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만 있고 싶게 만드는 내 공간 만들기
처음 자취방을 꾸밀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공간 '구획'이었다.
일을 하는 공간, 취미 생활을 즐기는 공간, 온전히 충전할 수 있는 공간을 구성해 집의 활용도를 높였다. 의식적으로 이러한 공간들을 구분하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시각적 변화가 동반되어야 했다. 단순히 문 여닫는 것을 넘어 파티션 역할을 하는 가구, 조명 등을 배치하든지 해서. 직접 나와 살아보니 '잘 꾸민 자취방 사진'에 주로 등장하는 카페트, 커텐은 단순히 심미적인 기능 뿐만이 아니라 실용적인 기능도 하고 있었다는걸 깨달았다.
그렇게 가구, 소품을 통해 큰 방, 작은 방, 거실의 구획을 나누다보면 이제는 집 전체의 통일성이 무너지는 것 같다는 걱정이 든다. 이 때, 이를 해소해줄 수 있는 매개로 나는 '컬러톤'과 '식물'을 활용했다.
대부분의 가구들을 화이트 우드 & 그린 컬러로 배치해 통일성을 살리면서도 곳곳에 식물을 배치해 연결성을 강조했다. 이사온 지 3년쯤 되어 슬슬 나만의 규칙이 흔들리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초반에 들인 대형가구들의 색감이 주는 안정감 덕분에 아늑한 집안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화이트 우드&그린 컬러를 선택한 이유는 내가 초록색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눈이 제일 편하기 때문이었다. 특히 침실은 더 신경 써서 초록색 계열을 유지하려고 했다.
벽에는 여행을 연상시키는 이미지 중에서도 초록~하늘색이 두드러지는 사진들을 붙여놓았다.
여름 침구에는 상큼함을 한 방울 더했지만, 마찬가지로 녹색 톤을 유지했다.
침대 맡에는 손 쉽게 빛의 강도를 조정할 수 있는 무드등을 둬서 상황에 따라 설정할 수 있게 했다.
아쉬운 점은 공간 제약 상 컴퓨터를 두고 일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서 침대 옆에 책상을 두었다는 것이다.
침실에 일하는 공간이 들어서니 잠결에도 일 생각이 나고.. 일 하다말고도 뒤 돌아서 침대에 다이빙을 하게 되고.. 공간은 분리를 못해도 조명으로라도 구분을 주기 위해 일할 때만 형광등을 켜고, 그 외에는 형광등을 켜지 않고 눈이 편한 스탠드 조명만 켠다. 이렇게 조명으로라도 구분을 두니 전보다 더 휴식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침대 맞은 편으로는 대형 책장
책장도 공간이 좁아 어쩔 수 없이 큰 방으로 들어왔지만 일, 공부와 관련된 서적은 거실에 있는 책장으로 쫓아내고 최대한 좋아하는 소설, 시, 에세이 위주로 꽂아두려 했다.
거실 소파 옆에도 스탠드 조명을 둬서 여가 활동을 할 때는 은은한 조명으로 눈을 편하게 했다.
초창기 우리 집에는 소파 앞 낮은 테이블, 그리고 그 건너편에 TV가 있었다. 시간이 지나며 TV를 점점 잘 안보게 되다보니 어느 순간 낮은 TV 선반과 테이블을 치우고 현재는 높은 식탁을 두고 있다. 그러다보니 소파가 식탁에 비해 낮게 느껴져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집이 넓었으면 부엌에 식탁을 두고, 거실에는 소파 테이블을 따로 뒀겠지만 집이 그렇게 넓지 않아 거실 식탁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식사도 해야하는 불편함이 있다. TV를 잘보지 않는다면 아예 처음부터 거실에 식탁과 식탁 높이에 맞는 입식 의자를 두는 것을 추천한다. 소파 대신 간단하게 리클라이너 1인 의자를 두는 것도 방법일 것 같다.
