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맑음의 바다 Oct 07. 2024

어쩌면 나도 배추처럼



놀랍게도 아직 여름이었다. 작년 이맘때 지리산 가을하늘의 구름바다​에서 헤엄쳤던 추억이 아련했다. 단편인 줄 알았던 2024년의 여름은 무더운 날이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장편 시리즈였고, 9월 중순의 폭염은 깜찍한 별책부록이었다. 가을비인 듯 아닌 듯 부슬비가 계속되던 어느 날, 한여름 장마철처럼 후텁지근하던 어느 날, 달팽이처럼 더디게 가는 더위에서 우리를 구해줄 마지막 보루를 찾아 떠났다.


물을 찾아 헤매다 황망히 주저앉아버린 사막의 여행자처럼, 우리의 믿음이 신기루였음을 곧 알게 되었다. 최종 보루는 그 어디에도 없었기에. 한국 도시 중 해발고도가 가장 높은 곳, 태백시의 그 서슬 퍼런 냉기도 이번 대서사시 같은 더위에 백기를 들고 있었다. 햇빛을 못 받아 힘없이 쳐진 꽃처럼 이곳마저 맥없이 더웠다.



신비로운 안개 속 태백산 민박촌



밤새 내린 비가 그치고 안개 자욱한 아침을 맞았다. 공포영화 볼 때처럼 공기가 싸늘했다. 이제까지의 지난한 더위 따위 아무렴 상관없어졌다. 손자국으로 지저분해진 거울을 말끔히 닦은 듯이 개운했다. 신령스러운 태백산을 극적으로 만나기 위한, 무대 위 안개효과가 시작되었다. 왠지 오늘 날씨는 이래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불지 못하는 휘파람을 불고 싶어졌다.








휑한 주차장에서 서늘한 바람이 연신 불어댔다. 추위를 타지 않는, 반바지 차림의 남편은 집에 있는 긴바지를 그리워했고, 딸아이는 바람막이 점퍼를 가방에서 꺼내 입었다. 도심에서 느끼지 못한 가을이 자연에는 이미 와있었다.


유일사탐방로 입구 간판을 보고 걷기 시작했다. 이 풋풋한 산에 오고 싶어서 기나긴 외로운 밤 같은 여름이 끝나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랐다. 뽀얀 안갯속에, 하늘을 가릴 정도로 빽빽한 연초록빛의 찬란한 잎사귀들이 한없이 싱그러웠다. 아침이슬 샤워를 마친, 다양한 색깔의 조약돌들은 햇빛 한 줄의 무대조명 없이도 내 발 밑에서 그리도 반짝거렸다.





키 큰 나무가 빼곡히 서있는 산길을 계속 올라갔다. 갈수록 안개가 짙어졌다. 숨이 가빠졌다. 시원한 바람이 사라졌다. 공기 속 밀집되어 있는 물방울처럼, 온몸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어떤 습도가 어떤 온도를 만나면 이런 환경을 만들 수 있는 건지 과학적 호기심이 생겼다. 미약한 인간은 끈적거리는 땀에도 휘청거렸고, 적막한 대자연은 그저 초연했다. 안개가 가득한 숲 속에서 헉헉대는 우리의 숨소리만이 크게 들렸다.





운전을 할 때 안개는 위험하지만, 여기는 자동차처럼 내달릴 일도, 부딪힐 일도 없었다. 걷는 속도만큼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으며, 내게 필요한 시야는 충분히 확보되었다. 인위적인 세계에 살면서 가졌던 안개에 대한 부정적인 프레임을 벗어던지고 나는 홀가분해졌다.


공기 중에 떠있는 투명한 물방울이 하나하나 모여 어떻게 이런 빛깔을 낼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층층이 안갯속에서 나뭇잎들은 숨바꼭질하듯이 눈앞에 있는 듯 없는 듯 기묘한 아름다움을 뿜어내었다. 안개가 숲을 안고 있는지, 숲이 안개를 품고 있는지 몰랐다. 안개는 오늘 이곳에 있었고, 존재 그 자체로 충분했다.


어떤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모르는 답답한 상태를 흔히 안갯속에 있다고 표현을 했었다. 항상 멀리 보지 못해 초조해했었다. 가끔은, 내가 걸어가는 길만큼만 잘 봐도 됐었다. ‘앞길을 내다보지 못하는 나’도 괜찮은 것이었다. ‘안갯속에 있는 나’도 괜찮은 것이었다. 발을 딛고 있는 곳에서 나 자신을 알아주면 되는 것이었다. 앞서 나갈 필요도, 나를 증명할 필요도 없었다.


안갯속에 있더라도
내 존재는 충분한 것이었다.

마치 오늘처럼.








드넓은 광야를 만났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천제단은 이렇게 탁 트인 하늘 아래 중심에 있었다. 선조들은 어떻게 이 높은 곳에 올라와 제사를 지내왔을까. 기능성 등산화와 등산복, 등산스틱, 무릎보호밴드도 없이 말이다. 옛날 사람들의 체력이 궁금해졌다. 나는 그들보다 영양가 높은 음식을 잘도 먹으면서 이 정도의 체력이라는 게, 정녕 사실이었다.


