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야기
2024년 마지막 날 아침, 창밖이 서둘러 밝아진다. 새해를 향해 달리는 시간 앞에서 마르지 않은 눈가를 매만진다. 이틀 전 일요일 아침에 들려온 무안여객기 사고 소식은 성가정 축일 미사 드리고 나오는 길을 얼어붙게 하였다. 두려운 마음은 시선을 TV뉴스에 묶어 놓았다. 상상하지 못한 암울한 하루가 지나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가브리엘 포레의 레퀴엠을 듣는 순간 두려움은 슬픔으로 증폭되었다. 죽은 이를 위한 미사곡은 믿기 어려운 황망한 사건을 육체 감각에서 영혼 감각으로 이끌었고 그 많은 영혼을 위한 위로의 눈물이 흘렀다.
이미 12.3 비상계엄령이 있던 다음 날 아침,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말을 기억하며 걸어 나갔다. 그렇게 조심히 발을 내디딘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나는 또 사과나무를 심어야 했다. 희망을 심기 위함이 아니라 일상을 유지하여 두려움을 버텨내기 위해서였다. 2024년 마지막날인 오늘도 새해를 설계하기보다 이 슬픔을 견디는 시간이 흐르고 있다. 새해 준비가 부실해도 나의 삼세번의 새해맞이가 있어 다행이라 생각하며 2025년을 맞이할 준비를 해 본다.
여느 해 12월 31일은 한 해를 마무리하며 힘들었던 기억은 보내고 새로운 해맞이 준비에 들떠 있다. 새 수첩을 꺼내어 일 년을 계획해 보고 하얀 백지 같은 새로운 해를 위해 온 마음 다해 복을 전하고 받기도 한다. 제야의 종소리를 듣고 일출을 보느라 잠을 설치며 새해 첫날 1월 1일을 맞이하는 날은 나의 두 번째 새해가 된다.
나의 첫 번째 새해는 동지쯤부터 시작한다. 동지는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아 가장 어두운 시기이다. 다시 해가 길어지는 시기를 일 년의 시작으로 생각하여 작은설이라고 하기도 한다.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라고 하였고 동지 팥죽을 먹으면서 찹쌀로 만든 새알심을 먹는 것도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의미일 것이다. 크리스마스와 동지는 거의 같은 시기이다. 가장 어두울 때 빛은 가장 빛난다는 진리를 깨닫고 팥죽을 나눠 먹듯 이웃과 화해하고 사랑하는 정신은 같은 맥락인 것 같다. 매일 해가 조금씩 길어지며 어둠의 힘이 약해질 것이라는 기대로 새알심 먹으며 작은 새해맞이를 몸으로 꼬박꼬박 한다. 자연과 같이 움직이는 시간은 뜨거운 팥죽 한 그릇만큼 만족감으로 다가온다.
신정은 소소하게 가족과 보내는 설날이라면 음력 1월 1일 구정은 어르신들과 친척들과 함께 하는 시간으로 나에게 세 번째 새해가 된다. 음력 설인 구정에는 바쁜 음식 준비와 교통체증으로 피곤함과 과식으로 얼룩지지만 마지막으로 한번 더 새로운 해를 맞이하기 위해 마음을 다 잡는 날이기도 하다.
세번의 새해를 맞이하려는 것은 더도 덜도 없이 꼭 세 번이라는 삼세번의 의미처럼 세 번까지 진중하게 다짐해 보려는 것이다. 가위바위보를 할 때 한 번에 끝내기보다는 세 번 해서 정하는 삼세판, 세 번 외치는 만세삼창, 국회에서 법안 통과나 부결될 때 의사봉을 세 번 친다. 미사 중 기도문에서 거룩하시다를 세 번 반복하는데 이는 삼위일체 성부 성자 성령을 의미하는 것이다. 3의 의미는 완성, 최고, 최대, 신성, 종합성을 뜻한다고 한다. 한 번 두 번이 아닌 세 번을 반복해서 얻는 힘은 기회와 결론으로 이어지고 강력해진다.
위로의 시간을 보내는 우리들에게 오늘 그리고 내일 있을 새해맞이는 초연한 여유가 함께 하기를 바라본다. 현실에 아랑곳하지 않고 의젓하게 맞이할 수 있기를. 그리하여 새해 일출을 바라보며 다그치기보다는 지금까지 있어 주어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속삭이고 싶다. 만약 새해 첫 날 답지 않게 보내었다해도 또 한번의 새해가 있으니 너무 실망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