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중 입시생의 자기 주도 학습

by UX Writing Lab

딸은 육각 기둥, 사각 기둥, 원뿔로 소묘의 기초를 다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스타일이나 이야기가 담기지 않은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는데 예쁘지도 않은 사물을 정확하게 재현하는 그림을 배우느라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미술 학원에 오래 다녔다고는 하지만 정식으로 그림 수업을 받았다기 보다는 자신이 그리고 싶은 것만 자유롭게 그려왔기 때문에 미술의 첫 걸음부터 시작하는 셈이다.


입시 미술은 어떤 정물이 시험 문제로 나올 지 모른다는게 어렵다고 한다. 과일, 의자, 오징어, 북어, 접시 등 그 무엇이 어떤 주제로, 어떤 각도로 나올 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많이 그려본 사람이 능숙하게 그릴 확률이 높다고 한다.



이제 사각 기둥 처음 그려 봤는데… 석 달 후에 사물을 정교하게 그릴 수 있을까.


주말 동안 작년에 출제된 실기 문제를 그려오라는 숙제를 받아왔다. 주어진 사물을 최소한 하나씩 이용해서 즐거운 느낌을 표현하는 문제이다. 단 인물은 종이의 1/4 이상의 크기로 그려야 한다.


상상 그리기라면 밤을 새도 즐거울 뿐인 아가씨.

온갖 그림책을 꺼내 놓고 시간, 크기 제한 따위는 감안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주먹왕 랄프부터 온갖 동물 총출동, 핫케익은 스무 장이 진정한 맛이라며 켜켜이 쌓아 올린 스무겹 핫케익. 스케치만 4시간 그리고 2/3 완성이다. 색칠은 시작도 못했다. 너무 정밀해서 수채화 붓 들어갈 자리도 없겠다. 인물은 정말 크게 그리려고 노력해서 종이의 1/10 크기. 다른 동물은 더 작다.



"그래 잘했어! 버뜨~~~~"를 안하려고 마음을 다졌으나 또 한 마디 날리고 말았다.



실기야 화실 선생님이 끌어주신다지만 필기는 어쩔 것인가.



학원은 절대 안다닌다고 하고, 엄마 아빠의 도움 없이 혼자 해보겠다고 한다. 혼자 한다는 말은 곧 안하겠다는 의미이다. 4과목의 1년치 과정을 시간이 나는 주말에만 공부해야 한다. 학교 수업에만 충실한 건 전체 수석만이 아니다. 우리 집에도 한 명 있다. 다만 수업 외에는 단 일 초도 들여다 보지 않고, 수석과 점수 차이가 좀 크다는 것만이 차이이다. 5학년 때 배운 내용을 아는지 모르는지...


"최대한 교과서 2번씩은 읽고, 시간 나면 문제집도 풀어보는게 좋을거야. 주말에 4과목을 모두 해야 하니 못해도 3~4 시간은 걸리겠지?"

"응!"


하더니 30 분 느적 느적 공부를 끝내고 갈 데가 있다고 나가 버린다.



대한민국 입시를 자기 주도로 하는게 과연 맞는건가…

떨어지려고 준비하는 건 진심으로 아닌데 말이다.



아.. 몰라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신경 끄자.


josh-applegate-p_KJvKVsH14-unsplash.jpg 그림 출처. Josh Applegate on Unsplash


이전 06화예중 입시생의 번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