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라는 날개

첫 글

by 조이 영


두껍게 쌓인 눈이 녹아 물줄기가 되어 흘러간다. 다시 가을 모습이 보인다. 놓친 풍선을 찾은 듯 반갑다. 첫눈이 왔었다. 남몰래 내려 설레게 하던 첫눈이 올해 폭설로 내렸다. 117년 만의 11월 눈폭탄이라 한다. 늦은 더위로 어렵게 다가온 가을에 잠시 머물다 만난 거대한 첫눈은 우리를 당황하게 하였다. 겨울 채비를 못한 빨간 단풍잎 위에 흰 눈이 쌓였다.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소나무 가지가 속살을 보이며 부러졌다. 예측되지 않는 일에 대한 혼란을 몸으로 보여 주고 있다. 온화한 낮 기온으로 눈이 녹으니 젖은 낙엽 향이 흩뿌려진다. 아직 가을이 끝나지 않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가을이 다 가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고.


가을이 시작되던 9월에 브런치스토리에서 축하메일을 받았다. 브런치 작가가 되면 글 발행을 바로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완벽주의도 아니고 미루기 대장도 아니다. 그럼에도 글을 올리지 못하는 것은 무엇일지 고민하고 생각했다. 처음이라는 것은 우리를 설레게 한다. 마음이 가라앉지 않고 들떠 두근거리는 농도가 진해지면 금세 두려움과 걱정으로 어두워진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처음‘의 의미는 설렘과 거리가 멀어졌다. 약간의 긴장 아니면 중력을 거슬러 가듯 무지 애를 써야 하는 중압감으로 다가온다.


중년이 되면 새로운 것이 별로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뜬금없이 나타나는 갱년기 증상으로 매번 다른 진료과목의 병원을 찾아가야 하는 반갑지 않은 '처음'이란 것을 경험한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몸의 변화로 혼란스럽다. 흔들리지 않으려 중심 잡고 몸에 힘을 주고 있다. 이러한 날에 새로운 처음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것도 글쓰기로.


별났던 여름 더위로 지쳐있던 지난 8월. 2024년의 고약한 여름에 갇혀있었다. 처음으로 땀띠까지 생겼다. 땀이 가시지 않아 가렵고 붉게 된 목덜미에 연고를 바르며 지친 날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나의 8월이 다른 기억으로 남길 바랐다. 컴퓨터를 열어 브런치 작가 서랍에 잠자고 있는 글들을 읽어나갔다. 저장된 지 2년이나 지난 글은 거칠고 가벼웠다. 묵혀둔 글을 보니 브런치 작가 신청에서 떨어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문서 삭제 버튼을 마구 누르니 리셋의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순간 더위가 가시는 착각이 들 정도로 후련했다. 다시 고쳐 쓰고 작가 신청을 하여 축하 메일을 받았다. 가장 힘들 때 가장 기쁜 일이 이루어졌다.


브런치 스토리에 글을 쓰고 싶은 것은 나의 언어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다. 세월이 나를 희미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 속도와 박자에 나를 맡기고 흘러가기에 나를 세워주는 소중한 것들이 너무 많아 기록하고 싶었다. 이십일 년 동안 원예 수업을 하며 경험했던 일을 이야기하고 싶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혹은 매달 볼 수 있고 만나야 하는 식물 이야기는 현재 지나가고 있는 시간을 깨달을 수 있는 좋은 선물이다. 여행 중에 만나는 동백, 때죽나무 같은 관목 이야기, 산책길에서 만나는 낯익은 초화류 이야기를 나의 언어로 이야기하려 한다. 그렇게 하여 가장 오늘에 가까운 글을 쓰려고 브런치 작가에 도전하였다.


작가는 두 번째 이름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그 점도 매력적이었다. 새로운 이름을 가지고 출발하는 세상은 어떨까. 궁금했다. 나이를 잊게 하고 환경에서 자유롭지 않을까 기대되었다. 조이 영. 글 쓰며 기뻐하고 싶어 기쁨의 조이(JOY)와 본명 마지막 글자 영을 넣어 필명으로 선택했다. 필명을 들은 사람들은 기쁘고 젊다는 의미로 이해하기도 한다. 기쁨이 키워드이다.


기쁨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 것은 일기를 통해서다. 오랜 시간 하루 3가지 감사한 일을 써 왔다. 억지 감사 일기가 되는 날이면 글이 짧아졌다. 오랜만에 다시 보게 된 Sound of music영화에서 주인공 마리아의 밝은 노래를 들으며 감사한 일을 기뻤던 일로 바꾸었다. 마리아는 비 오는 날 천둥 번개로 두려워 달려온 아이들에게 my favorites things 노래를 불러 주었다. 장미에 맺힌 빗방울, 아기 고양이의 수염, 빛나는 구리 주전자, 따뜻한 모직 벙어리장갑, 끈으로 묶은 갈색 종이 꾸러미를 노래하며 두려움을 잊게 하였다. 노래를 듣는 동안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떠올리며 미소 띠고 있었다. 그날부터 좋았던 것을 쓰기로 했다. 일상에서 기쁜 일을 찾아야 했기에 정말 사소한 것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런 사소한 기쁨이 조금씩 쌓였나 보다. 어느 날 나도 모르게 감사하다는 말이 깊은 곳에서 들렸다. 기쁨 일기를 쓴 지 두 계절이 지난 후이다. 사소하지만 스스로 느낀 기쁨을 인지하니 부족했던 감사가 채워져 가고 있다.


조이 영으로 브런치 스토리 글쓰기가 시작된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을 잡을 수 있는 위로의 글이 되었으면 한다. 살아가는 이야기와 제철 과일 같은 제철 식물 이야기로 생기 있는 글을 나누고 싶다. 일상이 일정하게 반복될 수 있는 것은 안전하고 평화로움 안에서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나이가 들어 알았다. 그러한 안전과 평화로움을 쉽게 간과하여 지루함으로 이어지질 않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처음'과 '지금'이 공존하는지 유심히 봐야 한다. 무게감을 가진 처음이라는 순간들은 삶의 기록이 되기 때문이다. 브런치 스토리에 글을 발행하는 것은 매번 지금 이 첫 글처럼 망설임의 결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중한 날에 엮은 글이 처음이라는 설레는 날개를 달아 사람들에게 닿기를 바라본다. 조이 영, 글 쓰며 기뻐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