높이로는 장군봉이 태백산의 정상이지만, 천제단의 위엄 있는 이곳이 난 좋았다. 거스를 것 없는 바람은 세차게 불어왔다. 안개는 바람줄기를 만나 빗줄기처럼 흩뿌려졌다. 바람이 부는 방향대로 물방울은 내 얼굴에, 내 옷에, 내 가방에 사뿐히 자리를 잡았다. 으슬으슬 추워져도, 나에게 자리 잡은 물방울처럼 내 마음도 여기에 자리를 잡고 머물렀다.








‘아바타 월드(Avatar World)’라는 게임이 있다. 나의 딸은 아바타를 눈, 코, 입부터 시작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세세하게 꾸몄다. 마음대로 집안에 가구를 배치했고, 가고 싶은 곳으로 자유롭게 갔다. 발레수업을 듣고, 옷가게에 가서 옷을 샀다. 모든 건 조건 없이 주어졌다. 퀘스트 따윈 없었다. 다양한 아바타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이야기를 만들면서 그녀는 즐거워했다.


딸아이가 그 게임을 같이 하자고 했다. 나는 재미가 없었다. 퀘스트가 없어서 팥 없는 붕어빵 같았다. 한때 내가 즐겼던 ‘아이러브커피’ 게임이 생각났다. 카페 사장이 되어 아메리카노 판매를 시작으로 매장을 확장하고 메뉴를 추가해 갔었다. 그저 주어지는 것은 없었다. 수많은 퀘스트를 힘들게 깨는 만큼 레벨이 올라가고 점차 선택권이 늘어났다. 나는 그게 재미인 줄 알았다.



(좌) 아이러브커피 (우) 아바타 월드 (이미지 출처 : 앱스토어)



나는 주어진 대로 맞춰 살아온 세대였다. 나의 생각 따위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던 시대였다. 내가 정하지 않았던 목표가 있었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달렸을 뿐, 목적이 없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교를 갔고 취직을 했고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 퀘스트를 깨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레벨을 올려가는 게임이 아등바등 살면서 늙어가는 내 인생과 닮아 있었다.


내가 그 게임을 그만둔 건, 끊임없이 난이도가 높아지는 퀘스트가 점점 힘겨워졌을 때였다. 내 인생의 게임을 그만둔 건, 엄마와 아내, 직장인의 동시 역할이 점점 버거워졌을 때였다. 난 첫째 아이 퀘스트에서 멈췄고 그 이상의 레벨은 무의미해졌다. 게임은 내가 가지지 못해 갈구해야 하는 ‘다음’을 나에게 계속 요구했지만, 나는 내 손에 잡히는 ‘지금’에 머물고 싶어졌다.





그런 내가 찾아간 자연은, 내게 다음을 강요하지 않았다. 앞으로 내다보길 재촉하지 않았다. 들이마시고 내쉬는 나의 숨결을 하나 둘 느끼게 했다. 지금 이 순간에 머무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 했다. 그동안 내가 왜 쉴 수 없었는지, 왜 더 이상 뛰지 않아도 되는지를 말해주었다. 자그마한 풀잎 하나, 꽃잎 하나 보여주며 삶의 목적을 이야기해 주었다.


지금껏 등산은 나에게 ‘아바타 월드’와 같았다. 정상을 찍고 돌아와야 달성되는 퀘스트 깨기가 아니었다. 아무런 조건 없이 만날 수 있는 자연이었다. 마음 가는 코스를 골라 나만의, 우리 가족만의 충만한 시간을 보내면 되는 것이었다. 출발하기 전, 나는 항상 설레었다. 새롭게 만날 자연의 경이로움에. 모든 가면을 벗어던지고 민낯의 나로서 즐기는 자연 속의 아늑한 휴식에.





오늘 태백산에서 나는 발걸음 닿는 곳마다 소중한 생명체의 아름다움을 만났다. 내가 지나는 산길마다 피어난 꽃들과 웅장하게 서있는 나무들과 보석처럼 빛나는 곤충들이 나를 미소 짓게 했다. 나무 표면에 사는 이끼가 영롱한 이슬을 머금고 얼마나 청초한지 한참을 바라보았다. 우리나라 가장 높은 샘물, 용정이 있는 망경대 사찰의 뽀얀 고양이들의 애교도 선물 같았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 얼마나 오랜 시간 이곳에 서 있었는지 모를 주목 군락지를 지나갔다. 속은 텅 비어있고 구멍도 나 있지만 여전히 단단하게 서 있는 주목은 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을까. 수많은 세월 혹독한 비바람과 눈보라에도 쓰러지지 않고 버텨온 그들에게 난 과연 무슨 이야기가 듣고 싶었을까.


잊히지 않는 주목의 고고함을 생각하며 내려갔다. 촉촉해진 자갈을 밟고 내려가는 길이 미끄러웠다. 꼿꼿하게 서 있던 주목과 달리, 난 엉거주춤 바위 모서리에 엉덩이를 찍고 침대에 눕듯이 넘어져버렸다. 하산길에 힘들어하는 나의 딸과 남편에게 웃음꽃이 활짝 피게 했으니 오늘 나의 할 일은 다 한 것 같았다.


정말 믿기지 않았지만, 내려가는 길이 올라가는 길만큼 길다고 느끼는 순간, 등산로 입구에 있던 배추밭을 다시 만났다. 등산을 하며 배추가 이렇게 반가운 얼굴이 될 줄은 몰랐다. 초록의 산 아래 배추밭이 이렇게 잘 어울릴 수 있는지 몰랐다. 나에게 친숙하기만 했던 배추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지 몰랐다.


어쩌면 나도 배추처럼
아름다울 수 있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아픔을 낫게 해주는 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