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예중 입시, 결정의 순간 1에서 이어집니다)
40 일 천하로 종결된 예중 입시로 우리는 시간과 돈으로 값을 매길 수 없는 큰 교훈을 얻었다.
일단 남의 이목을 넘어 실용적인 결정을 내린 기특함이다. '저 아이는 금새 포기하는 걸 보니 의지가 약한 아이로구나'라는 세간의 비난을 감수하고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인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무한한 재능을 가지고 있고 꽃피우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준비가 되면 그 누구라도 말릴 수 없는 돌파력을 가질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면 아직 준비가 안된 것뿐이다. 의지가 약한 것도 아니고, 쉽게 포기한다는 의미도 아니다. 한계를 깨달았다면 바로 현실에 수긍하고 현재 자신에게 가치 있는 일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남들이 수근거릴 것이 두려워서', '친구들은 다 하는데 나만 못하는 것이 부끄러워서' '정보도 의지력도 없는 엄마가 되지 않으려고' 억지로 끌고 가봤자, 돌파력이 약할 뿐만 아니라, 현재에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잃는다. 세간의 이목을 감수하면서 한계를 인정하고 바로 현실로 복귀한 것은 참으로 용기있는 결정이다.
실용적인 결정이 어려웠던 건 나도 마찬가지다. 블로그에 "스스로 몰입해서 재능을 키우면 짧은 기간에도 이렇게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라는 글을 얼마나 올리고 싶었던가.
입시하는 걸로 해놓고 '역시 준비 기간이 짧았어요'라고 할까? 내심 딸이 “그래도 도전할거야!” 했으면 했다. “시작이 반인데 시작한 게 아깝지 않니? 40 일간 들인 돈! 시간! 선생님이 기대하며 끌어 주신다는데 한번 해보자. 2달 밖에 안되잖아.” 라고 할 수도 있었다.
남편과 나의 교육관은 자신이 원해서 밀어부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어려운 걸 누가 좋아해요. 그러다 영원히 놀면 어떻게요?"
라고 묻는 사람도 많지만 그건 생각하고 싶지 않다.
언젠가는 날개를 펴고 날아 오를 거라 믿는다.
내 명성이나 자존심때문에 딸을 밀어부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블로거로서의 명예보다 우리 가족에게 더 중요한 선택을 한 것이다.
나의 용기도 칭찬한다.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포기담을 늘어놓는 것은 남의 이목이나 명분때문에 실속있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아이가 힘들어하는 것이 분명한데 지금까지 한 것이 아까우니 계속 밀어부치는 것, 이유도 모르고 근거도 없이 남들이 다 하니까, 안하면 밀릴 것 같으니까 시키는 사교육들, 적성이나 열정과 상관없지만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려고 선택하는 학교, 전공, 회사 등등.
이념에 집착해서 실사구시의 정신을 미뤄두고 100 년간 쇠퇴의 길을 걷게 한 선택을 2000 년대의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가 답습하고 있다. 승리의 역사가 아니라 패배의 역사가 우리 속에서 살아 숨쉰다.
“역사는 지식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교훈”이라는 점도 이번 사건을 통해 느꼈다.
입시처럼 세간의 관심과 경쟁, 욕망이 집약된 분야에서는
더더욱 실리적인 선택이 어려워진다.
두려움, 욕망, 경쟁이 결정의 기준이 된다.
역사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의 우리 삶에서도 살아 숨쉬고 있다. 똑같은 아둔한 결정을 내릴 수도, 역사의 교훈에서 배워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이번 상황에 제대로 적용할 수 있었다.
도전의 가치, 실패의 가치도 배웠다. 생애 처음으로 세상에 출사표를 던졌고 자신을 희생시킨 경험을 해보았다. 세상이 만만치 않음을 느꼈을 것이다. 다음에 선택을 할 때 더욱 신중할 것이고 더욱 치밀할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도 더욱 진지하게 생각할 것이다.
성공보다 실패의 경험에서 더 많이 배운다고 했다. 실패 포비아가 기업가 정신을 사라지게 만들고 도전을 두려워하게 만든다. 딸은 어린 시절 실패를 자주 경험했으면 한다. 작은 충격을 자주 겪다 보면 다른 실패를 했을 때 더 빠르게 회복될 것이라고 믿는다. 회복 탄력성은 삶의 질을 좌우한다.
예중을 주제로 온 가족이 정말 이야기를 많이 나눴고, 단결했다. 예중 준비 전날, 이제 자신의 생활이 변하게 될 것을 직감하고는 "나 좀 울어도 돼?" 하더니 펑펑 울었다.
"이렇게 앞에서 울고 기댈 사람이 없으면 얼마나 힘들까" 한다. 딸은 나를 의지했다. 나는 남편을 의지했다. 입시의 치열함에 금새 흔들리고 마는 팔랑귀를 남편이 굳게 보조해 주었다.
딸의 의지, 성실함도 보았다. 자신이 선택한 일이라면 부모가 말 한마디 안해도 스스로 끌고 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서로 믿고 의지하는 관계가 어떤 것인지를 가족을 통해 알았다. 서로에 대한 믿음이 한층 더 강해졌다.
화실 선생님에게만 죄송하다. 좋은 학생을 만나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이 가르치는 보람일텐데 허세가 조금도 없이 알찬 분이 우리보다 더 열정을 가지고 끌어주려고 하시는데 우리가 먼저 포기를 한다니 눈에 띄게 힘빠져 하신다.
"선생님, 너무 죄송해요. 스스로 밀고 나갈 시기를 기다리고 싶어요. 아직 시기가 안된 건지, 완결성이 중요한 우리 나라 미술 입시에 딸이 안어울리는 것인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아직은 좋아하는 걸 더 많이 하고 생각하면서 재능을 키우는 데에 더 집중하고 싶어요. 우리 나라 입시에 안어울린다면 세계 어딘가에는 맞는 곳이 있지 않겠어요."
"힘이 빠지기는 하지만 저와 같은 교육관을 가지고 계셔서 충분히 이해합니다. 더 길게 보고 가도록 해요."
빈말이라도 붙을 수 있으니 다시 생각해 보라는 권유 한번 안한다. 장삿속보다는 교육관을 더 존중하는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대한민국 교육에는 치열하고 경쟁하고 잘하고 남을 이기는 것만 보인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도 남들이 다 달려가니 나만 이러면 안된다는 불안감이 행동의 동력이 된다. 실패담, 느리게 가는 부모의 이야기를 얼마나 듣고 싶었던가...
대한민국 교육에도 내려놓고, 기다리고, 넘어지고,
남보다 느리게 가고, 양보하는 것도 있음을 알리고 싶었다.
주저앉을 수도, 뒤로 갈 수도, 돌아갈 수도,
다른 길로 갈 수도, 쉬었다 갈 수도 있다는 걸
우리 집의 입시 경험을 통해 함께 나누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아이들은 그 모든 가능성이 펼쳐진
밝은 미래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