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야기
자동차 안 가득 부드러운 현악 4중주의 선율이 흐른다. 실내악단을 마주하고 연주를 듣는 듯 소리가 살갗에 닿아 온몸에 소름이 오른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회색 하늘과 앙상한 겨울나무들의 배경음악으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아직 녹지 않은 눈을 얹고 있는 가지들은 편안한 리듬과 하나 되어 시선을 잡는다.
음악이 흐르는 동안 숨을 쉰 기억이 없다. 일하러 오가던 8차선 헌릉로를 이렇게 아름답게 느끼다니. 새해 초 다녀온 여행에서 돌아와 일상을 찾아 느끼는 안락함인가. 다시 한 해가 시작되고 일을 시작할 수 있다는 안도감인가. 정확하지 않는 행복한 기분은 숨소리와 음악소리가 섞여 하나가 되었다.
이 아름다운 소리는 사춘기가 오기 전 뛰어다니던 어린 나에게 찬 공기와 같이 들려오던 선율이었다. 겨울 아침 하얗게 서리 낀 창문이 열리며 따뜻한 방 안 공기를 깨뜨리는 소리였다. 아침부터 늘어져 있는 자식들의 모습이 마땅치 않아, 아버지는 창문을 열고 전축을 틀었다. 몇 단의 서랍처럼 쌓여 있는 전축에서 흘러나오던 바이올린 선율은 찬 공기처럼 천천히 방 안을 채웠다. 느리고 아름다운 바이올린 곡이 흐르지만 반갑지 않은 냉기가 살갗에 닿으면 돌고 있는 레코드판처럼 어지러웠다. 아버지 취향의 음악이라 여기며 무심히 흘려듣던 곡이다.
전축에서 나오는 음악소리는 너무 컸다. 음악감상을 위해 트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움직이게 하기 위한 소리였으니. 스피커에서 음악이 나오면 소리에 묻혀 떠들어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아무 말하지 않았다. 트럼펫이 울리는 행진곡까지 레코드 판이 다 돌아가는 동안 아버지는 우리의 침묵이 음악보다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아침부터 떠들고 싸우는 네 명의 아이들에게서 잠시 벗어나고 싶었을까.
어린 시절과 이어준 음악이 라디오에서 끝났다. 1월 제철 음악처럼 나를 깨운 곡은 ‘차이콥스키의 안단테 칸타빌레’이다. 이탈리아어로 칸타빌레(cantacile)는 노래하듯이라는 뜻이다. 안단테(Andante)는 음악의 빠르기를 나타내는 말로 ‘천천히 걷는 빠르기’라는 의미이다. 안단테 칸타빌레는 ‘천천히 노래 부르듯이’ 적당히 느리지만 리듬이 있어 노래하듯 흐르는 선율이다.
안단테로 흘러나오는 곡을 들으며 지금, 오늘을 생각한다. 2025년 1월 중순. 기관마다 25년 강사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있다. 물론 1년 강의 계획서도 제출해야 한다. 새로 시작하는 일에 대한 약간의 긴장과 생동감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있다. 이것이 1월의 느낌 아닐까. 그 시작을 위해 우리는 많은 다짐과 계획을 한다. 작년 1월에 그렇게 했듯이. 하지만 그만큼 해 내지 못할 과한 약속과 미래를 그리며 하루를 보낸 후 절망하는 날 또한 많았다.
같은 하루들이 지나가고 있지만 1년이라는 한정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시작하는 지금, 우리 앞에 있는 흰 백지의 날들을 위해 온 마음을 다하고 싶은 1월 어느 날. 긴 호흡을 하며 천천히 걸어가듯 리듬을 느끼는 음악을 다시 만난 것은 큰 기쁨으로 다가왔다. 크게 내쉬는 숨이 한숨이 아니라 긴 호흡이 되게 한다.
겨울 아침을 추억하게 하는 차이코프스키의 안단테 칸타빌레는 세월의 힘으로 내 귀를 감싸는 감미롭고 감성적인 곡이 되어 나타났다. 시작하는 나에게 휴식을 깨고 조용히 힘을 내게 하는 찬 공기처럼, 과하지 않게 전진하도록 이끌어 주는 섬세한 손길로 다가왔다.
새로 마련한 2025년 수첩은 아직 적당한 출발을 하지 못하였다. 지난해를 마음껏 돌아보지 못하고 다시 새해를 시작하고 있다. 새로운 결심을 하기에 어색하고 불편한 마음이다. 안단테 칸타빌레는 그런 나를 걸어가듯이, 적당히 느리게 다독거려준다.
이제 지난해 약속한 체력, 일, 영성, 자기 계발, 관계에서 미진한 것들을 다시 기록해 보려 한다.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기보다 꾸준하게 하루를 이어나가고 싶다. 새로운 날들이 고여있지 않고 안단테로 흘러나가기를 기대해 본다. 그리하여 어느 하루도 고인 물처럼 썩지 않고 조용히 흐르는 맑은 물 같은 날들이 되길. 거기에 노래하듯이 리듬도 타면 더할 나위 없겠지. 2025년에는 몸과 영혼을 안단테 칸타빌레로 박자를 맞춰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