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적 느적 굼벵이 생활을 청산하고 평일 6시간씩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빡센 일정이 시작되었다.
"힘들다고 안해요? 정말 재능 있는 거 맞네요. 힘들다고도 안하고 집중하는 모습이 너무 예뻐요.
좀더 일찍 시작했으면 합격했을 것 같은데, 정말 아깝네요."
반쯤 누워 있는 자세가 공식 포즈인 딸래미가 6시간씩 의자에 앉아서 얼마나 힘들까 싶은데 의외로 별 말이 없어 기특하네, 대단하네 혼자 딸에 취해 있었다.
그런데,
일주일도 아니고, 한 달도 아니고 5일만에 터진 말,
"나 학원 가기 싫어! 학원때문에 스트레스 받아! 쉬고 싶어!"
"미술 학원 가기 싫어? 힘들지? 당연히 힘들지. 예중 입시가 힘든거야. 다들 그렇게 힘든 과정을 견디며 하는거야. 예중 안가도 돼. 힘들면 하지마. 예중 입시 말고도 지금 하고 싶은 게 얼마나 많은데."
"싫어! 예중가고 싶어!"
"그럼 학원 가는게 좋지 않겠어?"
"오늘 학원 빠지면 보강가야돼?"
"보강은 중요하지 않아. 하지만 너는 지금 학원이 열려 있는 거의 모든 시간을 학원에 있기 때문에 한 번 빠진다 해도 보강할 시간도 없어. 다만 예중에 가기 위해 2년 전부터 준비한 친구들은 상당한 시간을 그림을 그리는데 안그래도 늦게 시작해서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도 모자른 판에 학원을 빠지기까지 하면 남들보다 연습 시간이 적어지는 것뿐이야."
“…….”
"한 분야에 도전하는 과정은 쉽지 않아. 강수진 언니 책에도 나오잖아. 매일 매일 눈물과 땀을 흘렸다고. 어제의 나보다 발전한 걸 보면서 얻는 기쁨과 환희가 너무 커서 고통을 이겨내는 거라고. 엄마도 발레하면서 계속 재밌지는 않아. 아프고 힘들어,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을까 싶은 마음이 수도 없이 들어.
그런데 어제보다 동작이 더 잘되고 몸이 변하는 기쁨이 커서 견디는 것뿐이야. 미술을 처음 배울 때도 단순하고 지겹지. 하지만 이 단계가 지나면 그림 그리는 재미를 느낀대. 너도 어서 빨리 그 기쁨을 맛보았으면 좋겠다."
다시 일상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기특하다.
엄마가 아이 진로에 목매지 않는 건 엄청난 특권이고나.
진심으로 예중에 가던 가지 않던 상관이 없고
아이가 전적으로 주도권을 가지니 모든 상황을 아이에게 맡길 수 있다.
이거 사줄게 구슬릴 필요도,
너 자꾸 그럴래 협박할 필요도 없다.
힘내고 일어나 다시 도전하면 좋은 거고, 포기한다 해도 문제될 것이 없다.
다만 입시 준비 과정을 장황하게 올리고 '일주일 만에 그만뒀어요~~~' 라는 글을 올리기가 상당히 부끄럽겠다는 생각은 들었으나, 내 체면때문에 아이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는 없으니까.
금요일 저녁 남편이 외식을 하자고 그래서 간만에 밖에 나가 먹었다. 금요일은 미술 학원 문을 일찍 닫는 날이라 다른 날보다 일찍 끝난다. 동네 학원에, 다른 아이들 주말까지 6~10 시간을 그린다는데 주말은 고사하고 평일까지 더 적게 한다니 우리는 떨어지기 위해 준비하는가라는 의문도 들지만 이렇게 걸어서 아빠랑 섞기도 하고 달콤한 아이스크림도 먹으며 한 주의 고단함을 날리는 시간이 이렇게 소중한 걸 보니 동네에서 하길 잘했다, 꽉꽉 채워 무리하게 안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유명 입시 학원으로 멀리까지 갔다면 우리 가족은 이런 시간을 포기해야겠지. 더 많은 연습으로 얻는 효과가 클 지, 가족간의 시간과 자신의 시간을 포기한 대가가 클지 가늠할 수 없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우리 가족 모두에게 충전의 시간이 된다는 것이다.
"이래도 될까? "
사람이 충전을 해야 힘을 내지. 안쉬면 방전돼.
창의력은 여유에서 나오는거야.
딸의 귀중한 취미와 일상을 버리게 하면 안돼.
아직 갈 날이 창창하고,
어려서부터무리하지 않고도 좋은 예술가의 자질을
길러줄 학교는 세상에 너무나 많다고.
네네네~~~~
2hills Photo - Foter
Photo by intransit on Foter.com / CC BY-NC-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