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 후보 안철수 / 발레리나 강수진
안철수의 어린 시절 별명은 흰둥이다. 운동도 못하고, 말도 못하고, 새로운 사람 만나기를 무서워하던, 얼굴이 하얀 아이였다. 성적표에 수라고는 안철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한다.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싫어해서 주로 혼자만의 시간에 독서, 기계, 동물, 식물과 빠져 지냈다. 도서관에 더 이상 읽을 책이 없을 정도로 무섭게 책을 읽었다. 기계를 좋아해서 집과 친척집에 보이는 기계를 닥치는 대로 뜯고 조립했다. 학교 앞에서 사온 병아리를 닭으로 길러내고, 옥상 정원에 꽃씨를 심어 꽃을 가꿨다.
안철수는 의사인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 의대에 진학했다. 박사 과정 중 국내에 최초로 컴퓨터 바이러스가 유입되면서 바이러스를 치료하기 위해 낮에는 의사로, 밤에는 백신 개발자로 7년간 일하였다. 규모가 커져 두 가지 일을 병행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아닌, 아버지를 기쁘기 위해 선택한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백신 개발자의 길을 선택했다. 개인의 성공 뒤에는 사회로부터 받은 혜택이 존재한다며 개인들에게 무료로 백신을 배포하는 등 윤리 경영의 행보를 밟았다.
회사가 성장세에 있던 2005년 돌연 전문 경영인에게 회사를 넘기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한국에 돌아와 카이스트 교수로 일하면서 상담온 학생이 흘리는 눈물을 보고 청년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경제 평론가이자 의사인 박경철과 함께 청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한 청춘 콘서트를 개최한다. 상대적으로 문화와 지식의 혜택에서 소외된 지방 대학 위주로 찾아다니던 이 콘서트는 대한민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변화에 대한 열망이 안철수에게 투영되어 결국 대선 후보로 올랐다. 전국민이 주목하는 대상이 되었지만 그의 부끄러움 많고 겸손한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카리스마와 힘이 넘치는 모습 대신 조용하고 진실한 이미지로 승부했다. 인생의 전환을 맞을 때마다 바로 뛰어들기보다 독서와 생각으로 긴 시간을 준비하는 시간을 가진다며, “남들과 똑같이 실수하지만 같은 실수는 절대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안철수는 공부, 사업, 유학, 교수, 정치인으로 도전하고 발전하는 삶,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으로 대한민국의 국민 멘토로 우뚝 섰다. 겉에서 그의 삶을 보면 거침없는 인생같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한 동력은 현실과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몰입하는 힘, 독서와 생각으로 충분히 공부하고 생각하는 준비성, 한번 시작한 일은 뒤돌아보지 않는 집중력, 사회적 책임 의식 등 내향적인 성향에서 비롯되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조용하고 겸손하고 신중함을 잃지 않는 그의 인생 행보는 이처럼 숙고하고 사색하는 혼자만의 시간에서 비롯되었다.
강수진은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로 전세계 무대에서 여러 무용수와 호흡을 맞추며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인정받는 세계적인 발레리나이다. 남자 무용수와 완벽한 호흡을 자랑하고 수천, 수만의 관객 앞에서 공연을 하는 무용수라면 당연히 외향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강수진은 어린 시절 너무 내성적이라 땅만 보며 걷는다고 땅바라기라고 불리던 아이였다. 사람들의 물결에 휩쓸려 엄마의 치맛자락을 놓쳐 길을 잃게 되었을 때도 울거나 도움조차 청하지 못하고 그저 우두커니 서서 엄마를 기다리던 숙맥이었다.
한국 무용으로 선화예중을 다니던 중 우연한 기회로 발레로 전과를 했다. 엄마가 시켜서 가기는 했는데 본인이 원하던 게 아니라 처음 몇 년은 수업에 충실하지 않고 탈의실에서 아이스크림과 과자를 몰래 먹던 철부지였다. 그러던 중 금발 머리의 외국인 선생님의 자태와 칭찬에 반해 발레를 사랑하기 시작한 후로는 180도 변했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발레를 따라잡기 위해 학교가 문을 닫을 때까지 연습에 매진했고, 부족한 공부를 따라 잡고 싶어 새벽에 도서관에서 부족한 공부를 보충했다.
