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예중 입시 팔랑귀

by UX Writing Lab

입시 현장에 들어오니 단순하고 잔잔한 일상이 요동을 친다.



물리적으로 학원을 알아보고, 주변의 조언을 듣고, 준비물을 구매하느라 바빠진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멘탈이 폭풍친다. 이 말을 들으면 "그래?" 하다가 결국에는 남편 말 듣고는 "알았어. 이제 안그럴게"로 끝나기를 하루에도 몇 번.


급기야는 평화롭게 일상을 보내는 애를 잡고야 말았다.


"지금 니가 여유롭게 만화 보고 있을 때야? 애들은 주말까지 6시간씩 그린대. 필기 시험 공부도 한다더라! 엄마 아빠는 죽도록 머리 굴리는데 너는 아무 것도 안하고 그렇게 편해? 아무 생각없이 기분 좋을 정도로 그리면 합격할거 같애? 이왕 시작한 거 붙도록 해봐야지. 그런 태도로 뭘 하겠다는거야!"


마음의 격정이 아이에게로 터지고 말았다.


"갑자기 왜 그래?"


"좋은 학원, 선생님이 문제가 아니라 연습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입시생 중에 재능 없는 애가 어딨어. 그런 아이들이 6시간씩, 게다가 몇 년을 하는데, 늦게 시작하면서 연습까지 안하고 선생님이 가르쳐주기만을 기다리면 당연히 떨어진다는 거잖아. 열심히 하고 떨어지면 위로라도 해주지. 설렁 설렁하면 당연히 떨어질 게 뻔한데 그럴 거면 시작을 왜 하겠어. 돈 아까워. 그 돈이면 더 가치있는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분노한 엄마를 달래기 위한 대화가 시작됐다.


"연습 시간이 적은 건 인정하자. 지금보다는 늘려야겠어. 그런데 애를 기계로 만들지마. 기계적인 표현은 미술에서 독약이야. 입시에는 도움될 지 모르지만 길게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에서는 쥐약이야. 자기 색깔과 세계가 절대적으로 중요해. 이미 오래 준비한 아이들의 정확도는 어차피 못따라가. 그걸 따라가 다 지쳐 떨어지고 가장 중요한 자신의 색깔을 잃게 되고, 게다가 그 아이들을 능가하기도 어려워. 예중때문에 더 먼 미래를 버릴 참이야?


선생님께 개성 존중해 달라고 그래. 아이만의 특징 죽이지 말고 살려달라고 해. 그걸 봐주는 심사관이 있다면 고마운 거고, 없으면 어쩔 수 없어. 합격은 덤일 뿐이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주말도 학원에 묶지 말고 스스로 계획 세워서 실기든 필기든 보충하는 방향으로 해보자. 창의성과 발전은 쉬어야 나와. 쉬지 않고 채찍질하면 사고가 멈춰. 학교도 결석 하지마. 할 거 다 해.

딸 인생에서 예중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야. 이 세상이 얼마나 넓은데. 예중보다 말도 안되게 좋은 아트 스쿨이 세상에 널려있어. 편하게 생각해."


맞다. 몇 시간이나 지났다고 그새 까먹었는가.



평화의 시대에는 디테일한 엄마의 역할과 목소리가 컸는데 격정의 시대로 오니 남편의 역할이 빛을 발한다.


"엄마 아까 엄마같지 않았어."


"인정해. 엄마가 지금 제정신이 아닌게 확실해. 앞으로 엄마가 이상한 소리하면 무시해. 그리고 아빠랑 둘이 상의해서 결정해. 엄마는 입시에서 빠져주는게 너한테 도움되겠다."


"어쩐지, 아빠랑 말이 더 잘 통하더라"


딸과 이제부터 바뀔 스케줄을 적어 나가는데 제 딴에 여유롭게 잡았다 해도 척 봐도 이전과는 비교도 안되게 타이트한 일정인 걸 실감하고는 갑자기 얼굴이 벌개져 눈물을 뚝뚝 흘린다.


"이제 내가 좋아하는 상상 못하는거야? 상상해서 그리는 그림도 그리고 싶은데 그럴 시간이 없네. 미술 학원에서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은 못그리겠지? 신동아 미술 학원도 그리울거야..."


"........"


"나 좀 울게. 울면 마음이 가벼워진다며...."


그만두라고 하고 싶다. 요 몇 일을 겪으며 도전한다는 사실이 소중한 건지, 굳이 필요없다고 생각되면 설득해서라도 말리는 것이 좋은지 판단이 안된다.


"계획을 보니 이제 바뀔 생활이 확 다가와? 좋아하는 걸 못할까봐 걱정돼?"


"응."


"도전하는게 너무 멋져. 좋아하는 활동을 이전만큼은 못하겠지만 도전하면서 얻는 성취감이 그 자리를 메워줄거야."


"이렇게 터놓으면 마음이 편한데 혼자 살면 얼마나 힘들까. 나는 말이야. 가장 행복한 순간을 생각해 봤는데 가족들이 함께 여행했을 때야."


"엄마가 학원 끝나면 밤에 데리러 갈까? 돌아오는 길에 걸어오면서 얘기할까?"


"그 시간이 유일하게 상상할 수 있는 시간인데 뺏기고 싶지 않아. 혼자 올게."


"그렇구나. 상상의 시간이 줄어드는 것도 아쉽구나. 그럼 엄마가 화실에 20 분 정도 늦게 도착한다고 말씀드릴게. 학교 끝나고 20 분 동안 학교 주변을 돌면서 조금 더 상상하다 화실로 들어가"


"알았어"


왜 이렇게 뭉클한지 모르겠다. 딸이 좋아하는 꽈배기랑 카레라이스를 도시락으로 싸주는 내내 마음이 울컥한다. 20 분 동안 학교 주위를 배회하다 들어오는 딸의 얼굴을 보는데 울컥하다. 구글 포토로 하루 종일 부지런히 돌아가는 딸의 어릴 적 사진을 보는데 어찌나 자유로웠던지, 어찌나 한 순간도 빼놓지 않고 부모와 함께 있었는지....



그 때는 이렇게 아침 일찍 나가 밤 늦게 돌아오는 날이 있을 거라 생각지 못했다. 틈만 나면 애를 떼어 둔 자유로운 시간이 그리웠고, 애 없이 하는 여행을 기다려왔다. 이제 그 날이 왔는데 전혀 좋지가 않다.


세상을 향해 큰 걸음 뗀 경사 앞에서 왜이리 감성만 비정상적으로 부풀었는지...

어차피 집에 같이 있어도 각자 자기 일 하느라 얼굴 볼 새 없었는데 아예 옆에 없다 생각하니 서러워 죽겠다.



sincerely-media-s3tPywNsLSo-unsplash.jpg 사진 출처. https://unsplash.com/photos/s3tPywNsL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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