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월,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하여

오늘이야기

by 조이 영


미사를 마치고 성모상이 있는 성당 마당으로 나왔다. 낙엽 냄새가 섞인 차가운 공기가 신선하게 가슴 깊이 들어왔다. 몸 여기저기에 붙어 있던 무거운 짐이 물에 닿은 솜사탕처럼 사라고 있다. 아무리 흔들어도 떨어지지 않던 짙은 어두움은 미사 중 흘린 눈물 한 줄기로 녹아내렸다. '이순'이 가까워지는 나이에도 살아가는게 서툰 나를 자책하며 구겨져 있던 마음이 맑은 가을 하늘 같다.


가톨릭교회에서 11월 2일은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이다. 위령의 날을 시작으로 11월은 세상을 떠난 이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달이다. 지상의 신자, 천국의 성인들, 연옥의 영혼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결합되어 기도와 희생, 선행으로 서로 돕는 교리인 ‘모든 성인의 통공’과 천국으로 들지 못한 영혼이 하느님과의 만남과 정화의 과정을 거치는 ‘연옥 교리’를 바탕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위령의 날 하루 전 11월 1일은 거룩한 영원을 위해 기도하는 ‘모든 성인의 날’이다. 가톨릭 신자들은 천상, 연옥, 지상을 하나로 연결하여 기도한다. 모든 성인의 날 전날 밤 10월 31일에 지내는 핼러윈 데이의 의미도 죽은 이들을 위해 기억하고 기도하는 그리스도교 문화와 융합해 발전하였다.


위령 성월에 드리는 기도문은 시편 130장의 순례의 노래이다. “깊은 구렁 속에서 주님, 당신께 부르짖나이다. 주님, 제 소리를 들어 주소서. 애원하는 제 소리에 당신 귀를 기울이소서”로 시작된다. 믿음의 간절한 호소와 하느님 자비를 구하는 구절이다. 이어지는 기도문에는 하느님께 죽은 이들의 영혼을 위해 용서와 영원한 안식을 간구하고 있다.


위령성월 기도문은 20대 후반 갈등의 회오리 속에 있던 나를 지켜 주던 기도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에 사방이 막혀 있는 듯 숨쉬기 힘들었다. 아침이 오는 것이 두려웠다. 깨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잠들었다. 후에 알았다. 아침을 두려워하는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미사 중 주보에서 본 기도문은 나의 외침이었다. 가슴이 막혀 입 밖으로 새어 나오지 못한 숨소리 같았다. 눈물 콧물을 흘리며 미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십자가와 성모상을 사서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기도문을 고이 접어 가슴에 품고 다녔다. 사람과 일에서 받은 상처로 만신창이가 되어 차가워지는 심장을 데워주었다. 그날이 11월이었으리라.

가톨릭 교리안에서 연옥에서 정화는 죄를 마주하는 고통과 정화에서 오는 기쁨이 함께하는 것이다. 연옥에 있는 영혼은 지상의 신자들의 기도와 희생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죄를 살피고 회개하여 순수만 남아 정화된 영혼으로 천국에 이를 수 있다.


지상에 있는 우리들은 돌아가신 분을 위한 기도를 통해 생전에 마저 못한 사랑을 나누고 그들의 죽음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 불편함이든 억울함이든 부담감이든 세상 어떤 어둠도 죽음보다 무거울 수 없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서 세상의 무게는 힘을 잃어간다.


죽은 이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위령의 날은 살아 있는 우리에게 희망의 날이 되고 새로이 시작하는 출발점이 된다. 헝클어진 마음의 젊은이가 빈 방에 십자가와 성모상을 모신 첫날이 되었던 것처럼. 나무들이 겨울을 위해 따뜻했던 잎을 떠나보내는 11월. 싸늘한 날씨에 총총걸음을 걸으며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을 기억하고 싶다.


11월에는 떠나는 잎이 챙겨준 영양분으로 혹한을 견디는 겨울나무처럼 떠난 영혼들이 우리에게 남긴 흔적을 기억하며 세상을 향해 다시 한 발 가볍게 걸음을 내디딜 수 있기를 기도한다. 사방이 꽉 막혀 있어 숨쉬기 힘들어 할 때 하늘은 뚫려 있음을 알게 해 준 위령 성월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을 기억하여 작은 봄꽃다지가 되어 새로운 시작을 해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