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두 거장의 기획전을 관람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마르셀 뒤샹>을 만났고,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데이비드 호크니>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두 거장 모두 미술사에 큰 변곡점을 찍은 작가들이라 그들의 작품을 보면서, 그리고 그 삶을 들여다 보면서 많은 감정과 생각들이 올라오더군요. 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먼저 시대 순으로 앞선 마르셀 뒤샹(1887-1968)에 대해서,
그는 프랑스계 미국인이죠. 나중에 미국 시민권을 획득했으니. 그도 그럴 것이 그가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2' 를 1912년 앙데팡당전에 출품했으나 위원회에서 정정해줄 것을 요구합니다. 그는 거절했고, 이듬해 뉴욕에서 열린 아모리 쇼에서는 큰 반향과 함께 일거에 그를 대단한 인물로 받아들였으니까요.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2
그는 25세 약관에 캔버스에 그림 그리는 회화 방식에 반기를 듭니다. 1912년부터 '심지어, 그녀의 독신자들에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 일명 '큰 유리'를 계획하고 1915~1923년 8년 동안 제작합니다.
큰 유리
하단부에 각종 직업군의 9명의 남성과 상단부에 그들의 신부가 있고, 그들이 내뿜는 성적 에너지를 표현한다죠. 그것은 소위 개념미술의 발단이었을 거고. 조형성보다 개념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작품은 없어도 된다고 생각했던 개념미술.
작가의 아이디어가 곧 작품이기 때문이라는 의미.
그래서 뒤샹하면 떠오르는 레디 메이드 '샘'이 탄생하게 됩니다.
1917년에 미국 독립미술가협회 이사였던 그는, 6달러만 지불하면 모든 작품을 전시해준다는 협회의 정신을 시험하고자 그의 후견인이었던 아렌스버그에게 남자 변기를 사오도록 해서 R. Mutt(얼간이란 의미)라 싸인하여 출품하나 그의 '샘'은 전시장 한쪽 구석에 가림막이 씌원진 채 전시되지 못합니다.
샘
이렇게 기성 미술계에 혁신과 창조, 새로운 해석을 던진 그는, 고정된 성 정체성마저도 부정합니다.
1920, 30년대 그는 다시 파리를 근거지로 체스에 푹빠져 사는데요. 에로즈 셀라비(관능, 그것이 인생이다란 의미)란 예명으로 여장을 하고 여성 자아를 만들어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해 나갑니다.
만 레이가 찍은 뒤샹의 여성 자아 에로즈 셀라비
그리하던 뒤샹은 1941년 이후 세계대전을 피해 뉴욕으로 가서 칩거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사후 공개해 달라던 '에탕 도네'(주어진 상태라는 의미)-<'폭포'1와 '가스등'2이 주어졌을 때>라는 디오라마 작품이 아렌스버그 부부를 통해, 그의 많은 작품들이 기증된 필라델피아 미술관에 영구 보존됨으로써 그의 예술 세계를 다시 들여다보도록 합니다.
에탕 도네
저 문에 뚫어놓은 두 구멍을 통해 들여다 보면, 멀리 수풀과 가느다란 폭포등 자연의 모습이 펼쳐지고, 벌거벗은 여인이 가스등을 든채 업드려 있는 모습을 관음증 환자처럼 보게되는 형국입니다. 뒤샹이 말했다죠.
삶은 에로티즘 같은 육체적 욕망에 의해 야기되는 움직임과 관련된 우연의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그는 말하기를,
예술이 모두 아름다울 필요도 없고, 모두가 다 좋다고 하는 것만이 예술일 필요도 없다
라고 했다죠.
전시실 벽면에 쓰여있던 뒤샹의 말입니다.
그의 사후 50년만에 접하는 그의 예술을, 지금 나는 그의 관심을 끌기 위해 칭송하는 걸까요?! 아님 진정으로 찬사를 보내는 걸까요?! 어떻든 그의 창의성에는 감탄을 금치 못합니다.
자, 이젠 데이비드 호크니에 대해 알아봅니다.
그는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고 대중적인 예술가 중 하나입니다. 작년 크리스티 록펠러 센터에서 열린 경매에서 1020억원에 그의 작품, '예술가의 초상'(1972년 작)이 낙찰되었던 사실이 증명하듯이요. 이는 현존 작가 작품 중 가장 높은 가격을 기록한 사례이더군요.
