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산등성이를 닮은 머리

오늘 이야기

by 조이 영


겨울 산등성이가 눈에 들어왔다. 멀리 눈이 녹지 않은 산에 나무가 촘촘히 서 있는 능선이 보인다. 희끗희끗한 산등성이 위 앙상한 나무들은 군복을 입고 있던 아들의 짧은 뒷머리를 보는 것 같다. 군 복무 중인 아들 걱정하는 안타까움의 시간이 고스란히 다가온다.


조카가 입대했다. 지난주, 훈련소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민머리로 나타난 조카를 보았다. 추워 보이는 모습에 순간 마음이 아렸다. 아기 때 모습을 어제로 착각할 만큼 생생히 기억하는데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안타까운 마음이 얼굴에 나타났는지 요즘은 핸드폰도 가지고 들어간다고 너스레를 떨며 나의 걱정을 덜어주려 했다.


큰아들이 장교로 군 복무 중이라 군인을 보면 더 마음이 쓰인다. 군복 입고 지나가는 군인을 보면 말이라도 걸고 싶을 정도이다. 아들을 군대에 보내고 나니 세상 사람을 보는 눈이 두 부류로 나눠졌다. 자식을 군대 보낸 부모와 보내지 않은 부모로.


군대를 보내는 엄마의 심정이 처음은 아니다. 몇 년 전 둘째 아들이 대학 2학년 여름방학 시작과 함께 공군으로 입대했었다. 큰아이가 학업으로 입대가 미뤄져 어린 작은아이가 먼저 군대를 가게 되었다. 아들이니 입대는 당연하다고 생각하였다. 군 입대 앞두고 가족여행도 가고 할머니 할아버지, 친척들에게 인사드리고 할 때까지는 아들이 어른이 되어 가는 듯해 훈훈했다. 막상 머리카락을 짧게 밀어 까까머리를 하고 나타나니 올 것이 왔구나는 생각에 마음이 상했다.


입영 당일, 아이를 태우고 진주 훈련소로 가는데 억울하였다. 당장 차를 돌려 아들을 집으로 데려가고 싶은 충동도 들었다. 왜 우리 애가 낯선 곳을 가야 하는지. 국방의 의무는 뭐지. 한번도 생각지 못한 갈등이 올라왔다. 사람들이 아들 둘 엄마라고 이런저런 말을 해도 마음 한 번 흔들린 적 없었는데 그날은 아니었다.


연병장에 모인 아이들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진 찍고 작별인사도 하고 운동장으로 뛰어갔다. 땡볕에 서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부모 세대들이 어렸을 때 학교 운동장에 조회하느라 서 있던 낡은 모습 그대로였다. 행사가 끝나니 줄지어 걸으며 넓은 운동장 가장자리를 돌았다. 계단에 서 있는 부모에게 마지막으로 눈인사를 하고 어디론가 들어갔다. 줄을 서 걸어가는 남자아이들은 똑같은 머리를 하고 있어 아들을 찾기 힘들었다. 한 번이라도 자식을 더 보려는 부모들은 초조했다. 땀 흘리며 걸어가는 아이들도 부모를 찾느라 시선이 흔들렸다. 여기저기에서 아들의 이름을 부르고 손을 흔드느라 그야말로 생이별의 현장이었다.


아직 인사를 못한 아들을 찾느라 우리 가족은 까치발을 하고 두리번거렸다. 그때 뒤에 있던 남자가 갑자기 우리 쪽으로 몸을 가까이하며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귀가 아플 정도였다. 너무 심한 거 아닌가 하는 표정으로 뒤를 돌아다보았다. 그 남자는 아들 이름을 부르며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이미 눈가가 달아올라 빨갛게 되어 있었다. 자신의 군인 시절이 떠올랐던 것일까. 힘든 군 생활을 했으면 나보다 슬픔이 더 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의 애절한 마음을 보게 된 난 참고 있던 눈물이 터졌다. 울면서 지나가는 행렬에서 아들을 찾느라 눈이 바빴다. 다행히 아들이 우리를 향해 먼저 손을 흔들었다. 아이가 보면 마음 아파할까 싶어 얼굴을 반쯤 가리고 손을 마구 흔들었다.


