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고민하는 지속가능성, 지구와 공존하며 나만의 공간 꾸리기
학생 때 잠깐 기숙사에 살아본 적은 있지만 내가 직접 부동산에 가서 계약을 하는건 처음이라.. 낯설고도 소중한 나의 첫 자취.
이제는 부모님 곁을 떠나와 사는 형태를 '자취'보다는 '독립'이라고 칭해야하는 나이이지만, '독립' 이라는 단어가 너무나도 거창하게 들려서 감히.. 내가.. 독립을 했다고? 스스로에게 의구심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거실 하나, 큰 방 하나, 작은 방 하나. 12평이라는 공간을 나 혼자 온전히 꾸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반갑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걱정이 앞섰다. 나는 핸드폰으로 하는 농장 꾸미기, 마을 꾸미기 게임도 아침 저녁으로 붙들고 있다가 겨우 벽 따라 가장자리에만 가구를 배치하는 소심한 사람..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코로나 시절 한참 유행하던 #오늘의집 스타일의 원룸 인테리어에 대한 로망도 분명히 가지고 있었다.
그래, 드디어 나도 해보는구나! 내 방 꾸미기!
필수 가구는 물론 에어프라이어, 스타일러처럼 둘 공간도 없으면서 사고 싶은 마음을 접을 수 없는 사치 가전까지. 쏟아지는 행복한 고민들과 고려사항 속에서 그래도 분명하게 내가 지키고 싶었던 것은 '최대한 지구를 헤치지 않는 공간을 만들자'는 것.
사진 속 커텐과 협탁은 이사올 때 당근마켓에서 데려왔다.
침대 프레임과 매트리스 같이 새 것을 사용하는 게 마음 편한 가구를 제외하고 크고 작은 대가구, 소가구, 생활 용품들은 최대한 당근마켓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혹시 당근이세요..?" 로 데려온 전신 거울과 화분들,
거실 테이블과 조명, 집안 분위기를 바꿔준 연노랑 커텐까지.
그러다보니 처음 이사 후, 한 달만에 당근마켓 매너온도가 50℃를 넘었다!
당근마켓은 이용자의 수집 욕구를 자극하는 배지 제도를 운영하는데, 한 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당근마켓을 방문했다는걸 증명하는 '당근 홀릭' 배지를 통해 내가 얼마나 당근마켓에 진심인지 알 수 있었다.
당근마켓을 통해 거래를 하면 저렴한 가격으로 원하는 물건을, 지구를 헤치지 않는 방향으로 구매할 수 있다는 것 말고도 새로운 동네에 익숙해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래 살던 곳에서부터 학교나 직장이 멀기 때문에 나와 사는 것을 결심한다. 그러다보니 새로운 동네에 대해 전혀 아는 바 없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나 역시 이사를 결심하기 전까지는 인생에 단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동네에 터전을 꾸리게 되어.. 바로 옆에 붙어있는 ○○동과 △△동의 거리도 가늠할 수 없었다.그러나 당근마켓 중고거래 창을 켜면 내가 속한 동네 외에 54개의 근처 동네를 둘러볼 수 있다. 하루에 한 두건씩, 퇴근 후 직거래 약속을 잡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이 새로운 버스를 타본 한 달이 아닐까? 모르는 번호의 버스에 몸을 싣고, 처음 들어보는 지하철 역에서 내려 물건을 받아 집에 돌아가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한 번은 무거운 그릇 세트를 구매하러 가다가 예상치 못하게 소나기를 만난 적이 있다. 비는 억수로 내리는데 날은 왜 이렇게 더운지.. 습한 여름의 한복판, 도로 위에 서서 바짓단이 젖는걸 내려보았다.
차가 있는 것도 아니고 뚜벅이면서! 요즘 클릭 한 번이면 집 앞까지 배송이 얼마나 빨리 오는데! 몇 푼 아끼겠다고 이렇게까지 해야한다니! 이제부터는 필요한게 있으면 그냥 온라인 쇼핑몰에서 주문하자 마음 먹으며 모르는 동네를 걸었다. 약속장소에 도착해보니 우리 엄마 나이대 즈음의 '당근 선생님' 께서 내가 구매하기로 한 그릇 세트를 가지고 일찍도 나와계셨다. 비 오는데 종이 박스가 젖을까봐 겉을 비닐로 둘러주신 배려에 감사를 표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몸을 실으니 그새 거래 후기가 도착했다.
그제서야 내가 중고 거래를 놓지못하는 이유를 떠올렸다. 새상품이어도 누군가는 쓸모를 찾지 못한 물건을, 나 말고 다른 사람에게 가면 그 쓸모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번거롭지만 게시물을 올리고 거래 약속을 잡고 굳이 굳이 발걸음을 향하는 것.
단순히 물건 뿐 아니라 그 물건을 소중하게 여겼을, 처음보는 상대의 친절과 다정까지 받는 거래.
나도 그 이후로 그 다정한 마음을 나누기 위해 아직까지 당근마켓을 사용하고 있다. 이제는 쓸모없어 버리는 물건이라도 누군가는 요긴하게 써줬으면 해서. 저렴하게도 올려보고 가끔은 그냥 나누기도 하고.
