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
핀란드 수도 헬싱키에서 아침이다. 조식을 먹기 위해 1층 라운지로 갔다. 동양인이 보이지 않아 그런지 현지인이 된 듯하다. 동양인이면서 그들이 없는 곳에 홀로 있으려는 것은 낯선 곳을 여행하고 싶은 여행자의 본성일까. 혼자 또는 일행과 식사하는 그들의 모습은 출근을 준비하는 사람들 같다. 유리창 밖으로 출근을 하기 위해 트램을 향해 한 방향으로 걸어가는 핀란드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트램이 가까운 비즈니스호텔의 생기 있는 아침 장면이다.
에스토니아 탈린으로 당일 여행을 계획했다. 배로 2시간 이동하면 갈 수 있는 탈린 여행은 북유럽과 다른 분위기의 발트군을 볼 수 있어 여행객이 많이 찾은 일정이다. 탈린은 발트 3국 중 하나인 에스토니아의 수도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중세 시대 구시가지는 북유럽 여행 중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이다.
교통편으로 배를 이용하기로 했다. 호텔 앞에서 트램 5번을 타고 viking line 선박장으로 갔다. 대표적인 페리 업체는 3가지가 있다. 바이킹 라인, 실야 라인, 에게로 라인이다. 숙소에서 출발하기 전에 찾아가기 편한 바이킹 라인 선박 티켓을 예약하여 준비하였다.
선박장에 도착해 셀프 체크인을 했다. 1층에서 QR코드가 있는 종이 티켓을 출력하여 탑승 입구가 있는 2층으로 올라갔다. 지하철 탑승하는 것처럼 QR을 찍고 통과한다. 아들 부부가 지나가고 내 차례가 되어 들어가는데 에러가 생겼다. 한 사람 지나가고 시간 차를 두고 찍어야 하는데 서둘렀나 보다. 코너에서 대기하고 있던 여직원이 손가락으로 나를 부르는 게 아닌가. 저 거만한 태도는 뭐지. 당황스러웠다. 하기야 중년의 여자가 서두르는 행동이 성가시기는 했을 것이다. 동양인에 대한 편견이 있는 사람일까 생각하며 그녀에게 갔다. 서툰 영어로 티켓을 보여주고 설명을 하였는데 들으려 하지도 않는 눈치다. 며느리가 와서 능숙하게 설명을 하고야 보내주었다. 핀란드 여행 기억 중 유일하게 불쾌했던 일이다.
승선을 기다리고 있는 승객들의 모습은 다양했다. 우리와 같은 관광객도 있지만 끄는 가방을 들고 있는 노인들도 있었다. 핀란드에 비해 물가가 낮은 탈린에서 쇼핑을 하기 위한 모습이다. 핀란드 생활의 단면을 볼 수 있었다. 현지인과 함께하는 이방인의 느낌, 생경한 그 느낌은 여행의 맛을 돋우는 순간이다.
체크인 후 유람선에 탑승하였다. 탑승이 시작되자 사람들로 북적였다. 모두들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큰 배를 타 본 경험이 없어 배 안의 다양한 구조가 놀라웠다. 출입구에 선상 면세점이 있고 게임하는 곳, 공연하는 곳, 카페, 식당 등 다양한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게 준비되어 있었다. 계단을 이용해 여러 층을 이동하는 모습을 보니 영화 타이타닉이 생각났다. 탑승 순서라 늦어 앉을 곳을 찾은 데 시간이 걸렸다. 조용하고 편안한 자리는 배를 잘 아는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음악 소리가 나지만 편안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커피를 사기 위해 음료 파는 곳으로 갔다. 따뜻한 라테를 주문하는데 판매하시는 고운 주름이 가득한 중년 부인이 여기는 아메리칸식 커피를 팔고 있으니 이탈리안 식을 원하면 한 층위로 가서 즐기라고 한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의 취향까지 존중하다니. 커피를 즐기는 나에게 큰 친절이었다. 나는 한 층 위에 있는 이탈리안 식커피를 선택했다. 아메리칸스타일 커피는 필터에 내려 연하게 마시는 커피이고 이탈리안 식 커피는 에스프레소 기계로 추출해서 즐기는 커피다. 아름다운 그녀 덕분에 물보라를 보며 향 좋은 커피를 즐길 수 있었다. 어둠이 길어서일까. 핀란드에는 에너지 음료가 대중화되어 있다. 에너지 음료를 다양한 메뉴로 만들어 여기저기에서 판매하고 있었다. 태양의 에너지를 대신할 것이 필요한 듯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
객실 기둥 광고에 ‘The best of winter’라는 문구가 있었다. 겨울에 가장 겨울다운 곳을 즐기는 이 시간이 최고의 겨울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인식하였다. 선실 카페 테이블 옆에 우리 집 거실에도 자라고 있는 다육식물 부용이 있었다. 오랜 시간 성장한 모습이 반가웠다.
공연하는 곳에서는 사람들이 함께 즐기는 소리가 들렸다. 무대에 나와 같이 춤을 추는 사람의 연령대가 다양해서일까. 각자의 모습으로 충분히 즐기고 있는 듯했다. 마른 체구의 할머니가 리듬을 타는 모습이 가장 아름다워 한참을 보았지켜보았다.
