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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음의 바다 May 21. 2024

한계를 정하고 싶은 유혹

Yosemite National Park, California



눈에 보이는 모든 암석들이 거대하고 기품 있었다. 엘 캐피탄(El Capitan)이나 해프 돔(Half Dome)의 솔로 무대가 아니었다. 모두가 주인공인 합창이었다. 저마다의 우아함이 있었다. 땅에 서서 그들을 우러러보았다. 나의 딸과 남편, 그리고 나는 커다란 바위 옆에 자그마한 개미 한 가족 같았다.





갑자기, 그러나 당연히 한낱 인간임을 명쾌하게 깨달았다. 쨍한 햇살이 나에게만 사정없이 내리쬐는 것 같았다.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수천 년을 살아온 그들 앞에서 고해성사하는 기분으로 나의 어리석음을 알아차렸다. 넘어져 긁힌 상처에 빨간 소독약을 바를 때의 통증 같은 찌릿함을 느끼며.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들어오기 직전, 남편과 작은 말다툼을 했었다. 나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 동안 사랑만 해도 부족할 것인데. 초롱초롱한 눈으로 뒷자리에 앉아있는 딸아이 앞에서. 그게 뭐라고 우리는 바득바득 우기며 큰 소리를 냈을까. 이 웅장한 암석 무리는 침묵과 진중함으로 부드럽게 나를 깨워주었다. 이 순간이 영원할 것이라고 착각하는 듯한 나를. 나의 시간은 착실히 끝을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은 듯한 나를.





땡볕 아래 짧은 트레일을 걸었다. 더위에 녹아내린 초콜릿처럼 끈적거리며 우리는 서둘러 가까운 식당을 찾아갔다. 점심시간이라 사람들로 넘쳐났지만 우리에겐 다른 방도가 없었다. 내 피부의 마지막 땀방울마저 다 말라 사라져 그 존재조차 기억이 안 날 즈음, 한 자리를 가까스로 비집고 앉았다. 그렇게 입에 넣은 피자 한 조각이 왜 그렇게 맛있었을까. 입맛은 짜잔 되살아나며 우리에게 웃음을 돌려주었다. 복잡하고 뾰족한 감정이 심각한 파도를 만나 격하게 너울거리다가 맛있는 음식 한 입에 일순간 잠잠해졌다. 행복해진 우리는 단순하고도 정직한, 인간이었다.








이제는 가까이서 볼 차례다. 아침 햇살을 품고 글레이셔 포인트(Glacier Point) 전망대로 올라갔다. 같은 눈높이에서 그들을 다시금 만났다. 여전히 범접할 수 없는, 장엄하고 고결한 힘이 보였다. 수천 년을 그 자리에 서있는 그들 앞에 백 년도 채 못 있다가 갈 사람들이 수도 없이 지나갔을 것이다. 상상하기도 힘든 긴 시간 속을 헤쳐온 자연의 웅대함이었다. 뭉클한 감동이 점차 커져갔다. 설탕 실타래를 휘감아 점점 커지는 보송한 솜사탕처럼.


예전의 내가 절대 느낄 수 없었던 감정이었다.  자연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고 살았었다. 그저 그런 산이고 바다였었고, 어디든 볼 수 있는 바위이고 나무였었다. 이제 나는 모든 걸 새롭게 배우고 느끼고 알아가는 중이었다. 마치 지금까지 한 번도 여행하지 않은 것처럼. 마치 지구에서 처음으로 자연을 마주한 것처럼.








나는 딸에게 매번 놀라고 있었다. 국립공원 어디를 가든 너무나 자연스러운 모습에서. 어제와 오늘, 요세미티에서 우리는 각기 다른 트레일을 세 번 걸었다. 한여름에 뜨거운 햇살 아래 어른조차 걷기가 벅찼었다. 어찌 된 일인지 일곱 살 꼬마아이는 그 힘듦을 어떻게 다루는지 잘 아는 것 같아 보였다. 자신을 계속 도전하게 했으며 자연 속에서 즐거울 수 있는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내었다.


오늘 마지막으로 걸었던 워시번 트레일(Washburn Trail)은 나를 끊임없이 시험에 들게 했다. 그만두고 싶었다.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길은 끝이 나지 않았다. 챙겨간 물이 우리 가족에게 턱없이 모자랐다. 갈증으로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태양이 나를 돋보기 삼아 내 머리 위로 빛을 모으듯이 내리쬐었다. 나 자신의 한계를 의심했다. 그저 한계이고 싶었다. 먼지 폴폴 날리는 흙길에서 이 숨 막히는 더위에 이게 정말 맞는지 외치고 싶었다. 에드바르트 뭉크의 작품 <절규>의 주인공이었다. 그 트레일 위에서 나만.


나의 딸을 보았다. 두 뺨이 복숭아빛으로 물들고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흐르고 있었다.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단지, 자기 얼굴만큼 커다란 솔방울을 발견해서 기뻐했다. 단지, 멋진 나뭇가지 지팡이를 찾고 싶은 마음에 눈망울을 반짝였다. 그녀는 결국 나를 끝까지 가게 했다. 힘겹게 찾아간 마리포사 그루브(Mariposa Groove, 요세미티에서 가장 큰 세콰이어 숲)는 정비 중이었고 입구는 단단히 닫혀있었다. 허탈한 웃음이 내 발걸음처럼 터덜터덜 나왔다. 대신 입구 주변에 거대한 세콰이어가 우릴 해맑게 환영해 주었다.





세콰이어 숲에 들어가지 못한 건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트레일에서 수업을 받았고, 힘들지만 강렬한 배움을 얻었다. 딸아이의 자연 탐험정신은 불쑥불쑥 찾아오는 나의 의심을 통해 깨닫도록 했다. 내가 원하지 않고 포기하고 싶은 그 무언가는, 결국 내가 정한 한계를 넘어서게 만드는 기회라는 걸. 트레일 왕복 4마일의 3시간은 나에게 그런 의미가 되었다.


그것은

한계의 마주침이었고,
한계의 새로고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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