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
핀란드 여행 6일 차 25/01/08
어둠이 깔린 아침, 핸드폰에서 알리는 시간에 맞추어 몸을 움직였다. 해가 없는 아침이 익숙하다. 오늘은 로바니에미 공항으로 가 차를 반납하고 헬싱키행 비행기를 타야 한다. 우선 여행 중에 남은 식자재들을 정리했다. 냉장고에 있는 남은 과일과 치즈, 요거트, 빵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여행에 필요치 않은 것들을 정리하였다. 오늘로 북극지역 라플란드여행을 마무리하기에 그동안 무장하고 있던 방한복도 고이 접어 캐리어에 넣었다. 고마웠던 두꺼운 옷들과 기념품의 위치도 알뜰하게 배정하였다. 라플란드 여행 시간이 담겨있는 듯 묵직해진 캐리어를 끌고 새로운 여행지를 향했다.
숙소에서 나와 캐리어를 끌고 차가 있는 노상 주차장으로 걸었다. 걸어 다니는 사람 하나 없는 한적한 길에 노란 가로등 불빛만 우리를 지켜보았다. 눈이 쌓여 다져진 길은 금가루를 뿌려 놓은 듯 반짝거렸다. 내린 눈은 낮은 기온으로 그대로 얼어 눈 결정들이 빛나는 것이다. 주저앉아 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어 고개 숙어 상하지 않은 빛을 보며 걸었다. 그 잔잔히 반짝이는 눈빛 배웅을 절대 잊지 않으려 집중하며. 트렁크에 짐을 실은 후 차 번호판 주변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혹한의 라플란드에서 우리를 보호해 준 렌터카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으리라.
로바니에미 공항 도착 후 렌터카 기지에 차를 주차하였다. 전보다 기온이 많이 올라갔다는 것을 알았다. 도착 첫날 공항의 살벌한 모습을 기억했다. 기온은 영하 18도. 첫날 영하 27도에 얼어 서 있었던 차와 안내판 모습보다 훨씬 가볍고 온전하였다.
헬싱키행 비행기는 핀에어 airbus a321이었다. 1시간 14분의 짧은 비행이다. 수속을 마치고 대기하고 있는데 공항 창밖으로 눈바람이 세차게 휘몰아쳤다. 사방으로 날리는 눈가루를 보며 결항이 되지 않을지 근심이 생겼다. 핀란드 비행에서 바람은 일상일까. 안내방송도 나오지 않았다. 공항 벽에 걸린 세계시계와 지도를 보며 ARCTIC CILCLE여행을 실감하며 기다렸다. 헬싱키행 비행기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정시에 탑승 수속을 하였다.
작은 비행기였지만 많이 흔들리지 않고 헬싱키에 도착하였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이동하며 보이는 전광판 발레공연이 이색적이었다. 클래식 음악과 화면, 은빛이 나는 에스컬레이터가 콜라보를 이루어 예술과 문화에 대한 핀란드인들의 애정을 보여주었다. 주광색의 간접조명이 비치는 공항화장실은 세면대와 거울만 보였다. 간결한 디자인의 화장실모습에 북유럽여행이 실감 났다. 손을 씻기 위해 몸을 숙였을 때 거울 뒤편으로 비누와 핸드타월이 숨어있었다. 1회용 휴지가 아닌 천으로 된 핸드 타월은 환경을 생각하는 핀란드인의 모습이었다. 젓은 손으로 타월을 당겨 손을 닦고 나니 얼마 후 말려 올라갔다. 다시 흐트러짐 하나 없는 화장실 세면대로 돌아온 모습은 마음을 가볍게 했다.
공항을 나와 시내로 가는 기차를 탔다. 티켓은 HSL 앱을 다운로드하여 구매했다. 티켓 구간은 A.B.C.D ZONE으로 나눠져 있다. 공항 있는 곳은 C ZONE이고 시내는 A ZONE이라 ABC구역을 구입하였다. 편도 by single ticket으로. 기차 안은 현지인들과 공항이용인들로 혼잡하였다. 숙소가 있는 중앙역을 향해 갔다. 지난 며칠 동안 흰 눈으로 꽁꽁 덮여있는 라플란드 침엽수에 익숙해서일까. 눈이 녹아있는 침엽수들이 낯설었다. 또 다른 핀란드의 옆모습을 보는 듯하여 사람들과 창밖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중앙역에 내려 묵직한 캐리어를 끌고 밀고 걸었다. 숙소까지 5분 정도 걸어가는 길은 눈이 녹아 질척거렸다. 도로 위에 작고 검은 자갈들이 눈과 뒤섞여 있었다. 미끄러져 넘어지지 않게 하기위해 뿌려 놓은 것이다. 자칫 지저분해 보이는 모래들을 뿌려 놓은 것이 신선했다. 염화칼슘을 삽으로 퍼 차에서 뿌리는 제설작업과 대조적이었다. 다소 지저분해 보이고 걷는데 불편하지만 환경을 자연친화적 방법으로 해결하는 모습에는 심미적 아름다움이 가득했다.
