던 이유였다. 마치 사막 위 신기루를 쫓는 것처럼.
그건 한 인생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살면서 내가 수없이 느낀, 그 공허함이었다. 어디 있는지 모르고, 뭐가 진짜인지도 모르는 ‘행복’이라는 신기루를 찾던 여정이었다. 내가 찾던 행복에는 어떤 조건이 늘 붙어있었다. 내가 해온 이것보다 저기 저것이 더 좋아 보이는데, 저걸 하면 나는 더 행복해지겠지. 내가 가진 이것보다 저기 저걸 가지면 더 행복해지겠지 하면서. 나에게 행복이 없다는 전제부터가 오류였다. 올바른 결론이 나올 수 없는 논리였다.
사실,
행복은
나에게
처음부터
주어져 있었다.
내게 내재되어 있었다.
단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이었다. 이것과 저것의 문제가 아니었다. 소유와 행위의 문제가 아니었다. 수많은 노력과 기대, 좌절을 반복하면서 나는 마침내, 내 속에 잔잔히 빛을 내는 등불 같은 행복을 알아보게 되었다. 서서히 나 자신과 내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할 줄 알게 되었다. 나이 든다는 건, 얼굴에 주름이 늘어가는 것 외에 이런 영혼의 성장 같은 대단한 장점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다음 날 아침, 우리는 다시 한번 더 하얀 모래 언덕으로 달려갔다. 하늘은 화창했고 햇살은 눈부셨다. 투명하고 따스한 햇빛을 받아 눈이 닿는 곳 어디든 하얗게 빛이 났다. 모래는 아직 단단해서 우리의 발자국을 그대로 찍어내고 있었다. 어제의 빗방울은 이들에게 차분하게 쉼을 주고 있는 듯했다. 잠시 여행을 멈추고 한 곳에 정착하는 안정감을. 아늑한 휴식이 주는 그 안도감을. 주변에 좋아하는 이들과 함께 가져보는 쉼표의 여유를.
맑은 날 건조한 모래를 보지 못해서 상상을 해보았다. 모래알의 자유로운 영혼을. 가고 싶은 곳으로 바람을 타고 어디든 날아갔을 탐험정신을. 오늘 모래는 태양을 한가득 품을 것이다. 뽀송한 공기를 한 아름 안고서 두둥실 가벼워지면, 그때 자유의 몸이 될 것이다.
그리고
곧
여행을
떠날 것이다.
민들레 홀씨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