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unt Rainier National Park, Washington
독보적이었다. 다른 건 눈에 보이지 않았다. 주변 풍경을 흑백으로 만들고 눈 덮인 마운트 레이니어(Mount Rainier)만이 멀리서도 선명했다. 우리는 시애틀에서 출발해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안전하게 보호받는 느낌이 들었다. 이 산이 버티고 서 있는 한, 왠지 모를 안심을 할 것 같았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라다 폭포(Narada Falls)는 바빠 보였다. 아침에 늦잠 자서 학교를 향해 전력 질주하는 아이처럼. 뜨거운 햇살이 빙하를 녹이자 물방울이 잠에서 깨어나 정신이 번쩍 든 것 같았다. 그리고 바삐 내달리는 중이었다. 가다가 다른 친구도 깨워서. 콸콸 콸콸. 물방울이 물줄기가 되고, 계곡이 되고 강이 되어 태평양 바다까지 갈 것이다. 그러니 바쁘다. 어서 가자, 외치면서. 고맙게도 작은 무지개를 만드는 건 잊지 않았다.
7월의 여름이 겨울일 수 있었고 봄일 수도 있었다. 계절의 경계가 사라져 버렸다. 빈약한 상상력으로 틀에 박힌 삶을 살아온 나에겐 적응의 시간이 필요했다. 어제는 너무 더워서 소금에 절인 김장배추처럼 축 쳐져 있었는데. 오늘은 딸아이가 맨손으로 작은 눈사람을 만들었다. 바로 옆에는 초원이 푸릇했다. 상상 속 이야기 같지만 현실이었다. 어쩌면 내가 알고 있다고 믿었던 현실은, 내가 만들어낸 재미없는 네모 상자 속 세상이었을까. 나는 벽 하나 밀치고 상자 밖으로 나갔다.
우리는 눈 사이를 걷고 있었다. 스카이라인 트레일(Skyline Trail) 위에서. 쌓여있는 눈덩이가 미처 떠나지 못해 어설픈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곧 갈 거야, 하는 눈빛으로. 트레일에는 눈이 녹아내린 물길이 여기저기 보였다. 더운 열기가 레이니어산을 막 겨울잠에서 깨운 듯, 이곳은 생동감 넘치는 봄이 시작되고 있었다. 활발한 생기가 산 꼭대기에서부터 계곡을 따라 빛을 내며 흘러내렸다.
트레일을 벗어나 초원을 가로지르는 관광객들이 보였다. 여러 명의 파크 레인저가 여기저기 다니며 연약한 초원을 밟지 말라고 큰 소리로 안내하고 있었다. 같은 내용의 안내간판도 여러 곳에서 보았다.
아이러니했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국립공원을 지정하고 관리하는데, 많은 관광객이 다녀가면서 또 다른 훼손이 일어나고 있었다. 자연의 위대함을 알고 소중한 자연을 지키기 위해서는, 사람이 직접 와서 보고 느껴야 하는데. 그러려면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와야 하니까. 길도 닦아야 하니까. 숙박시설도 필요하니까. 식당도 있어야 하니까. 머무는 동안 쓰레기가 발생하니까. 알고도 모르는 척 야생동물에게 먹이 주는 사람도 있으니까. 무지해서 초원을 밟기도 하니까.
우리는 자연을 지키겠다고 하면서 지키지 못하고 있었다.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겠다고 자원 소비가 큰 텀블러 구입엔 관대해졌고, 비닐에 포장된 친환경 채소를 사고 있었던 내 인생도 모순 투성이었다. 미처 알아채기도 전에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이 모순의 쳇바퀴를 벗어날 수는 있을까.
영화 <트루먼 쇼>에서 트루먼은 평범한 줄 알았던 자신의 인생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의문을 밝혀내기까지의 과정은 복잡했고 탈출은 험난했다. 바다 끝에서, 벽에 가로막혀 좌절했다. 하지만 결국 ‘출구’를 찾아 나간 것처럼, 어쩌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단순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이러니의 고리를 당장 끊어낼 수 없어도. 그럼에도 우리에게 필요한 건 후대를 생각하며 나무를 심는 마음 같은 것이 아닐까.
우리에게도
비상문이 보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