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보면 실용적이고, 어떻게 보면 마이너스러운 감성은 입시 학원 선택에서부터 시작한다.
은 고려 밖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최고의 학원은
유명한 곳에 가야 그나마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높아진다는 주변의 권유를 만류하고 일단 동네 화실부터 훑어본다. 딱 한 군데 맘에 드는 곳이 있다.
원장의 생각이나 태도가 실속있고, 경력이 길다. 입시생은 100% 원장이 관리하고, 예중 입시생은 없지만 4, 5 학년 예중 준비생이 있고, 예고 입시생, 미대 입시생이 한 명씩 있어 적당히 위 아래도 볼 수 있다. 입시 전문 학원에 비하면 가격이 말도 못하게 아름답다. 집과 학교에서 걸어다닐 수 있는 곳에 있어 체력 관리를 위한 운동 시간도 날 것 같다.
상당히 루즈한 마음은 입시 준비부터 유감없이 발휘된다. 잠을 줄이며 학원 끝나자마자 개인 교습으로, 필기 준비로 날라다녀도 될까 말까라는데 동네 학원에서, 운동까지 하면서 입시를 준비해야 한다는 우리 부부.
어쨌든 외국에 나갈 생각이 없으니 한국 입시는 언젠가는 맞닥들일텐데 후반에 체력이 무너지는 걸 너무 많이 봤다. 체력을 관리할 마인드와 시간 관리도 안되면서 성적 관리가 제대로 될 리 없다.
마음에 드는 데가 있어서 다행이다. 여기로 보내자고 마음을 먹었는데 딸의 미술 엄마, 어릴 때부터 다니던 미술 학원 선생님이 우려를 하신다.
“입시 전문 학원은 입시 막바지에 기출문제 뱅크처럼 매뉴얼과 노하우가 많아요. 시간이 촉박해서 조금이라도 확률을 높이려면 기출 문제나 합격 노하우가 많은 곳이 좋아요. 요즘 예중 입시생이 미대 입시생보다 더 잘 그려요. 전문 학원이 아니라면 자연스럽게 떨어지고 예고를 목표로 할 확률이 높아요. 너무 가능성을 배제하지 말고 알아는 보셔요.”
잠시 귀가 팔랑팔랑해서 남편에게 물었다.
“전문 입시 학원 알아볼까?”
“딸은 이제 시동을 걸기 시작한 자동차야. 운전대를 어떻게 잡는지, 기어를 어떻게 조종하는지도 몰라. 이런 애를 3개월 앞두고 입시 전문 학원에 보낸다는 건 새 차를 150 키로로 달리는 고속도로에 던지는 거나 같아.
오늘 처음 사각 기둥 그렸는데 그 학원에는 오징어까지 완벽하게 그리는 애들이 널렸다구. 내 학생들이 미술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많이 해. 애들을 가르치는게 아니라 공식을 주고 똑같이 그리도록 연습시키는거야. 시작부터 가르쳐야 하는 애한테 신경이나 쓸 것 같아?
이미 잘 그리는 애들을 끌어 올리는게 쉽고, 합격률도 높아지기 때문에 못하는 애들은 신경안써. 총알받이 하러 가는거야. 정원이는 지금 동료와 경쟁하는 것보다 선생님이 얼마나 정원이한테 시간을 들이느냐가 훨씬 중요해. 지금까지 잘 키운 꽃을 말려 죽일 셈이야?”
바닥에 지원자 그림들 수백 장을 깔아 두면 학원별로 스타일이 다 보여. 같은 학원이면 제일 잘한 한 두 그림만 뽑아. 나머지는 다 들러리야. 아무리 잘 그려도 같은 스타일의 아류작은 안뽑아.
합격률이 높다고? 그렇지 않아. 합격자수가 많은거야. 유명 입시 학원의 지점이 서울에 몇 갠 줄 알아? 그 많은 학생에, 준비 기간에, 노력에 그 합격자수면 승률이 높다고 할 수 없어.
가능성이 낮다 해도 도전하는 이상 붙기를 원하는 남편의 조언이다.
신기하게 한심하리만큼 말도 안되는 나의 빈 틈은 남편이 완벽하게 메꾸고, '우리 남편 스마트한 사람인데 왜 저러지?' 싶은 남편의 빈 틈은 또 내가 메워준다. 이번에는 남편이 완벽하게 내 빈 틈을 꼭꼭 메워 깔끔하게 마무리해줬다.
문제는 내 생각이 흔들린다는 것.
무용이나 음악은 신물날 만큼의 단순 반복 훈련이 결국 실력의 차이를 낳는다. 기본이 탄탄할수록 그 위에 내 해석과 세계를 펼칠 여지가 커진다. 물론 미술도 기본은 중요하다. 하지만 치열한 입시 과정과 예중 예고 과정을 통틀어 수련할 정도는 아니라는게 정설이다. 더구나 미술 업계는 바야흐로 그림 실력보다 자기만의 세계와 사고력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추세로 흐르고 있다. 과연 자기만의 세계를 마음껏 펼칠 말랑 말랑한 청소년기의 시간을 희생하고 기초 훈련에 매진해야 할 만큼 가치가 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