나는 왜 각 지역 별로 재활용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을까? 과거에는 사무실, 집 등 여러 공간에서 사용되었지만 이제는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가구들이 모이는 곳.
나는 책을 무조건 종이로만 읽어야하는 교보문고 플래티넘 회원이고 애인은 취업 후에도 공부를 이어가던 수험생이라 집에 책이 넘쳐났다. 12평짜리 집에 대형 책장만 2개가 필요한게 말이 되나요? 책장은 당근마켓을 통해 구매하려니 트럭을 구해 받아오는게 일이고.. 새 책장을 구매하자니 가격도 부담되고 크기 때문에 조립할 엄두도 안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다가 알게 된 곳이 바로 새활용 센터.
수많은 책장들 사이를 헤메다 딱 원하던 책장을 발견하는 경험이란.
하자 없이 매끈하고 책장의 기능을 온전하게 수행할 수 있음에도 여러 이유로 이 곳에 모였을, 선택받기를 기다리고 있는 책장을 집으로 모셔오는 과정은 새로운 즐거움이었다. 아직까지 우리 집 침대 맞은 편에서 특별히 좋아하는 책들을 품고있는 모습이 근사하다. 당근마켓으로 데려오기 어려운 대형가구가 있다면 새로 사기 전에 한 번쯤 재활용 센터를 둘러보면 어떨까? 운명처럼 반려 책장을 만나 그 날 바로 입양하게 될 지 모른다.
새로운 집은 부엌 공간이 그렇게 여유롭지 않아 정수기를 들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싱크대에 설치형 정수기를 두자니 일도 커지고 가격도 부담되어 고민하다 결정한 것이 바로 브리타.
잠깐 캐나다에서 살 때 마트에서 생수를 병으로 사먹는 나를 보며 "너 부자니..?" 하고 물어봤던 룸메이트의 표정을 아직 잊지 못해. 캐나다 뿐만 아니라 많은 나라에서 정수기나 병 생수 대신 브리타 필터 거친 물을 음용하고 있다. 요즘에는 우리나라에서도 1인 가구를 위주로 서서히 퍼지고 있는 것 같은데.
당근마켓을 통해 들여온 브리타.
본체에 필터를 장착한 후 수돗물을 받아 마시면 끝. 아주 아주 편리하다. 주기적으로 필터를 갈아줘야하면 친환경이 아니지 않냐고? 내가 처음 한국에서 브리타를 사용하기 시작한 2020년에는 브리타 필터 수거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았지만 요즘에는 인터넷으로 간단하게 수거를 요청할 수 있다. 수거된 브리타 필터는 재활용된다고 하니 쓰레기 배출을 최소화하며 물을 마실 수 있다.
자취 후 생긴 또 하나의 즐거운 습관이라면 바로 리필스테이션 탐방.
원래 친환경이란 더하는 것이 아니라 덜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관심이 없을 때는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한 번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니 선명하게 드러났다.
친환경 생활 방식이라고 해봤자 텀블러, 손수건 사용 정도만 알았지 플라스틱 배출 없이 삶을 가꿀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치 못했다. 샴푸, 린스, 주방세제, 염화칼슘, 심지어 스킨과 로션까지 담아가는만큼 금액을 지불하는 리필 스테이션은 보통 제로 웨이스트 샵에서 만나볼 수 있다. 2~3개월에 한 번씩 나오는 다 쓴 용기를 리필 스테이션에서 채워보자. 번거롭게 공병을 버릴 필요 없고, 가격도 비교적 저렴하고, 무엇보다 일상에서 쓰레기를 하나씩 덜어낸다는 기쁨이 있다.
근무 시간에 마시는 커피는 최대한 줄이고 있지만, 주말 아침에 여유롭게 즐기는 커피 한 잔은 놓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모카포트는 필수템이라고 할 수 있다. 커피를 마실 때도 다양한 옵션이 있지만 기왕이면 내가 선택한 원두를 맛있게 (중요) 즐기는데, 간편하고 친환경적이기까지 하니 모카포트를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마찬가지로 당근마켓에서 데려와, 원하는 원두를 분쇄해서 진하게 끓여마시고 남은 커피 가루는 냉장고 냄새 제거하는데 쓴다. 그 과정에서 버려지는 쓰레기라고는 커피 원두를 담은 봉투 정도. 물을 마시거나 커피를 마시는 것처럼 일상적인 순간에도 조금만 더 신경을 쓰면 나의 신념을 지키며 살아갈 수있다.
이 지구에 잠깐 들렀다 가는 삶.
일상에서 실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 지구를 아끼며 내 공간을 구성하기 위해 고민하는 것.
물론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쓰레기며, 나도 모르게 습관이 된 안좋은 버릇도 분명 존재하겠지만 나의 인지 속에서 최대한, 일상에서 가끔이라도 떠올리며 '더 나아지려는 노력'이라도 하는게 아예 고민없는 삶보다는 더 이롭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