선화예중 시절 전 모나코 왕립 발레 학교 교장인 마리카 베소브라소바가 선화예중에 방문했다. 마리카 선생님은 강수진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알아보고 모나코 유학을 제안했다. 유학길에 오른 첫 해 세계적인 발레 영재들과의 실력 차이와 향수병으로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국제 전화비가 상당히 비싸던 시절 일주일에 한 번 한국에 전화를 걸면 아무 말도 못하고 펑펑 울면 통화 제한 시간인 3분이 끝났다.
세계적인 발레 콩쿨인 로잔 콩쿨에서 1등을 차지하고, 세계 명문 발레단인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최연소로 입단하며 주목을 받았지만 프로의 세계는 냉정했다. 오로지 실력으로 승부하는 프로의 세계에서 갓 졸업한 학생에게 배역이 주어지지 않았다. 춥고 어두운 독일 날씨와 쾌쾌한 지하방까지 우울함을 더해 발레리나로서 치명적으로 살이 10키로나 졌다.
강수진이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던 힘은 발레를 향한 열정과 연습이다. 발레가 좋아서 미친듯이 연습하고, 외로움을 잊기 위해 더 열심히 연습했다. 모나코 왕립 학교 시절에는 모두 잠든 시간에 몰래 기숙사에서 빠져 나가 동이 틀 때까지 달빛을 조명삼아 혼자만의 연습을 했다. 발레단에서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 반신욕과 스트레칭으로 연습 전에 완전히 몸을 풀고, 발레단에 가서도 한 순간도 집중을 풀지 않는다. 쉴 때도, 먹을 때도, 잠잘 때도 발레와 연결을 끊지 않는다. 발레에 대한 몰입은 손가락만 들어도 강수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의 예술적 색채를 만들어냈다. 보수적인 유교 문화권에서 자라 남자 아이들 얼굴도 쳐다보지 못하던 약점도 발레에 집중함으로써 극복했다.
뛰어난 기량을 가진 한 두 사람만으로는 완성도 높은 공연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상대와의 호흡, 주역과 군무의 조화, 무용가와 안무가의 소통, 그 외 오케스트라, 분장, 무대까지 그 어느 것 하나만 소홀해도 최고의 공연은 불가능하다. 강수진은 발레단의 가장 아래에서 위까지 모든 단계를 거친 경험으로 뛰어난 공감 능력을 자랑하고, 그 결과 발레단 사람들과 두터운 신뢰 관계를 쌓았다.
강수진은 독일과 오스트리아 정부에서 예술 발전에 기여한 예술가에게 지정하는 캄머 탠처린으로 지정되었다. 국가에서 보호하는 인간 문화재로서, 종신 고용, 면책 특권, 평생 연금이 지급되는 큰 영예이다. 예술적인 성과만으로는 지정되지 않고, 높은 도덕성과 인격까지 갖춰야 선정된다. 적임자가 없으면 상을 주지 않을 정도로 엄격하다. 예술적 성과, 리더로서의 책임감, 통솔력, 소통 능력으로 그녀는 동양인 최초로 지정되는 영광을 누린다. 하지만 발레 후학을 양성하겠다는 새로운 꿈은 이 상이 주는 특권을 포기하고 국립 발레단장으로 한국에 복귀했다.
강수진은 한 가지 일에 대한 지독한 사랑으로 혼자만의 외로운 연습을 견뎠다. 남과 같은 것을 거부하고, 깨어 있는 모든 순간을 발레에 몰입했다. 고독을 즐기고, 한 가지 일에 깊이 파고드는 내향적인 성향은 발레리나로서 불리한 자질을 극복한 것이 아니라, 자질을 ‘타고난’ 것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