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와 같이 산 지 벌써 3년, 결혼 전 동거에 대하여
27살의 여름, 마찬가지로 20대인 2살 연상 남자친구와 동거를 시작했다.
외국에서야 결혼 전에 연인과 같이 사는게 흔한 일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거주 형태이다. 그러다보니 보통은 사귀는 사이에 동거를 한다고 하면 놀라는 반응을 넘어 염려를 가장한 부정적인 시선을 보낼 확률이 높다. 그래도 요즘에는 비싼 집값, 늦은 결혼 연령, 다양한 가족 형태 및 생활 방식 등의 이유로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는 많이들 혼전동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나와 애인은 동거를 하기 전에 사회적 시선을 고려하거나, 주변에 의견을 먼저 물어보고 동거를 결정하지는 않았다.
대학교 2학년 겨울에 처음 만나 서로를 알아간 지 5년째 되었을 즈음부터 자연스럽게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슬슬 취직하고 각자 부모님에게서 떨어져 나와 삶의 터전을 꾸려야 할 때이기도 했다.
나와 애인은 둘 다 본가가 서울, 학교도 서울에서 나왔고 직장도 서울에서 구했기 때문에 물리적인 거리 문제 때문에 독립한 것은 아니었다. 각자 부모님과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니고, 원래 살던 동네를 싫어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어느 날, 자연스럽게 우리 둘 만의 공간을 꾸려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나 같은 경우는 어머니, 아버지 모두 굉장히 개방적인 성격으로 애인과 해외 여행갈 때 공항으로 차를 태워다주실 정도인데 걱정은 애인네 집안이었다. 애인네 가족은 어느 때보면 지극히 '각자도생'인 것 같다가도 어느 때 보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보편적 (이라고 여겨지는) 정상 가족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족 식사 중에 애인은 먼저 ‘독립’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 여자친구와 함께 하는. 부모님께서는 신중하게 결정하라며 걱정을 표하셨지만 다행히 큰 반대는 하지 않으셨다. 다만, 집을 구해서 나가기 전에 애인과 나, 그리고 애인네 부모님, 넷이서 식사 자리를 갖자고 하셨다. 크게 긴장한 것과 다르게 한 시간 남짓한 식사 시간 내내 부드러운 분위기가 흘렀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우리의 동거는 양가 부모님 모두 대한민국 부모님치고는 굉장히 개방적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나중에 물어보니 우리 엄마는 '어차피 독립해서 살거라면 여자 혼자 사는 것보다 장 서방 (결혼도 안했는데 엄마는 내 애인을 서방이라고 부른다.) 하고 함께 사는 것이 더 안심 되기 때문에' 동거를 허락했다고 한다.
집을 구하는 과정은 양가 부모님 동의를 얻은 일보다 더 간단했다. 딱 일주일 정도. 회사와 가까우면서도 애인이 살고싶어하는 지역이 명확했기 때문에 비교적 집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주로 네이버 부동산을 통해 알아봤는데, 여러 곳을 검색해보다가 처음으로 직접 보러간 집을 바로 계약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싶지만 지금의 우리 집을 처음 보러간 순간, 이 집이 우리 집이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부랴부랴 만원 지하철을 타고 처음 내려보는 지하철 역에서 한참을 헤메다보니 약속 시간보다 조금 늦을 것 같았다. 공인중개사 분께 연락을 드리니 감사하게도 역 앞까지 차를 끌고 우리를 데리러 나오셨다. 버스 정류장도 가깝고, 근처에 큰 공원도 있고, 주변 시세 대비 저렴하고.. 물론 단점도 있지만 큼지막한 장점이 많은 집이라 우리 말고도 보러 오겠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미디어에서 흔히 사기 당하는 장면처럼 왼쪽에서는 공인중개사 분이 계약을 재촉했고, 오른쪽에서는 집주인 선생님이 우리 (예비) 부부가 마음에 든다고 말씀하셨다. 애인과 나는 이렇게 마음에 드는 집을 쉽게 만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선뜻 계약금을 보냈다. 다행히 공인중개사 분은 '정말' 좋은 분이셔서 자식 같은 우리에게 좋은 집을 연결해주려 했던 것이고, 집주인 선생님과는 지금까지 좋은 관계를 유지 중이다.
경사가 겹쳐 나는 집을 보러간 날 오전에 면접을 본 회사에 합격해 집에서 30분 거리에 출근하고 있고, 애인도 한 달 뒤에 40분 거리의 회사에 취직을 하게 되었다. 하늘이 도운 탓인지 별 일 없이 2년을 꽉 채워 산 후, 작년에 계약을 연장해 이 집에 산 지 벌써 3년이 되었다.
벌써 3년이 되었으니 주변에 우리가 같이 사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가고 있다.
같이 산다고 했을 때의 반응이야 뻔하니 굳이 말하고 다니지는 않지만 어쩌다 상대방이 알게 되면 숨기지 않았고, 마음 맞고 기회 되면 가끔은 먼저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또 생각보다 다들 대수롭지 않아 한다. (그럴만한 사람들에게만 말하기 때문일지도.)
혼전 동거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관계의 '끝'을 염두해두고 있다.
"둘이 헤어지면 그 짐들은 다 어쩌려고?"
"그러다가 걔랑 결혼 안하면 다른 사람 만나기 힘들다."
하지만 두 사람의 대화의 끝에 헤어짐이 없는 사이라면 동거를 하는 것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각자 맡은 집안 일은 놓치지 않고, 다툴 때도 상대방을 존중하는 문장을 사용하면 된다. 심지어 우리는 같이 살기 시작하고나서 아직까지 말 다툼 한 번 한 적 없는데, 전보다 더 조심하고 배려하기 때문인 것 같다.
동거를 하면 서로의 숨겨진 취미와 취향에 대해 알게 되고, 생활 패턴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데이트 값도 아낄 수 있으니 나름 돈도 야무지게 모을 수 있다. 무엇보다 우리의 경우, 동거를 하기 전과 비교해 관게가 100배는 더 돈독해졌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데 동거 준비부터 시작해 실제로 동거를 하며 만나는 온갖 고초를 '함께' 겪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부동산 계약부터 입주 청소, 누수 (..) 같은 집안 일 뿐 아니라 회사에서 부딪치는 온갖 부당함에 마음이 울적해진 날, 퇴근 후 집에 왔을 때 애인이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
결국 하루 중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곳은 집이다. 문 밖의 사람에게 마음이 상했을 때 다시 이겨낼 힘을 얻는, 혹은 그냥 도망치고 다시 시작하자 마음 먹기도 하는 곳도 결국 집이다. 모두의 대피소 역할을 하는 집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이러니 저러니해도 역시 같이 사는 사람아닐까? 태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살게 되는 집의 구성은 내가 선택한게 아니지만, 그 집에서 걸어나와 찾은 또 다른 집은 오롯이 내꺼. 그 공간을 무엇으로, 누구로 구성할 지도 내꺼, 나의 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