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방학이 되자 하루에 10~11 시간씩 학원에 머물며 그림을 그린다.
딸이 입시를 시작하면서 가장 힘든 건 도시락 두 개 싸는 것도, 공부를 안해 노심초사하는 것도, 잠을 못자는 것도 아니다.
딸이 너무 보고 싶다~~~~~~
각자 자기 할 일 하느라 한 집에 있어도 얼굴 볼 일이 많지 않았는데 보지 않아도, 말하지 않아도 존재만으로 얼마나 큰 활력이었는지 말도 못하게 크게 다가온다.
"딸! 늦게 들어오니 너무 보고 싶어. 화실에서 10 시간씩 그림그리는 것도 마음에 안들어. 예중 안가면 안될까? 예중 안가도 그림과 관련해서 사는데 아무 지장 없어."
"나도 방학 때 아침 일찍부터 나가는게 싫어. 오늘처럼 비오는 날은 침대 속에서 뒹굴며 빗소리 듣고 싶어."
그래도 너무 가고 싶단다. 예중이.
힘들다는 소리 하나 없이 도시락 두 개 싸들고 집을 나선다.
매우 보수적이고 허풍이 한 점도 없는 화실 선생님은 "이 정도 기간이면 거의 안된다고 생각하세요. 본인이 가고 싶어하니까 최선을 다해 보는 거에요."라고 하신다.
대한민국의 학부모들에게는 참으로 인기없을 타입인데 우리 부부는 그 점이 마음에 든다. 입시 장사꾼이라기보다는 그림 선생님이다. 그림을 바라보는 지향에 일치하는 부분이 많고, 매일 아침 새벽 기도로 하루를 준비하는 점도 마음에 든다. 조심성이 많은 선생님이 한 달 정도 딸을 지켜보며 조심스레 말을 바꾸신다.
"재능이 정말 있네요. 자세도 좋구요. 어쩌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조금만 일찍 시작했으면 확실히 합격했을 것 같은데요. 그런데... "
여기도 버뜨…
"무슨 그림을 10 시간씩 그려. 생각이 막히면 그림을 더 못그리는 법이야. 방학 때도 8시간만 해"
"할 거 다 해. 발레도 해. 남는 쉬간에 충분히 놀게 해. 대신 30 분씩 필기 공부만 하라고 해."
"긴 휴가는 못가게 됬으니 3, 4일 짧은 휴가를 몇 번씩 다녀오자"
남편의 조언을 반영하여 이 날은 이래서, 저 날은 저래서 빠지는 방학 일정을 선생님께 보냈더니, 내 딴에는 이 정도도 충분히 힘들다 싶었는데 그 일정을 보며 한 마디 하신다.
"이러면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어려워요. 12시간씩 평일 주말까지 매일 그려요. 잘 생각해 보세요"
1%의 확률에 매달리는 거라고는 하지만 100 % 떨어지려고 10 시간씩 비지땀 흘리게 할 수는 없지.
이렇게 줄이고 저렇게 줄여서 다시 일정표를 짜본다. 입시생도 어렵지만 입시생 부모도 어렵고나. 처음이라 우리도 감이 없다.
그런데 필기 공부는 왜 안하는거니. 떨어지기 위해 10시간씩 그림 그리기는 너무 아깝잖니. 알았다고 하고 만화책 보고, 밥 먹고, 좋아하는 그림 그리고, 스마트폰 끄적이고, 멍 때리고... 그러고도 시간이 남으면 개미똥만한 자투리 시간에 교과서를 쳐다 볼까 말까 하니 내 짐작에 지금까지 필기 공부는 거의 안했겠다 싶다.
힘들게 준비하는데 작은 부분을 소홀히 해서 떨어질 것이 안타까워서 답답한 마음이 한가득인데 잔소리 하지 않으려고 온갖 내공을 총동원중이다. 남편이 이 부분에서 나보다 더 힘든 시간을 보낸다. 나는 참고 기다리는게 그리 어렵지 않은 사람인데 남편은 전진하고, 이끌고, 도전의 화신이다. 기다리느니 차라리 한 시간씩 공부시키는게 쉬운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참는 중이다.
"떨어져야 크게 배우려나?"
"지가 하고 싶어야 하겠지?"
"정말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날이 오긴 올까?"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이더라고."
남편이 참으면서 던진 말들이다. 또 한 명의 늦된 아이였던 내가 공부를 주욱 못하다가 6학년 때부터 교과서 복습 한 번 하고 성적이 올랐다고 했더니 남편이 '언제부터 성적 올랐다고 그랬지?' 계속 묻는다. 6학년이었다고 상기시켜주자
“6학년까지는 기다려볼게” 한다.
이제 6학년이 끝나간다.
말을 바꿨다. 강수진은 중학교 2~3 학년 때부터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것을 알려주니 남편의 얼굴에 기쁨의 미소가 퍼진다.
중 2때에도 여전히 공부에 관심이 없다면 20세부터 공부를 시작한 사람을 찾아보면 된다.
우리 부부가 사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