예술가의 초상
그는 동성애자이며, 1960년대 영국에선 그런 사실이 거의 죄악시 되던 분위기에서 본인의 성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하는 분위기였을 겁니다. 미국 LA에 거주하며 그곳의 자유로운 성문화에서 해방감을 느꼈을거고.... 그리하여 밝은 색감의 많은 수영장 시리즈가 탄생합니다.
그러나 '예술가의 초상'은 수영장 바닥을 바라보며 수영하는 그, 그의 세계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과 그 예술가를 바라보며 서있는 그의 동성 애인을 그린 작품으로, 그의 어머니가 했다던,
예술가는 이기적이어야 한다
던 말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 비싼 작품을 남긴 데이비드 호크니는 1937년 영국 브래드퍼드 출신이며, 그곳 예술학교에서 전통적 교육을 받고, 영국왕립예술학교에서 수학합니다. 이미 학창 시절부터주목을 받았는데, 당시 미국에서는 추상표현주의가 한창 각광을 받았지만 그는 추상과 재현적 이미지를 구분하는 경계를 흐려가면서, 도식화된 인물의 형태, 그라피티 등을 사용하여 성과 사랑에 관한 주제를 전달합니다. 그도 기존 미술 세계에 반기를 든 셈인거죠. 그가 했던 말을 증명하듯...
나는 항상 그림이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볼 수 있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의 2인 초상화 시리즈는 특히 유명하죠. 그 중
'클라크 부부와 퍼시'(1970~1)가 이번 전시회에 왔더군요.
클라크 부부와 퍼시
이 작품은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에서 영감을 얻어 그린 작품으로, 백합은 순결을, 전화기는 울리지 않는 상태로 고지되지 않음을 표현했다네요. <자연주의를 향하여> 섹션에서는, 그가 자신의 주변 사람들과 세계에 상당히 감성적으로 반응하여 이미지를 제작하고 있슴을 느낍니다. <호크니가 본 세상>이란 섹션에선 21세기 전환기에 제작된 그랜드 캐니언 풍경과 고향 요크셔 지방의 대형 풍경화를 볼 수 있습니다.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 또는 새로운 포스트- 사진 시대를 위한 야외에서 그린 회화
시간과 공간의 확장에 관심 갖는 작가의 작업물을 집대성한 최신작 '2017년, 12월, 스튜디오에서'가 대미를 장식하고 있는데요. 사진과 디지털 기술을 통해 제작됨으로서 그의 다양한 매체와 새로운 기술에의 관심을 엿볼 수 있답니다.
2017년 12월, 스튜디오에서
이제 창의적인 두 작가의 공통점을 얘기해 볼까 합니다. 이미 호크니가 예술학교 시절 탄탄한 기본기를 갖추었슴은 언급했구요. 뒤샹의 초기 작품을 보며 그의 회화 실력을 말하고 싶군요.
아버지의 초상
전시회에 걸렸던 그의 작품, 뛰어난 실력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첫번째 공통점으로 기본기가 튼실했슴을 말하고 싶네요.
두번째 공통점, 호기심이 많다는 점입니다.
뒤샹의 개념미술은 입체파 피카소, 초현실주의 작가들, 다다이즘 등 다양한 분야의 지인들과 교류함에서 나왔다는 것을, 삶을 들여다보며 터득하겠더군요. 거기에다 그의 '성적 에너지'에 대한 집착은, 프로이트(1856~1939)의 영향이지 않을까 생각되구요. 에로스 셀라비라는 여성 자아로의 변신은 칼 융(1856~1961)의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시각화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데이비드 호크니 역시 대단한 호기심의 소유자라고 전시에서 소개하고 있더군요. 이미 말했듯이 갖은 매체들을 이용한 작업물이 증명하듯이요.
세번째 공통점 입니다. 부지런하다는 거죠.
뒤샹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제작했던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었구요. 호크니 역시 열심히 그리는 사람임을 보여주고 있슴니다.
요크셔의 자연 앞에서 작업하는 호크니
이러한 두 사람의 공통점이 뒤샹이 말한
창의력의 소진은 언제나 한 시대의 예술가들이 기성작가의 대를 이어 그가 하던 것을 그저 계속하는 데 만족하는 순간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