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3.0살로 다시 태어나게 된 계기.(上)
상처를 가진 모두에게 존경을. 이겨낸 이에게 축복을.
29.9살, 그러니까 2020년 12월 26일.
서른을 약 5일 정도 남기고 인생이 바뀌는 일이 있었다.
엄마는 평생 모은 돈 4억 가까이를 지인들에게 마구잡이로 빌려주고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사업을 하겠다며 돈을 빌려간 그 사람들 때문에 엄마는 스트레스로 끙끙 앓다가 결국 쓰러지셨다.
엄마가 그렇게 되고 나서야 모든 채무관계를 알게 된 것이다.
아들인 내가 채무관계를 매듭을 지어보고자 엄마의 채무자 1,2,3과 연락을 시도했다.
채무자 1-가장 많은 돈을 빌려간 사람으로 엄마가 채권추심을 이용해 압류를 걸어놓은 상태. A라고 하겠다.
A는 굳이 나와 만나겠다며 내가 있는 곳으로 오겠다고 했다. 근처 카페에서 만났고 난 사실 무슨 말을 해야 될지도 잘 모르고 굉장히 떨렸었다. 날 만나자고 한 이유가 뭐냐고 묻자. 압류를 풀어달라고 하더라. 그래야 본인이 일을 해서 빚을 갚을 수 있다고. 기가 찼다. 엄마에게 줄 이자마저 엄마에게 빌린 돈으로 준 사람이 무슨. 자신의 불쌍한(?) 처지에 대한 하소연만 일방적으로 듣다가 더 이상 들을 필요도 없을 것 같아 자리를 떴다.
채무자 2-엄마와 매우 친하게 지내는 사이었고 자영업을 하는 사람이었다. 사업이 잘 안 되자 엄마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했고 엄마는 흔쾌히 큰돈을 빌려주었다. 하지만 엄마가 쓰러진 걸 알고 난 후 그는 잠적했다. 엄마가 깨어나면 돈을 주겠다는 말을 남기면서.
채무자 3-이 사람들은 부부였고 식당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 분들도 장사가 잘 안 되자 엄마한테 돈을 빌려갔는데, 매달 50만 원씩 꾸준히 보내던 이 사람들 또한 엄마의 소식을 접하고 돈 보내는 걸 중단했다. 아니 한국에서는 돈 빌려준 사람이 쓰러지면 돈 보내기를 중단합니까..? 전화해서 따지니 내게 더러 큰소리를 지르며 엄마가 깨어나면 직접 돈을 주겠다고 했다.
이 문제로 정말 골치가 아팠던 기억이 있다. 30대가 된 신고식이었을까. 너무 아팠다. 이런 상황을 만든 엄마에 대한 분노와 안타까움이 하루에도 분단위로 달라졌다. 또 사람에 대한 미움과 증오심이 극에 달했었다. 솔직히 말하면 채무자들 전부 찾아가서 망치로 머리를 깨고 싶었다. 해를 가하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그렇게 채무자와의 컨택(?)이 보기 좋게 실패로 돌아가고.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가 엄마가 없는 집에 혼자 있었다. 원래 적막한 집이었지만 그때는 그게 소음처럼 느껴질 정도로 고요했다. 그러다 무작정 집을 둘러봤다. 엄마의 집에는 잡동사니가 정말로 많았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안 읽는 책, 몇 년이 지난 화장품, 안마의자, 편백나무 반신욕기기, 쓰지 않는 의자, 입지 않는 몇 백가지의 옷들, 8개의 냉장고 등등. 저장 강박증이 있는 사람처럼 엄마는 물건을 사들이고 버리질 못했다. 택배로 받은 박스조차도 버리질 못하고 집에 놓아둔다. 냉장고가 8개가 된 이유도 특이하다. 시장에 가서 식재료를 사는 것을 좋아하는 엄마는 식재료가 냉장고에 가득 차면 냉장고를 비울 생각을 해야 되는데 냉장고를 사는 방식을 택할 정도였다.
정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물건을 버리는데만 꼬박 이틀 정도가 걸렸다. 물론 나도 과감하게 모든 걸 버리진 못했다.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직 수많은 물건들을 처분하지 못한 채 미련만 잔뜩 남겨두고 서울집(나의 자취집)으로 올라왔다. 집에 오자마자 느낀 건 '아.. 물건이 너무 많다...'였다. 원래 깔끔한 편이고 주변인들한테도 인정받을 정도였는데. 그냥 겉보기에만 그래 보였던 것이지 나 또한 집에 물건이 정말 많았다. 하지만 나도 쉽게 버리질 못하는 성격이라 이걸 어떻게 하지라고 고민하던 찰나, 우연히 서점에서 사사키 후미오가 쓴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를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