언젠가 내 공간을 갖게 되면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 식물 키우기였다. 미디어나 책에서 주인공이 자기만의 베란다 정원을 가꾸는 모습을 봐온 영향이 클 것이다.
식물을 돌보는 일은 작은 집을 돌보는 일과 같다.
여름철 집이 조금 습습한 것 같으면 오히려 보일러를 켜 바닥을 뎁히고, 에어컨을 제습 모드로 변경한다. 그리고 식물의 '집' 이라고 할 수 있는 화분에 손가락을 한 마디 정도 넣어본다. 그러면 바로 어제 물을 준 것 같은데 벌써 흙이 말라있는 경우도, 물 준 지 한참된 것 같은데 아직도 흙이 촉촉한 경우도 있다. 식물도 꼭 사람처럼 제각기 필요한 자원과 소화 가능한 자원이 다르기 때문에 각각의 화분에 세심한 관심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매년 봄마다 화분이 좁아보이면 분갈이를 해줘야하는데 물을 많이 먹는 친구들은 통기성이 적어 흙이 오랫동안 축축하게 유지되는 플라스틱 화분으로, 물을 금방 흡수하지 못하는 친구들에게는 도자기 화분을 선물해준다. 보통 도자기 화분의 디자인 선택지가 다양해서 우리 집과 어울리는 디자인을 고르는 재미가 있다.
또, 집에 식물을 두면 단순히 보기 좋은 것을 넘어 어느 정도 공간을 구획하는데 도움이 된다. 우리 집 같은 경우에는 거실과 부엌의 경계가 모호한 관게로 얇은 흰 커튼과 대형 몬스테라를 중간에 둬 공간을 나눴다.
(나는 전혀 상관 없지만.. 애인 성격 상 설거지가 안되어있으면 큰 스트레스를 받는데, 매일 저녁 식사를 마치고 벌떡 일어나 설거지 할 힘이 나는 것은 아니니까. 그 때 커텐을 치면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비록 그 커텐 너머에는 설거지 거리가 쌓여있어도 눈에 보이지 않으면 그만이니..)
어쨌든 여러 복합적인 이유로 식물을 하나 둘 집에 들이기 시작했다.
처음 자취를 시작했을 때는 인터넷에서, 그리고 당근마켓에서 식물을 마구 데려와 집에 화분만 30개가 넘었다. 아직까지 잘 크고 있는 친구들도 있지만 이미 무지개 다리를 건넌 친구도, 친구네 집에 보낸 친구들도 있어 이제는 20개 남짓만 남아있다.
바쁘기도 더럽게 바쁜 한국 현대인들. 나 이외의 생물을 돌보는 것이 벅차 아이는 커녕 반려동물을 챙기기도 어렵다면 반려식물을 한 번 들여보는건 어떨까?
이전까지 나는 내 스스로가 돌보는 행위를 통해 이렇게나 큰 위안을 받을 수 있을지 몰랐다. 선인장과 호야 화분에 손가락을 넣어보고, 시원하게 빗물 샤워를 시켜주기도 하고, 이파리 하나 하나 쌓인 먼지를 닦아주기도 하면서. 또, 게절마다 방울토마토나 바질처럼 키우기 쉬운 작물을 들여 소소한 수확을 해보기도 하고. 이러한 행위 하나 하나가 모여 집을 더 머무르고 싶은 '내 공간'으로 만들어주는 것 같다.
일주일동안 고심해 벽시계를 고르고, 1년에 한 번씩 가구 배치를 소심하게 바꿔보기도 하고, 수건을 통일된 색으로 싹 바꾸기도 한다. 구석 구석 손 안가는 곳 없이 내 취향을 묻힐 수 있다니. 사부작 사부작, 우리 집을 더 머물고싶은 공간으로 만드는 과정 속에서 내 공간에 대한 애정이 더 끓어오른다. 덩달아 내 내면도 더욱 깊게 들여다 볼 수 있게 된다. 오롯이 나의 결정으로 내 공간을 가꿔나가며 나 자신도 더 단단하게 가꿔나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