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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정 May 16. 2016

투병 중인 친구를 위한 아비뇽에서의 35년만의 만남

사느라 힘들었지만, 여기 저기 흩어져 살고있지만....

생일이면 잊지 않고 전화해서 축하해주던 독일 사는 친구가, 어느 해인가엔, 보름쯤 지나 연락을 했더군요. 그녀는 평소의 밝은 톤이 아닌 음성으로 본인의 췌장암 투병 소식을 전했구요. 전화를 끊고 한동안 머릿속이 하얗더군요.  그렇지만 이내 '더이상 미룰 수 없슴'을 느꼈습니다. 우린 초등학교 6학년 때 같은 반에서 어울렸던 다섯 친구들이었고, 어린 시절부터 개성 강하던 소녀들은 그 모습대로 독일, 미국, 캐나다 그리고 고국에서 열심히들 사느라 모두 함께 얼굴 보지 못한지 35년이 되었더군요.

우선 오랫동안 연락이 뜸했던 미국 사는 친구에게 이메일을 보냈고, 함께 SNS 체팅방을 만들어 투병 중인 친구에게 힘을 실어주고자 REUNION을 도모했습니다. 모두 함께 할 수 있는 시기가 1월 겨울인지라, 독일 뒤셀도르프 추운 지역의 기후를 감안해서 따뜻한 프로방스 지역의 아비뇽을 택했습니다. 거기엔 가톨릭 신앙 안에서 살아가던 아픈 친구가 성지 순례하며 좋았다고 하던 말이 떠오른 이유도 있었고요.  채팅방을 통해 열심히 계획 세우고 준비한 덕에, 일단 네명의, 아줌마가 되어버린 소녀들은 파리 드골공항에 결집했습니다. 다음날 리옹역에서 떼제베 타고 아비뇽으로 친구 만나러 가기 위해서요.

후두둑 비가 떨어지던 새벽에 아비뇽으로 향했고, 아픈 몸으로 남편과 둘째아들의 보호를 받으며 12시간 그네들 차를 타고 달려온 독일 사는 친구와 아비뇽역에서 극적인 조우를 했습니다. 홀쭉하게 살이 빠진 친구 모습에 울컥했지만,  참 고맙고 반가웠습니다.  2박3일의 짧은 시간 동안 그간의 많은 얘기들을 하진 못했어도, 서로 이심전심으로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며 아픈 친구의 쾌유를 기원하는 시간이었고요.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펜팔로 사귀던 독일 청년을 만난다며 비행기를 탔고, 얼마 후 결혼하기로 했다면서, 당시로선 먼 나라로 훌쩍 떠났지요. 그리고선 아들 셋을 낳고 기르며, 많이 힘들텐데도 오로지 신앙 안에서 살면서, 우리 4명의 친구들을 챙기곤 했답니다. 그랬던 그녀를 위해 한식을 대접하고 싶었고, 그리하여 가능한 집을 구했답니다.

한때 교황청이었던 아비뇽성에서 만찬을 즐기며, 잠시 유배 기간을 갖고있지만, 성지 순례 때의 좋은 느낌을 되살려서, 친구가 건강을 회복하기를 바라며 건배도 하고.......

체력이 많이 약해진 친구가 남편과 조용히 쉴 시간을 주고,  우리 넷은 그녀의 잘 생기고 효자인 아들과 가까운 아를에 다녀오기로 했죠. 고흐의 그림 속 그 카페랑 고흐의 흔적을 찾아서.

다음 날 친구 가족을 떠나보내고 우리 넷은 파리로 돌아왔답니다. 친구의 쾌유를 위해 어렵게 뭉칠 수 있었던 우리들....... 비록 그해 가을, 친구는  생일을 얼마 안남기고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녀가 보여준 사랑,  그리고 열정적인 삶....  잊지 못합니다.  인연의 소중함을 깨우쳐준 친구처럼 우리 넷은, 자주 연락하며 함께 여행하는 시간 갖으며 나이들어 가기로, 어린 시절 했던 것처럼 함께 손가락 걸며 다짐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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