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guaro National Park, Arizona
12월의 햇살은 담요처럼 포근했다. 푸른 하늘의 도화지 위에 물감 같은 하얀 구름은 예술가의 붓 가는 대로 춤을 추는 듯했다. 소노란 사막(Sonoran Desert)은 광활하고 고요했다. 더위가 한 발짝 물러선 사막과 하얀 눈이 없는 겨울은 제법 잘 어울렸다.
광대한 사막에 키 큰 사와로(Saguaro) 선인장이 셀 수 없이 가득했다. 소리 없이 압도적이었다. 끝이 둥그런 몸통과 팔은 은은한 연둣빛이었다. 온몸을 뒤덮은 가시들은 줄을 세워 가지런했고 복슬복슬했다. 뾰족함을 느낄 수가 없었다. 마냥 부드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의 딸은 사와로를 보자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반가워했다. 학교에서 선생님과 같이 그림책 <선인장 호텔>을 보고 나서 친근해진 것 같았다. 신이 난 딸아이는 나와 남편에게 들려주었다. 소노란 사막에서 선인장을 호텔 삼아 사는 동물들의 이야기를.
검은색 동그란 구멍이 많이 보였다. 책에 나온 그 호텔방이었다. 누가 사는지 방주인은 다 보지 못했다. 잠시 산책을 나갔거나, 방 안에서 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뜨거운 햇살 아래 건조한 사막에서 시원하고 아늑할 그 방 안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그 앞을 지나가며 우리 가족은 조용히 대화를 나눴다.
사막의 침묵 속을 걸었다. 우리가 사와로를 보러 온 것인지, 사와로가 우릴 보려고 서있는 것인지 헷갈렸다. 그들은 이곳에 사는 모든 생명체의 수호신이었다. 여기 가만히 서서 수많은 삶의 탄생과 죽음을 끝도 없이 목격하고 있었다. 다른 동물과 곤충에게 편안한 집과 맛있는 음식을 아낌없이 내어주면서. 소노란 사막에서 중심이자 시작과 끝을 묵묵히 지키면서.
12미터 이상 클 수 있는 그들은 2미터도 안 되는 사람 앞에서 거인처럼 보였다. 몸에서 팔 하나 뻗치기까지 60년 이상 걸린다고 했다. 그들은 나보다 먼저 태어나서 나보다 더 오래 살 것이다. 사막에서 150년 넘게 살 수 있는 생명력이 놀라웠다. 비가 올 때 빗물을 잔뜩 흡수해서 저장해 놓았다가 필요할 때 조금씩 쓰며 가뭄에도 살아낼 수 있는, 그들은 참 현명해 보였다.
나는 그렇게 살고 싶었다. 즐거울 때 기쁨의 빗물을 차곡차곡 모았다가, 힘들 때 미리 저장해 놓은 그 단물을 홀짝 마시며 기운을 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어떤 스트레스가 나를 덮쳐와도 나는 태연히 냉장고를 열어 그 물을 꺼내 마시고 기분 좋아질 텐데. 물병에 물이 줄어드는 게 보이면 더 열심히 웃고 즐거워하면서 물을 찰랑찰랑 채울 수 있을 텐데.
나는 물병을 넣어둔 냉장고를 아직 못 찾은 기분이다. 분명 물을 담아 놓았는데, 정작 필요할 때 마셔 본 적이 있었던가. 뙤약볕 같은 부정적인 기운이 나에게 스며들었을 때, 가뭄 같은 좌절이 불현듯 찾아왔을 때, 갈증 같은 우울이 나에게 타들어 갈 때에도. 지혜의 물 한 모금이 얼마나 간절했었는지 모른다. 오늘 사와로 국립공원에서의 이 충만한 시간도 지금 나의 물병을 착실히 채워주고 있었다. 언젠가 내가 원할 때, 달디 단 나의 물을 빨리 찾을 수 있다면. 호로록 마시고 살아낼 힘을 얻을 수 있다면. 그리하여 지금보다 회복탄력성이 좋아진다면. 사와로처럼 삶에 유연해질 수 있을까.
트레일을 걷다가 뜻밖에 아기 사와로를 만났다. 얼마나 귀여운지. 나의 딸 주먹만 한 크기였다. 땅 위로 동그란 이마를 불쑥 내밀고 있었다. 생명을 다해 쓰러져 형체를 잃어가고 있는 사와로 옆이었다. 삶과 죽음이 나란히 있었다. 그 둘은 항상 함께니까.
아기 선인장의 생명력은 빛이 났다. 100여 년의 시간이 끝난 사와로는 그럼에도 아름다웠다. 긴 세월에 담아낸 뜨끈한 진심과 애정이 존경스러웠다. 한 세대가 가고 또 다음 세대가 온다. 딸아이의 말랑한 손을 잡고 서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소중해서 꿈같기도 하다.
죽음이 있어서
삶은 더 밝다.
새로운 삶이 있어서
지나온 삶은 더 가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