호텔 숙소는 트렘 정류장이 가까운 Scandic호텔이다. 비즈니스호텔로 중앙역과 가까워 인기가 많은 곳이다. 짐을 풀고 간단한 식사를 하기 위해 시내에 있는 맥도널드를 향했다. 한국 맥도널드와 같은 분위기에 편안함을 느낄 틈도 없이 높은 물가에 놀랐다. 햄버거 세트 두 개와 단품하나를 시켰는데 45000원 정도 지불하였다. 핀란드의 물가는 여행일정 준비하는 과정에서 알았지만 햄버거를 먹으면서 확실히 체감하였다.
식사 후 시내에 있는 Allas Sea Pool을 갔다. 시내 사우나는 몇 군데 더 있지만 가까운 곳으로 갔다. 도심 속 바다 보며 사우나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온수와 해수풀이 있어 사우나 후 바로 발트해 바닷물을 걸러 만들어 놓은 해수풀로 들어갈 수 있다. 따로 옷을 제공하지 않아 호텔에서 나올 때 수영복을 가지고 왔다. 카운터에서 수영복과 수건을 대여하거나 구입할 수 있기도 하다. 하지만 대여료가 당연히 비싸기에 수건까지 준비하였다. 카운터에서 결제 후 손목에 밴드를 붙여 주었다. 탈의실은 무척 혼잡하였다. 기다렸다 환복을 하였는데 나중에 다른 곳 둘러보다 넓은 탈의실이 더 있는 것을 보고 허탈하게 웃었다.
사우나실은 남녀공용이 있고 남성과 여성용이 따로 있기도 하다. 방마다 뷰가 달라 이곳저곳 다녔고 편백나무 향을 즐기며 힐링시간을 가졌다. 바가지로 화덕에 물을 뿌려 온몸으로 흡수되는 온기는 굳어 있는 근심을 녹아 흐르게 했다. 사우나 부스 사이를 이동할 때 찬바람이 나는 야외를 걸어가야 한다. 미끄러지지 말라고 깔아 놓은 고무판 위를 지나야 한다. 시린 맨발로 힘들게 걸어다녔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알싸한 느낌이 강하게 남아 설렌다. 풍경이 아름다운 바닷가 도시로 ‘발트해의 딸’이라 불리는 헬싱키를 즐기는 최고의 시간이었다.
풀 주변에는 대관람차인 스카이휠 헬싱키가 보였다. 특이한 것은 대관람차 중 한 칸을 사우나 캐빈으로 사용하고 있다. 밖에서 보아도 나무로 만들어져 있어 어느 칸이 사우나로 이용되는지 알 수 있다. 하늘 위에서 헬싱키의 뷰를 보며 사우나를 즐기는 추억을 남기기 위해 즐기는 곳이다. 핀란드인들의 사우나 사랑을 볼 수 있다.
사우나를 한 후 시내에 있는 ittala와 Marimekko를 찾았다. 이탈라의 유리컵 고블렛잔을 갖고 싶었고 양귀비 디자인 샵 마리메코에서는 주방용품을 구입하고 싶었다. 대부분 북유럽 감성이 그렇듯이 핀란드인은 편안하고 아름다운 집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 결과 핀란드의 디자인은 세계적이다. 건축가 알바르 알토, 유리제품기업 이딸라, 섬유대기업 마리메꼬등이 유명하다.
핀란드 나무로 만든 Aarikka 인형도 핀란드 관광에서 빠지지 않는 기념품이다. 아리까는 나무 수공예브랜드로 핀란드 자작나무를 사용하여 수작업하는 기업이다. 붉은색이 많이 들어가는 데 붉은색의 의미는 비트로 만든 핀란드 전통 크리스마스 샐러드 Rosoli(로솔리) 색을 의미한다. 때로는 자작나무 외 단풍나무도 사용한다. 윤리적으로 제품 만드려고 노력하고 사회적 약자들이 물건을 만들기도 한다. 물건가격이 높지만 가치 판단으로 합리적으로 구매하는 가치소비를 원하는 사람들이 환영하는 제품들이었다. 매장에서 가격을 보니 지난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준 아리까 엘프가 더 귀했다.
저녁식사로 boiling crab을 먹었다. 레스토랑 HOLY CRAB에서 만난 해물요리였다. 테이블 위를 비닐로 넓게 깔고 준비작업을 하여 의아했었다. 소스를 선택할 수 있어 마늘향이 많은 케이쥰 소스를 선택하였다. 영어로 먹방소스라고 적혀있는 고추장베이스 소스도 있었다. 소스이름만으로 K-culture의 위상을 보는 듯 했다. 한참 후 비닐봉지 가득 해산물 볶음을 가져와 식탁 위에 쏟아 놓았다. 대개. 랍스터. 새우 각종가재류 와 해산물이 식탁위에 펼쳐졌다. 비닐장갑을 끼고 손으로 먹으니 캠프 먹방을 하는 느낌이었다. 핀란드 수도 헬싱키에서 저녁을 맞이하는 것에 감사하며 와인과 함께 건배로 하루를 마무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