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야기
담벼락에 무심히 서 있던 덩굴에서 빨간 전구를 켜듯 장미꽃이 하나씩 피고 있다. 꽃송이가 크지 않아 아직 향이 나지 않지만 동네를 진하게 꾸며주는 장미의 계절, 오월이 익어가고 있다. 만개하면 아기 주먹만 한 꽃송이들이 주렁주렁 달려 가지가 고개를 숙이기도 한다. 봄꽃들이 차례로 피고 떠난 빈자리를 향해 마지막 피날레 공연을 하려는 듯 아낌없이 피어난다.
덩굴장미가 절정에 이르기 전에 장미향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있다. 집 부근 산성 올라가는 길 입구이다. 4월 말부터 피기 시작한 찔레꽃에서 나는 향은 바쁜 일정 중에도 산길을 다녀가게 한다. 봄 산의 싱그러운 향만으로도 힘이 나는데 정겨운 장미향까지 맡는 날이면 살아 있다는 기쁨을 찾게 된다.
찔레꽃은 꽃을 보기 전에 향이 먼저 반긴다. 늦봄을 닮은 내음이다. 향기를 찾아 두리번거리면 초록 잎들 사이에 찔레꽃이 피어 있다. 연약한 듯 성숙한 듯한 향기를 날리며 하얗게 피어 나뭇잎 끝에서 기다리고 있다. 찔레꽃 학명은 장미목 장미과 장미속의 찔레꽃 종이다. 장미와 모습은 다르지만 익숙한 장미향이 나는 이유이다.
항상 향을 맡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산책길이 한가한 아침 일찍이나 오후 늦게 맡을 수 있었다. 오직 찔레꽃 향을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섰다 향기가 나지 않아 실망한 경우가 여러 날 된다. 들장미의 자유로움일까. 일하느라 낮에는 향을 풍길 틈이 없는 것일까. 해가 있을 때 하는 광합성은 사람이 하는 일처럼 고단한 일인가.
찔레꽃 꽃말은 고독, 신중한 사랑,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외로움이 가득하다. 나뭇가지와 줄기에 뾰족한 가시를 가지고 있고 5장의 홑겹의 흰색 꽃잎은 야생화의 모습이다. 찔레꽃의 이야기와 노랫말은 미화되고도 남을 정도의 연약함과 슬픔이 묻어 있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꽃을 오래 감상하기 위해 꽃잎 수뿐만 아니라 크기와 색을 개량한다. 화원이나 꽃 시장에서 보는 장미들은 수술 암술이 수정하여 씨앗을 만들어 번식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줄기로 번식을 하고 있다. 야생성이 사라지고 접목을 거쳐 개량되어 나온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찔레꽃은 장미들의 조상이라 할 수 있다.
오랜 시간 개량된 품종들 중에는 수술 암술이 있어도 수정을 할 수 없는 종이 있기도 하다. 어떤 장미는 꽃잎이 너무 많아 활짝 피기도 전에 시들어 수정 시기를 놓치는 것도 있다. 꽃 입장에서 안타까운 일이다.
대부분의 야생화가 그렇듯 찔레꽃은 홑잎으로 되어 있고 수술과 암술이 자유롭게 수정을 한다. 흰색 꽃잎은 지나가는 곤충이나 나비에게 수술 암술이 잘 보이게 활짝 펼쳐져 있다. 꽃이 지고 나면 어느 꽃자리 하나 빠지지 않고 자방이 부풀어 올라 성실하게 팥알만 한 열매를 맺는다. 아무도 모르게 피고 지고 떠날 것 같은 연약한 꽃잎들은 작고 빨간 열매로 과하지 않게 세상에 나온 흔적을 보여준다. 내가 찔레꽃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동네 담벼락에서 볼 수 있는 덩굴장미는 개량종 장미와 야생화 찔레꽃의 모습을 골고루 가지고 있다. 자연스러운 겹꽃으로 활짝 피면 수술과 암술이 보이고 자연스럽게 수정할 수 있다. 숲속 찔레꽃의 짧은 꽃 잔치가 끝나가는 요즘에 시작하는 덩굴장미의 개화가 고맙기만 한다.
오늘 산책길에는 이연실 노래 ‘찔레꽃’을 들었다.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가만히 따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먹었다오.’ 어린 소년이 연상되었다. 찔레 꽃잎 하나 따서 입에 넣어 보았다. 막 떠나가려는 찔레꽃을 잘 배웅하고 싶었다. 꽃향기를 마음에 담을 수 있을 거 같았다. 구름을 먹는 듯 미지근한 향이 났다.
찔레꽃이 피고 덩굴장미꽃이 피는 오월, 나도 찔레꽃 같고 싶다. 스스로 드러내지 않아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조용히 자신에게 충실하여 나만의 작은 열매를 맺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오늘도 산길을 오르며 곧 떠나는 찔레꽃을 저만치 따라 나가서 작별하고 오리라. 조금씩 부풀어 오르고 있는 빨간 열매를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