작은아이는 군 생활을 힘들어했다. 직업군인으로 있는 상사와 갈등 때문이었다. 이해되지 않는 일이 명령이 되면 따라야 하는 것이다. 다행히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간다는 이야기처럼 시간은 흘러 복무기간 2년을 잘 마쳤다. 아들은 제대하고 한참 후에 군 생활에서 힘들었던 일을 자세히 이야기했다. 왜 그때 이야기 안 했냐고 다그치는 우리에게 나쁘지만은 않았다고 했다. 사회생활에 필요한 참을성을 배워 온 것 같았다. 감정적인 이유로 윗사람이 엉뚱한 일도 시켜 힘들었지만 참고했다고 한다. 요즘 회사를 다녀도 못할 일을 경험한 것 같다. 그것은 부모도 학교도 가르쳐 줄 수 없는 쓴 약과 같은 경험이다. 심할 경우는 정신적 트라우마로 남기도 하는데 본인이 좋은 경험이었다고 하여 가슴을 쓸어내렸다.

군인이 된 아들의 머리를 닮은 겨을 산등성이

군대에서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을 만나 세상이 얼마나 넓은 지를 알게 해 주었다고 한다. 군대 동기는 동네 친구나 대학에서 만날 수 없는 지역이나 직업의 사람들이라고. 그들은 지금도 주기적으로 만나 세상을 알아 가는 반가운 친구란다.


추억도 많았다. 공군부대로 부모가 면회를 가면 외출이 가능하여 시간이 되면 부대로 면회를 갔다. 지금은 핸드폰도 사용하고 많이 자유롭지만 그 시절은 그렇지 못하였다. 아들은 군부대에서 외출을 하면 먼저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었다. 겨울 산등성이 같은 머리를 한 아들이 빨대로 차가운 커피를 마시고 흐뭇해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자유롭게 있을 수 있는 외출 시간 동안 우리 부부도 낯선 원주 거리를 구경하며 아들과 시간을 보냈다.


큰아들은 지금 군 복무 중이다. 1년이 지나 아직 2년이라는 긴 시간이 남았다. 맏이가 입대할 때는 막 결혼한 후라 며늘아기와 같이 괴산훈련소를 갔었다. 아이들이 일찍 출발하여 훈련소 부근 올갱이국 맛집에 가고 싶다고 했다. 집밥처럼 차려진 구수하고 뜨끈한 올갱이국을 먹고 보낼 수 있다는 게 작은 위로였다.


아들의 입소행사가 끝난 후 낯선 곳에 두고 훈련소를 빠져나오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진주 훈련소에서 둘째 아들을 두고 나올 때처럼. 깊은 아쉬움은 며늘아기가 있어 조금 덜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자동차 안에서 며늘아기와 나눈 이야기는 큰 위로가 되었다. 다행히 군 복무를 가까운 데서 하게 되어 감사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작년 한 해 건강한 군 생활을 보낸 것처럼 남은 두 해도 아무 탈 없는 좋은 시간이 되리라 믿는다.


나는 여동생에게 조카가 군 생활 하는 동안 추억을 많이 가지라고 이야기했다. 조카에게도 형들이 잘했으니 너도 잘할 수 있을 거라 응원했다. 새로운 환경은 다른 모습의 부모와 자녀가 되게 한다. 그 낯선 시간은 훗날 웃으며 기억할 수 있는 추억을 만드는 시간이 되도록 귀하게 보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안전하게 복귀하는 그날까지 엄마의 기도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거칠고 쓴 날이겠지만 누구도 줄 수 없는 좋은 약이 되는 날이길 매일 기도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