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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우즈 May 09. 2024

업력 4년차의 매너리즘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근무일지] 또 하나의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며

상반기 전시 개막!



어시 큐레이터로 4년차. 한해 한해 담당하는 프로젝트가 커진다. 이번에 맡았던 길고 긴 프로젝트를 또 마무리 해버렸다. 저질러버리고 말았다!




나는 사실 일에 정말 진심이다. 이 일을 너무 사랑해서 공부도 시작했고, 모든 일을 열정적이고 즐겁게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진심으로 화가 날 때도 많았다. 너무 잘하고 싶은데 방해하는 요소들에 화가 났고, 열정적이게 싸웠다. 정말 힘이 넘쳐났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4년차.. 이제는 화조차 나지 않는 순간이 자주 찾아온다. 그리고 어느 순간 화를 내는 내가 좀 잘못된걸까? 라고 되돌아보기도 했다. 화를 내도 바뀌는 것은 없고 오히려 나의 기준에서는 너무도 공정하지 않은 방향으로 압박을 당하기만 한다. 상사가 주는 일방적인 압박이 처벌이라고 한다면 처벌을 받는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잘못한 것이 많아 죄인이 된 것일까.


사실 처음에는 정말 잘할 자신이 있어서, 기회만 준다면 진짜 아무도 간섭하지 말고 오로지 나만 믿고 모든걸 맡겼으면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내 위치는 절대 무언가를 책임질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니, 전적으로 일임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나는 상사라는 클라이언트들의 니즈에 맞춘 방향으로 프로젝트를 성사시켜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실무자이지만 책임은 상사들이 져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항상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불안해했고, 나는 그들을 안심시키는데 실패한 것은 아닐까. 어쨌든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자리였기 때문에, 그들의 보호막 아래서 조금만 일해도 되는 것을 속된 말로 너무 ‘나댔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위치가 매우 안락하고 편안하면서도 자아를 실현시킬 수 없다는 점에서 정말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옳은 길에 대해 사고할 줄 알면서도 내 의견을 함부로 주장할 수 없다. 그런 권리가 없다. 그러니 실무를 하는 이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함부로 건들지 말라고 화낼 수 없다. 책임을 지는 것은 내가 아니니까. 실제로 책임져야하는 사람들의 모든 컨펌을 받아야만 하는 을이고, 조직은 그런 것이었다.




민희진의 기자회견을 인상적이게 봤다. 그녀의 입장에서 들여다보는 사건은 공감되는 점이 정말 많았다. 늙고 무능하고 골프나 치러다니는 아저씨들보다 프로젝트의 트렌드에 대해 본인이 더 잘 아는데, 업무에 대한 압박이 들어오니 정말 화가 났을 것이다.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도 그렇게 부딪히고 싸운 적도 많았고, 그렇게 쟁취한 것도 많았다.

@문화일보

그런데 지금은 주로 내어줄 수 밖에 없었다. 권력의 힘이 너무 막강했고, 나는 정말로 하찮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4년차가 되니 더 느껴졌다. 이 또한 업무의 연장선이다. 상사는 설득의 대상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것이 하나의 직무 스킬이 되었다. 보다 자기 객관화하게 되었고 내 의견이 회사 입장과 다르다면 내가 옳지 않은 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 입장에서 맞지 않다고 판단한다면 나도 끝까지 고집대로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집대로 진행해서 좋은 결과물이 나왔더라도 회사는 못마땅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조직의 현실인거 같았다. 화가 나고 무기력했지만, 현실로 받아들이며 이렇게 자아를 잃은 4년차가 되었다.


그래서 민희진 대표는 여러모로 신기한 인물이었다. 대표의 자리에 올라서까지도 저렇게까지 자아가 강할 수 있을까? 업계 최고의 실력을 가지게 된다면 자신감과 자기 확신이 더 강해지는 것일까?




나는 점점 연차가 늘수록 스스로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주변에 능력 있는 사람이 정말 많았고, 그들과 친해지면서 더 배우고 싶었는데, 친하게 지낼만한 좋은 동료가 되어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스스로 내린 판단에 대해서도 의심하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들으려고 노력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그간 좋은 결과를 많이 내었을 것이라 믿는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자신감을 많이 잃고 매너리즘도 갖게 된거 같다. 혼자서 자신있게 판단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어차피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사실에 열정도 사라지는 것 같았다.


차라리 막 입사했을 때, 아무것도 모르면서 상사와 수평적 대화를 시도한답시고 내 의견을 필사적으로 설득하려고 했을 때가 더 재밌고 열정적이었던 거 같다.


그때와 나는 달라진 점이 없는 거 같은데 또 너무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거 같다.


직급의 문제일까 조직의 문제일까. 정말 이 일을 사랑했는데, 어느 순간 조금 두려워지고 있는 거 같다. 정말 잘하고 싶었는데, 이제 혼자서는 잘 하지 못할 거 같다. 정말 잘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앞으로 이 이상 잘하지 못할거 같아 두렵다.


신입사원 1개월차의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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