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위인의 상당수는 내향적인 인물이다.
마하트마 간디, 테레사 수녀, 마틴 루터 킹, 공자는 조용하되 ‘본질’에 집중하는 강단과 추진력을 지녔다.
세계 최고의 소프트웨어 기업을 설립한 빌 게이츠는 “나를 키운 건 동네 도서관”이라고 할 정도로 독서광이다. 사업가로 필수 조건일 것 같은 나서고, 화려하고, 언변이 좋은 모습이 아니라 독서와 사색, 개발에 대한 열정으로 다져진 매일매일의 조용한 시간의 힘으로 세계 최대 기업을 일궜다.
국내의 대표 벤처 CEO인 네이버의 이해진 의장은 은둔형 기업가로 유명하다. 대한민국 벤처 1세대 기업가로 인터넷 거품이 가득한 시절에도 실속 없는 사업의 확장을 자제하고 검색이라는 본질에만 집중한 결과, 인터넷 거품이 걷힌 후 비로소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의 포털로 자리 잡았다.
수많은 벤처 기업이 명운을 달리하는 가운데에 미래 트렌드와 본질에 집중하는 힘으로 네이버뿐만 아니라 자회사인 한게임, 라인, 카카오까지 모두 성공시켰다. 화려한 인맥이나 자신의 모습을 전면에 드러내기를 자제하며 조직의 내실에 집중하는 경영으로 유명하다.
연전연승의 전무후무한 해전 역사를 장식한 이순신 장군과 같은 전쟁 영웅이라면 분명 외향적인 사람이 아니었을까? 이순신 장군 무공의 뒤에는 체력, 카리스마, 고된 훈련 같은 측면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적의 의도와 전세를 파악하고, 조류와 지형지물을 영민하게 활용하고, 우리와 적의 장단점을 정확히 간파하는 ‘전략적인 사고’, 즉 ‘내향적인’ 뒷받침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수전 케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수많은 위인들이 ‘내향성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것이 아니라 ‘내향적이기 때문에’ 성공했다.
내향성의 가치는 상당히 평가절하되어 있다. 이제부터 몇 개의 글에 걸쳐서 내향적인 성향 덕에 큰 성취를 이룬 몇몇의 국내 사례를 찾아볼 것이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 기생충으로 2019년 칸 영화제의 황금 종려상을 수상했다. <설국 열차> <살인의 추억> <괴물> <옥자>로 흥행과 작가주의를 결합한 독특한 색깔로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았다. 박찬욱 감독과 함께 다국적 자본의 투자 제의가 이어지고, 세계적인 영화배우들이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 출연하고 싶어 한다.
세계적인 감독으로서 봉준호 감독은 위대한 아우라를 풍기며 자신의 유명세를 과시하는 사람이 아닐까? 칸 시상식에서 보인 봉준호 감독에게서 그런 풍모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거장으로서 배우들을 거느리고 지휘한다는 느낌보다 절친 배우 송강호와 우정을 과시하는 소박한 이미지가 다가온다. 상을 받을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프랑스어 소감도 준비 못했다는 그는 수상 소감에서 “12살에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한 수줍고 소심한 영화광”으로 자신을 소개한다.
봉준호 감독은 어려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집에 틀어 박혀 만화와 영화를 하루 종일 보던 소년이었다. 영화와 만화를 토대로 이야기를 구상하고 그 이야기를 다시 만화로 그렸다. 부끄러움이 많아 밖에 나가지 못하고 혼자 집에서 공상의 세계를 누볐다. 어린 시절 일상이 훈련이 되어 지금 그는 시나리오와 큐티까지 직접 제작하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봉준호 감독은 봉테일이라 불릴 정도로 완벽함과 꼼꼼함을 추구한다. 수년 동안 시나리오와 큐티를 제작하면서 고민과 수정을 거듭한다. 이렇게 사전 구상을 완벽하게 마치면 그 구상을 ‘그대로’ 영화화한다.
세계적인 촬영 감독 다리우스 콘지는 “대단한 설득력을 갖춘 이야기꾼인 동시에 독재자가 아닌 리더”라고 봉 감독을 평가한다. <설국 열차> <옥자>에 출연한 배우 틸다 스윈튼은 “봉준호 감독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동시에 우린 매우 자유로워져요.”라고 말한다.
“창의적인 삶을 사는 것이 성공한 삶이다”라고 소감을 발표한 봉준호 감독은 하루 이틀 수상의 기쁨을 만끽한 후 바로 다음 작업으로 착수할 예정이라고 한다. 내향적인 사람의 장점인 꼼꼼함, 치밀함, 완벽성, 한 가지 주제에 대한 몰입, 소수의 사람과 맺는 깊은 인간관계가 소년 봉준호를 세계적인 감독의 반석으로 올려놓은 것이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