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중 입시, 결정의 순간 1

by UX Writing Lab
다들 좋아서 하는 거는 아니래.
힘들지만 참으면서 하는 거지


예중을 준비하는 다른 친구한테 들었는지 딸은 스스로를 이렇게 위로한다.



"광복절에 미술 학원 안쉬어?

일요일이 끝나가.. 괴로워..

월요일부터 또 학원 시작이야..."



지지난 주부터 부쩍 힘든 기색을 내비친다.

당연히 힘들겠지.

하루 종일도 모자라게 놀던 것들을 모두 포기하고 11시간씩 화실에 앉아 있으니 말이다.



"이제 그만 징징거려. 엄마는 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고 분명히 말했어. 할 거면 기꺼이 참고, 억지로 하려면 그만둬. 엄마도 입시때문에 어려워. 네가 하겠다니까 견디는거야. 엄마도 싫어. 안하면 더 좋아. 하기 싫으면 하지마"



심각하게 말했더니 식식거리며 자기 방으로 달려간다.



"엄마가 보기에 예중에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 않은 것 같아. 가면 좋겠다는 바램만 있을 뿐 왜 가야 하는지 얼마나 가고 싶은지 간절함이 덜한 거 같아. 그러니까 어려움이 크게 느껴지지. 너무 하고 싶으면 성취의 기쁨이 커서 어려움을 참고 견디게 돼. 아직 그 정도로 동기 부여가 안된 것 같아. 징징거리는 게 그 증거야. 싫은데 억지로 끌고 갈 필요 없어."



"그림을 그리는 건 좋은데 너무 오래 그려서 허리도 아프고. 하고 싶은 걸 못해서 속상해."



"하고 싶은 게 생기면 너무 즐거워서 10 시간이 1시간처럼 흘러가고, 아픔을 기꺼이 참고 견디고 싶어져. 아직 시기가 안된 것 같아. 그 때까지 기다리자. 우리 역사 모임에서 타이밍 얘기했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근대화를 이루려고 뒤늦게 노력했어도 타이밍이 안맞아서 소용이 없었잖아. 모든 일이 타이밍이 중요해. 지금은 때가 아닌거야. 타이밍이 맞으면 아무리 어려워도 즐겁고, 쉽게 할 수 있어. 지금 5년 걸려서 할 걸 그 때는 1년이면 할 수 있어. 왜 시기를 못맞춰서 1년이면 될 걸 5년이나 하겠어. 게다가 지금 나에게 피가 되는 유용한 활동을 다 포기하면서 말이야. "



"나도 그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그만두면 내가 의지가 약한 사람으로 알려질 것이 두려워. 할머니나 할아버지한테는 또 뭐라고 그러고. 나는 지적받는 것도 싫어하고, 비판도 견디기 싫어하는 걸 보니 입시를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닌가봐."



"다른 사람의 평가나 비난이 당연히 두렵지. 세간의 이목에 반대되는 결정을 내리는 건 어려운 법이야. 얼마나 어려운지 조선 후기에 성리학 이념 논쟁에 빠져 실사 구시 정신을 버리고 망국의 길을 걸었잖아. 남의 이목을 떠나 내가 정말 원하는 것, 나에게 필요한 것을 선택하는 실사구시 정신은 쉬운게 아냐. 그게 쉬웠다면 왜 조선이 그런 운명을 겪었겠어. 일본과 조선의 상반된 운명을 봤지? 실리적인 선택을 한 일본과 이념을 택한 조선이 어떻게 다른 길을 걸었는지.


딸이 정말 하고 싶은 것, 딸 인생에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하길 바랄게. 인생을 크게 보면 지금 입시를 그만두고 그리고 싶은 그림 마음껏 그리고, 엄마랑 같이 책 읽고, 여행다니는 게 더 중요할 수 있어. 남의 이목이 두려워 하기 싫은 걸 억지로 끌고 가는 건 역사의 실수랑 똑같은 거야. "



"그래도 비난이 너무 두려워. "



"시간을 좀더 두고 생각해봐. 어떤 선택이 옳을지. 결정을 따를게."



비 내리는 게 너무 좋다는 딸은 베란다 창을 활짝 열고 비를 감상하며 생각에 빠진다.



다음 날.



"어떻게 하는게 좋겠어?"

"남의 이목보다 내 생각을 따르는게 더 중요할 것 같아."

"그래. 잘 생각했어. 이번에 입시 준비하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어?"

"생각보다 너무 힘들었어.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그저 예중이 좋아보인다는 것만으로는 어려움을 이겨낼 만한 동기가 충분하지 않은거야. 예중 준비하면서 힘들게 견디고 버티는게 기특하지만 점점 기쁨과 기대가 사라지는게 안타까웠어.


마음껏 도전하고 싶은게 생길 때까지 기다리자. 그 때까지는 원하는 그림 맘껏 그리고 함께 이야기 많이 하자. 예중을 준비하는 다른 아이들이 얼마나 힘들게 준비하는지 알았지? 그 아이들의 노고는 존중해 주자고"



남편의 말,


"미술은 절대적으로 쉼과 휴식이 필요해. 제 아무리 피카소라도 하루에 10 시간씩 그리라면 질려서 도망갈걸. 우리 나라 입시는 주어진 시간내에 정확하게 그리는 걸 평가하기 때문에 오래 그린 사람이 유리할 수밖에 없어. 재능이나 창의력이 미술에서 더 중요한데 현 입시체제에서는 발휘될 여지가 없는거야. 우리는 재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니 정답을 찍어내는 미술 교육을 따르지 말자고. 선택을 지지하기는 하지만 교육적인 대안이 없는 것이 좀 속상하다"



"자기 세계나 창의력이 돋보이는 거장들이 미술적 대안이 잘 된 나라에서 살았다고 해도 그 '시스템'이 재능의 큰 부분을 차지했다고 생각하지 않아. 상상을 즐겨 하던 스티븐 스필버그도 부모가 그 상상을 인정하고 혼자 상상하도록 둔 어린 시절이 있었고, 작가주의 감독으로 인정받는 봉준호 감독도 중 고등학교 때까지 혼자 집에 틀어 박혀 영화 보고 만화를 그리던 사람이었다잖아. 시스템이 없어도 좋아서 빠져 지낸 시간이 그 이상의 역할을 할 거라고 믿어보자.”



40 일 천하로 종결된 예중 입시로 우리는 시간과 돈으로 값을 매길 수 없는 큰 교훈을 얻었다.



(이 글은 2부로 넘어갑니다)



katya-austin-koyy-5uzlPU-unsplash.jpg 사진. Katya Austi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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