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중 미술 입시

by UX Writing Lab

다 모이면 15명 되는 대가족 친정 식구들이 만리포에 놀러왔다.


평생 알뜰하고 견실한 모범을 보이며 살아온 아버지를 닮아 네 남매가 모두 알뜰하고, 견실하고, 유쾌하고, 알콩 달콩 잘 살고 있다.


인천 공항 공사에 큰 조카가 합격한 경사가 있어 더 즐거운 여행이다.


사교육 많이 안시키고 지방 국립대에 입학한 아이를 두고 언니는 ‘순진하게’ 자기 주도 학습만 시킨 자격 미달 엄마라고 자탄했지만 큰 조카뿐 아니라 대덕 연구 단지에서 일하는 작은 조카까지 두 남매를 모두 밝고 성실하고 모범적인 아이로 키웠다.


나는 믿는다.

언니가 ‘순진하게 교육시켰음에도불구하고’ 잘 큰 것이 아니라

'순진하게 교육시켰기 때문에’ 잘 큰 것이라고.



두 남매가 취업을 준비하며 청년 백수로 지내던 짧지 않은 기간 내내 언니 부부는 "자기가 제일 힘들텐데 나라도 맘 편케 해줘야지"하며 미운 소리 한 마디를 안했다. 최소한의 사교육에, (비교적)저렴한 학비와 생활비에, 그저 자신의 생활에 충실하고 건전하게 믿어주는 부모의 응원을 입고 두 남매 모두 너무 예쁜 사회 초년생으로 성장했다.



축하할 일이 없어도 마냥 즐겁지만, 축하할 일이 있으면 건배할 명분이 생겨 어른들만 더 신난다.



"어, 우리 딸도 건배할 일 있어요~~~"

"뭔데 뭔데, 100 점 맞았어?" "이제 공부한대?" "남자 친구 생겼어?"

"아니아니. 우리 딸 예중가고 싶대요. 다음 주부터 미술 학원 나가요. 호호호호"

"어~~ 대단한 일이네! 건배 건배!!!"

"예중 합격해도 파티하고, 떨어져도 파티해요. 호호호"

"엄마는 내 예중을 엄마 파티하는데 써먹어?"

“그럼 그럼~ 노는게 남는거니까~ 호호호”


동네 학원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할 거라는 주변의 조언에 일주일에 한 번씩 개인 교습을 알아볼까 싶어 다시 미술 선생님에게 SOS 를 쳤다.

"어머님, 제가 예고 선생님인 친구에게 물어봤는데요, 일단 지금쯤이면 개인 교습 선생님이 자리가 다 차서 찾기가 어려울 거라고 하네요. 운좋게 있다고 하더라도 주 1회는 안되고, 주 3, 4 회는 해야 한대요.

어머님, 그 친구 말이 동네 입시 학원은 절대 안된다고 꼭 전해달래요. 보통 입시 준비하는 아이들 10시 정규 학원 수업 끝나면 그 때부터 개인 교습 들어가요. 일요일도 그리구요, 주말에 필기 수업도 들어요. 입시 전문 학원에서 예중 예고 선생님 모셔놓고 예중 경향, 기출 문제 설명회를 갖고 수강생들의 그림도 봐줘요.


이런 싸움이에요. 동네 학원에서 기분 좋게 해서 절대 못들어간다고, 동네 학원 성공담은 환상이라고, 만약 붙이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꼭 현실을 알려드리라고 이야기를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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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https://unsplash.com/photos/koyy-5uzlPU)



휴우…


난 아무래도 이 쪽에 서있으면 안되겠다. 또 블랙홀처럼 빨려든다.


주 6일, 하루에 6시간도 못한다고 고개 절레 절레 흔들었는데 주 7일, 거기다 하루에 10시간.

학기중 평일 기준이다.


역시나 남편은 단호하다.


“일단 냉엄한 현실을 제대로 알려준 건 고마운 걸로 하자. 방학 전까지 진척 속도를 보자. 방학 동안 보완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어떻게 보완할지 알아보자고. 하지만 저렇게 대비해야 하는 거라면 차라리 안하는 게 장래에 도움될거야.”


나는 확실히 디테일하고 꼼꼼한 일에 강한 반면, 남편은 작은 건 다 제치고 큰 그림을 보며 돌진한다. 그렇게 자신의 인생을 주도적으로 개척해 왔다.


모든 가정이 그렇지는 않지만 나는 일반적으로 남녀의 모습이 이럴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남과 여가 만나는 거고, 엄마와 아빠가 필요한 거고, 음과 양의 조화라고 하는거고, 애는 엄마 아빠가 같이 키워야 한다고 하는 것이라 믿는다.


나는 디테일을 보고 남편은 큰 그림을 본다. 입시판은 절대적으로 아빠가 필요한 현장이다. 큰 그림이 없으면 미래, 재능, 즐거움이 빠진 채 옆 사람과 비교하는 경쟁만 남는다.

사회적인 측면에서 남편은 나와 비교할 수 없이 잘 살아왔다. 청소년기부터 성인기의 모든 순간을 목표를 직시하며 필요한 것만 택하고 불필요한 것은 가지치며 자신의 이력을 관리해 왔다. 대학 이름만 남고 모든 이력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나와는 다르다. 그 무엇보다 경력 단절인 나와 다르게 벌써 20년 넘게 사회 생활을 하며 현실 감각의 날을 갈아왔다.



대한민국 사교육은 디테일에 치중하는 여성의 약점을 파고들어 큰 그림을 보는 아빠들을 배제시키는 데에 완벽하게 성공했다.


실제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말을 따라야지, 현장에서 물러나 감 떨어진 나를 믿을쏘냐. 입시할 때는 아무래도 남편 옆에만 붙어있어야겠네.


합격하면 남들 다 하는 방식이 아니라, 합의하고, 유쾌하고, 즐겁고, (비교적) 저렴하게 하고도 성공한 것이니 파티할 만하고, 안그래도 딸아이랑 하고 싶은 것 많고, 할 얘기도 많고, 갈 곳이 세계에 넘쳐나고, 입시 준비한다고 여행 다 취소하는 것도 서럽구만, 예중 안다니면 함께 할 시간이 더 길어지니 이 또한 파티할 만하지 않는가.


붙어도 이기는 게임, 떨어져도 이기는 게임. 이 게임 마음에 든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그 모든 것이 아름다워진다.

우리 가족, 엄마 아빠, 새벽 만리포 풍경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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