탈린에 도착하여 선착장을 나와 길을 나서니 유네스코 등재된 중세 시대 구시가지가 유명한 만큼 길거리 음식 부스에서 중세음악이 나오고 있었다. 새로운 세상을 찾아온 듯 들뜨게 하였다. 목적지를 위해서 우버 택시를 호출하여 전망대로 바로 출발했다. 톰페아 언덕에 위치한 파트쿨리 전망대와 코투오차 전망대는 구시가지의 전경을 볼 수 있는 필수 코스이다. 전망대를 올라가는 길에 157개의 계단이 있어 쉽지 않았지만 오래된 돌길을 따라 오랜 세월의 잔재를 감상하는 기회가 되었다. 전망대는 발걸음이 많을수록 더 멋질 거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전망대에서 보는 탈린 시내는 엽서에 나오는 그림 같았다. 가장자리 돌담에 Tallin이라는 글씨와 함께 인증샷 장소가 나온다. 전경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라 사진을 찍고 있는데 갈매기 걸어 다니며 날아가지 않았다. 친근하게 우리 곁은 맴도는 갈매기와 구시가지 전경을 함께 즐기는 기분은 색다른 기쁨이었다. 전망대 꼭대기에 작은 기념품 가게가 있다. 탈린의 풍경을 그려놓은 아기자기한 소품들은 어반 스케치를 배우고 싶다는 욕구를 일으켰다. 그림 같은 광경을 직접 표현할 수 있다면 ……. 속으로 되뇌며 골목길을 걸었다.
세인트 카타리나 교회 옆에 위치한 좁은 골목길은 오래된 돌벽과 골목 양옆에 중세 시대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건물들이 있다. 카타리나 거리라고 불리는 유명한 거리로 각종 수공예품을 만들어 팔고 있는 상점이 있다. 엠버 반지와 목걸이를 판매하는 가게가 눈에 띄었다. 엠버는 호박 보석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송진이 굳어서 생긴 유기질 보석이다. 노란색. 주황, 갈색을 띠고 있고 투명한 것도 있고 불투명한 것도 있다. 엠버 주요 산지가 발트해이라는 말이 실감 날 정도로 엠버 장식물이 많았다. 가게 중 한 곳에서 체코 여행에서 잃어버린 호박 목걸이와 같은 모양의 엠버 펜던트를 발견하였다. 잃어버린 퍼즐을 찾은 듯 반가웠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 맞춰지는 신비함을 중세시대 거리가 선사해 주었다.
탈린에서 점심 식사는 팬케이크로 정했다. 가게 이름은 Pub Kompressor로 입구에는 PANNKOOGIPUBI라고 적혀있다. 러시아식 팬케이크 블리니 가게이다. 메뉴판을 펼치니 에스토니아어와 영어 러시아어 세 가지로 적혀있었다. 탈린 언어의 다양성을 실감하였다. 어두운 조명에 간결한 인테리어로 둥근 테이블이 많이 있어 pub의 느낌이 강하였다. 세 명이서 서로 다른 메뉴를 골라 골고루 맛보았다. 역시 아이들이 선택한 식당은 실패가 없다.
따뜻하게 식사를 마치고 알렉산더 넵스키 대성당을 향했다. 올드타운의 높은 곳에 위치한 성당이다. 러시아 정교회 양식으로 지어져 외형만으로도 가톨릭 성당과 다른 점을 볼 수 있다. 광장을 중심으로 성당 맞은편에 분홍색 건물의 국회의사당도 같이 있었다.
중세 시대의 사람들이 거닐었을 길을 걸으며 닿은 곳은 올드타운 라에코다 시청 광장이었다. 1월이지만 아직 성탄 시기가 끝나지 않아서 대형 크리스마스트리와 다양한 트리 장식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트리들 사이를 다니며 보이는 수많은 조명은 따뜻한 기운을 보내주고 있었다. 아이들 사진을 찍어 주며 카메라에 비치는 아이들에게 성탄의 축복을 하였다.
해가 지고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거리를 따라 키에크 인 데 쾨크 시립 박물관이 있는 비루 게이트를 향해 걸었다. 14세기에 건설된 탈린의 방어벽의 일부로 두 개의 같은 모양의 탑이 길 사이로 세워져 있다. 게이트 부근에 꽃 가게가 몰려 있어 새로운 풍경의 꽃 시장을 구경하였다. 편백나무로 만든 리스와 트리 장식 화분이 특색이 있었고 탈린만의 방법으로 포장한 생화들이 돋보였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꽃 시장 풍경이 많아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진을 찍었다.
붐비는 거리에서 우버 택시를 타고 선착장에 도착하였다. 승선 후 이미 어둑해진 배경을 뒤로하고 면세점을 향했다. 탈린을 향할 때 배를 즐기느라 하지 못한 쇼핑을 하였다. 페리에서 내려 트램을 기다리는데 아침에 본 핀란드 아주머니도 줄을 섰다. 아침에 가지고 있던 빈 캐리어에 물건이 가득 차 있었다. 그녀뿐 아니라 다른 분들도 묵직한 짐들을 들고 있었다. 트럼 5번을 타고 내려 다시 2번 7번 한 번 더 갈아탄 후 호텔에 도착하였다.
저녁식사는 연어 수프를 먹을 계획이었다. 검색 후 호텔 근처 쇼핑센터 5층에 있는 식당에서 연어 수프와 도미구이를 주문하였다. 우리가 앉은 식당 옆에 seoul 88이라는 한식집이 있었다. 한식을 먹는 핀라드인과 연어수프를 먹는 한국인이 서로 마주하고 있었다. 연어 수프 맛은 나쁘지 않았지만 며느리는 생각하던 연어수프가 아니라고 하였다. 핀란드에서 먹어야 하는 음식 중 하나여서 더 기대감이 컸나 보다. 깔끔하고 잘 구워진 도미구이의 맛이 실망감을 덮어주어 다행이었다. 탈린을 다녀온 후 다시 만난 헬싱키는 안전한 안식처인 듯 편안한 저녁을 선사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