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야기
복숭아 한입 베어 물고 눈을 감는다. 과즙과 함께 복숭아 향이 입 안 가득 퍼진다. 복숭아에 빛이 얼마나 들어있는지 맛으로 짐작해 본다. 이번 복숭아는 경동시장에서 온 햇사레 복숭아다. 결혼 한 아들이 여름 기억이 떠올랐는지 복숭아 찾아 시장을 다녀왔단다. 맛이 좋아 더 샀다며 여름 햇살 가득 담긴 상자를 전해 주었다.
여름이 되면 보약 먹듯이 챙겨 먹으려는 것이 복숭아이다. 탕수육을 소스에 찍어 먹느냐 부어 먹느냐며 기호 구별을 하듯 복숭아도 ‘말랑이’를 좋아하는지 ‘딱딱이’를 좋아하는지 구별한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복숭아면 다 좋다. 복숭아 농사짓던 문인의 글에 두 계절 넘게 복숭아 먹고 겨울 기침감기가 줄었다는 이야기를 읽은 후 더 자주 먹는다.
2000년 초, 시설 재배가 발전되면서 제철을 잊은 과일이 비싼 가격에 시장에 나오기 시작했다. 제철에 먹는 것이 익숙한 세대로서 비닐하우스에서 자란 그 과일들이 불편했다. 아이들이 한 겨울에 슈퍼에 진열되어 있는 딸기나 수박이 먹고 싶다 하면 기다리자고 했다. 빠듯한 살림에 절약도 하고 과일의 제철을 알려주고 싶었다. 딸기 제철이 겨울일 정도로 세월이 흘렀지만 복숭아는 변함없이 제철을 지키고 있다. 저장이 어려운 복숭아는 제철이 아니면 먹을 수 없는 과일이기에.
아파트 정문 앞에 과일 맛집이라 불렸던 유명한 트럭이 있었다. 과일 팔아 아파트 두 채를 샀다는 소문이 날 정도로 트럭 주변에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맛있는 대신 가격이 비싸 평상시엔 외면하다 복숭아 철이 되면 꼭 들렀다. 삼겹살 1인분에 4000원하던 시절, 2만 원이 훌쩍 넘는 말랑이 복숭아 한 상자 사는 날은 목에 힘이 들어갔다. 그걸 들고 걸으면 먹기 전에 향으로 맛을 알 수 있었다.
복숭아 하나를 잘 씻고 껍질 벗겨 통째로 아이들에게 주었다. 아이들은 자신의 손보다 더 큰 복숭아를 입에 가득 담는다. 접시 위로 과즙이 뚝뚝 떨어졌다. 머리를 맞대고 키득거리며 먹고 있는 두 아들의 모습은 분홍빛을 내는 복숭아 같았다.
과일 특유의 쌉쌀함이 없어서인지 맛없는 복숭아는 매력 없다. 그러기에 더 맛있는 복숭아를 선택하려 했다. 흠 있는 과일을 먹이고 제철이 아닌 비싼 과일은 사주지 않는 미안한 마음을 복숭아로 채워주고 싶었을까. 매미 소리가 커져갈 무렵 탐스럽고 달콤한 복숭아를 아이들에게 통째로 먹이는 것은 연례행사였고 의식이기도 했다.
복숭아에 대한 첫 애착은 시어머니의 복숭아 통조림인지 모르겠다. 시어머니는 추석을 지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자식들에게 직접 만든 복숭아 통조림을 주셨다. 1.5리터 유리 쥬스 병에 설탕시럽과 복숭아 조각이 가득 담겨 있었다. 깡통 통조림만큼 달고 찰진 맛은 아니지만 늦가을에서 겨울까지 복숭아 향을 즐기며 아껴 먹는 후식이었다.
여름이 시작되는 6월에는 털이 없고 새콤달콤한 천도를 먼저 먹는다. 6월이 지나면 먹을 수 없기에 꼭 맛을 본다. 7월에는 털복숭아 중 흰빛이 나는 백도를 8월에는 속살이 노란 황도를 즐긴다. 7월에 황도가 나오기도 하지만 더 뜨거운 햇빛을 받아야 맛이 좋기에 8월이 될 때까지 기다린다. 달마다 천도, 백도, 황도 순서대로 여름이 주는 선물을 먹는다.
아들이 준 햇사레 복숭아는 감곡과 장호원의 복숭아 연합 브랜드에서 나온 것이다. 충청지방에서 많이 재배되는 복숭아는 원주, 횡성, 부천에서도 재배된다. 여름에 복숭아 산지 부근을 지나게 되면 현지 복숭아가 궁금해 그곳 시장에 간다. 농장에서 상품가치가 떨어진 복숭아를 쌓아 놓고 팔기 때문이다. 조그만 자극에도 멍이 생기는 복숭아의 특성 때문에 흠 있는 복숭아가 많다. 국도 부근에 복숭아 판매 좌판도 있다. 농장에서 직접 판매하는 곳이라 저렴한 곳도 있지만 의외로 비싼 곳도 있다. 작년엔 횡성 시장에서 그전 해는 감곡성당 부근 좌판에서 못난이 복숭아를 가득 담아 왔다.
복숭아를 사면 냉장고에 넣지 않는다. 부엌 잘 보이는 곳에 박스를 올려놓고 곶감 빼어 먹듯 하나씩 골라 먹는다. 잘 익은 것 먼저 먹어야 하기에 매일 남은 복숭아 과육 상태를 확인한다. 오래 보관하기 위해 하나씩 포장해 냉장 보관할 수 있지만 찬 기운이 들어가면 단맛이 떨어진다. 먹다가 남은 과육이 있으면 할 수 없이 냉장고에 넣지만 다시 먹을 때는 실온에 두어 찬기가 사라질 때 먹어야 단맛이 돌아온다.
복숭아는 한여름이 제철이라 뜨거운 날씨에 수확을 해야 한다. 박스에 나란히 줄 서있는 탐스러운 복숭아에는 농부의 수고와 매서운 환경 속에서 여문 자연의 수고가 담겨있다. 올여름은 폭염과 폭우가 무섭게 몰아치고 있다. 자연의 불규칙한 모습에 한없이 작아지지만 자연이 주는 선물은 놓치지 말아야 한다.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은 복숭아를 입에 물며 내 몸에 여름을 담아 보자. 여름이 다 가기 전에.